잣죽

- 한 박자 늦게 흐르는 마음 -

by 버들아씨

황톳빛 도는 유백색 알맹이 속에

먼 나라 깊은 숲의 청량한 향기가,

덥고 건조했던 여름의 고소한 추억이 들어있다.


윤나는 이 열매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것.

일 년 전 받은 것이 그대로 있는데

올 겨울에 귀한 잣을 또 선물 받았다.


압축포장 채 넣어놓고 잊어버린

냉동실 맨 위칸의 잣 두 봉지.


먹을 줄 모르면 요긴한 사람에게 줄 일이지

좋은 줄은 알아서 남주기는 싫은 마음.


축이난 몸의 보양에 잣죽이 좋다는데,

욕심에 축난 내 마음에도 잣죽이 보양이 될까.


귀한 잣을 선물해 준 귀한 마음에 보답하려면

뭐라도 만들어 맛있게 먹어야지.


<흑백요리사>에서 본 선재스님의 잣 국수,

함께 대결한 흑수저 요리사의 잣 샐러드는 언감생심.


귀에 익은 잣죽이 그나마 만만하니,

잣죽 만들기에 도전해 보자.

잣죽이 어떻게 생겼더라?

한 번쯤 한정식 식전죽으로 먹어보기도 했으련만

그 색도, 그 향도, 그 맛도 기억에 없어 아쉽다.


<잣죽 쉽고 맛있게 만드는 법>들을 검색한 끝에

내 맘대로 정리한 잣죽 레시피는


쌀 한 컵 반을 씻어 한나절 불리기

잣 한 컵 반을 씻어 체에 밭쳐 놓기

불려진 쌀을 믹서로 달달달 갈기

씹히는 게 좋으므로 너무 갈지는 말기

잣에 물 한 수저 넣어 믹서로 곱게 갈기


바닥 두꺼운 솥에 간 쌀 먼저 넣고 끓이기

이때 물은 쌀양의 여섯 배에서 아홉 배

눌지 않게 젓다가 뽀글뽀글 끓으면 간 잣을 섞어주기

한꺼번에 잣을 붓지 말고 조금씩 덜어 넣어 엉기지 않게 젓기

엉기거나 눌지 않게 천천히 계속 저어주기

한 자 세로 젓기만 하면 지루하니 발꿈치 번갈아 들어 올리기 운동하기

적당히 뭉근해지면 소금 넣어 간 맞추기


완성한 잣죽은 뽀얀 우윳빛, 점점이 박힌 갈색.

한 입 떠먹으니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입안에서 퍼지는 고급스러운 느낌, 그윽한 잣향.

한입 두 입 자꾸 떠먹게 된다.

한 그릇 뚝딱

솥에 남은 잣죽을 오며 가며 떠먹는다.

성공적으로 첫 죽을 만든 내가 자랑스럽다.

이렇게 귀한 죽을 만든 내가 기특하다.

자꾸자꾸 떠먹는다.


딸이 와서 슬그머니 전한다

엄마 그거 알아?

인터넷에 떠도는 얘기인데,

운동선수들이 체중 증량할 때 즐겨 먹는 게 잣죽이래.


어머나, 왜 맛난 것들은 모두 살을 찌게 하는 거야.


수저를 놓는다.


억 울 하 다.



매거진의 이전글바디오일과 립밤, 꽃잎차 두 봉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