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말았다.
학년이 끝나가는 11월 말에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나는 다짐했다.
반드시 이 둘을 각 각 다른 반으로 떼어 진급시키리라
내 소박한 브런치 <오늘도 유쾌한 할머니 선생님>에 나이 든 교사의 학교생활 분투기를 기록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내가 가르치고 있는, 내가 가르쳤던 아이들 얘기는 되도록 쓰지 않으려 하였다.
누군가는 궁금하여 물으실 수 있겠다.
혹자: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아이들 얘기를 쓰지 않으면 무엇을 쓰나요?"
나: "두리뭉실하게 교직생활에서 겪은 아이들과의 희로애락을 쓸 수는 있어요. 다만, 내가 가르친 아이들 중 몇 명을 특정하여 쓰는 것은 상당히 조심스럽고 불편하답니다. 가명을 쓴다고 해도요......
......그 아이를 힘들어했던 나의 민낯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어렵고 특별한 아이'를 꾸준한 사랑으로 가르쳐 '모범적인 에이스'로 탈바꿈시켜 주었다는 '해피엔딩'얘기라면 또 모르겠다.
그러나 '너도 울고, 선생님도 울고 싶던'
내 능력밖의 이야기는 쓸까 말까 한참 주저하게 된다.
그럼에도 결국, 이 글을 쓰는 것은 내가 가르쳤던 이 두 여자아이의 관계가 우리가 살아가면서 직접 겪을 수 있고, 또 볼 수도 있는 인간관계의 한 유형을 닮았기 때문이다.
다음은 두 아이와 함께했던 이년 전, 어느 날의 일기.
(날것으로 토해낸 일기가 읽는 이의 편안함을 저해할까 싶어 조금 매끄럽게 다듬었다.)
이 일기장은 나의 내밀한 이야기를 쓰기로 한 공간이다. 직장과 관련된 이야기는 되도록 쓰지 않는다. 그런데 쓰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 반의 두 여자아이.
이 유별난 두 여자아이의 관계. 서로의 갈등이 특별하다.
사람들 간의 합이란 게 있다면, 둘은 정말이지 합이 맞지 않는다. 하루가 멀다 하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말싸움한다. 하루가 뭐냐. 매 시간마다 싸운다. 그 화가 난 큰 목소리와 사나운 말투에 나는 매번 질린다.
둘이 화해를 시키면 인정하고 사과하다가 1시간을 채 넘기지 못하고 또 소리 높여 말싸움한다.
싸우는 게 얼마나 에너지소모가 큰 일인가.
싸우느라 저희들 스스로도 힘들 텐데. 싸워서 나에게 꾸중을 들으면 또 힘들 텐데,
힘드니 서로를 신경 쓰지 않으면 되는데, 굳이 서로를 바라보고 지켜보며 또 싸운다.
얼마 전에는 마치 때릴 것처럼 손주먹까지 치켜드는 것을 보고 너무 놀라, 나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였다.
그동안 계속 얘기하고 당부하고 너희들도 다짐했는데, 자꾸 이러니 어쩔 수 없다.
선생님은 정말 속상하다.
앞으로 둘은 서로의 이름도 부르지 말고, 바라보지도 말고, 놀지도 말아라. 서로에게 고운 말을 쓰고 다정하게 대하고, 싸우지 않을 때까지.
물론 이전에도 그리하였다. 왜 친구에게 고운 말을 하고 부드러운 시선을 보내야 하는지에 대해 입이 부르트도록 말해왔다.
아이들은 알겠다고 하면서 또 싸웠다. 이제는 아이들이 싸우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것도 믿지 못하겠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아이들도 나와의 약속대로 항상 처음에는 사이좋게 지내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놀다 보면 또 안되니까 이러는 것이겠지.
소위 애증의 관계인가.
이 두 여자아이는 매일같이 서로를 지켜보며 끊임없이 다툰다.
바라보지 않으면 되는데 굳이 바라보고 또 싸운다.
4월부터 시작된 두 아이의 신경전과 말다툼은 일 년 내내 이어졌다.
"얘가 나를 째려봤어요." "얘가 먼저 화를 냈어요."
이건, 말다툼이 시작되기 전 팽팽한 긴장을 알아채고 내가 불렀을 때 서로 하는 말.
"얘가 나를 또 노려보려고 해요." "얘가 또 나에게 신경질 내요"
이건, 먼저 와서 서로 이르는 말.
'왜 이 두 아이는 서로의 시선과 말투를 항상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을까. 바라보는 것도 노려본다고 한다. 말하는 것도 화낸다고 한다.
'왜 같이 놀고 싶어 하면서 막상 놀면 어김없이 싸워대는 것일까' 그 패턴을 유심히 관찰하고 얘기 나눠보았다. 동시에 아이들이 처한 어려움에 대해서도 학부모와 상의하였다.
관찰과 상담을 토대로 나는, 두 아이 모두 타고난 기질 자체가 세고 목소리도 크다. 여기에 자라온 환경이 더해 자기주장이 강하고 피해의식을 가진 아이가 되었을 수 있다.
서로가 '이를 무의식 중에 알아보고 동질감, 친밀감을 느낌과 동시에, 반대로 이것을 의식하고 경쟁하며,
자신이 바라는 것이 충족되지 않으면 상처를 받고 상대에게 분노를 느끼는 것 같다, '라고 생각하였다.
나는 대화법, 감정코칭, 긍정훈육, 칭찬과 보상, 훈계 등등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경험을 총동원하여 이 둘의 갈등을 해결하려 애썼다. 둘이 말고 다른 아이들과 놀아보도록 여러 상황을 조정하고 유도도 해봤다. 그러나 우리 반의 여학생은 고작 8명. 좁은 교실에서, 작은 놀이터에서 결국 둘은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일 년 내내 이루어졌던 지도의 과정을 낱낱이 여기에 적기는 힘들다.
이렇게 반복되는 몇 달을 보낸 10월에, 서로에게 치켜든 손주먹을 보고 나는 '바라보기 금지, 대화금지, 같이 놀기 금지'라는 초강수를 두었다.
조용하였다. 장난꾸러기 남자아이들이 가끔 자질구레 말짓을 할 뿐.
치뜨고 노려보는 눈과 앙칼지고 사나운 목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으니 교실이 이토록 평화로울 수 없었다.
하지만 일주일이 겨우 지나기도 전에,
둘은 차례로 내게 와서,
눈물을 또르르 떨어뜨리며 우는 것이다
"다시 놀면 안 돼요?"
나는 어이가 없어 입을 딱 벌리고 속으로 외쳤다.
그렇게 싸워대면서 다시 또 '놀면 안 되냐니'. 선생님이 왜 거리를 두라고 했는지 잊었니?
그러나 눈물에 장사 없이 마음이 약해진다.
얼마나 같이 놀고 싶으면 이렇게 구슬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릴까.
마치 죽고 못 사는 연인을 강제이별 시킨 듯, 미안하고 안쓰러워진다.
싸울 때 싸울지언정 같이 놀게 해야 할 듯싶다
나는 지키지 못할 다짐을 또 받는다.
"좋아, 그럼 약속해 줘.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야!"
"나를 노려본다고 생각하지 않기. 나에게 화내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기, 싸우려는 마음이 들면 바로 선생님에게 와서 도움 요청하기"
둘은 고개를 끄덕이고, 새끼손가락 걸어 약속하고, 신나라 놀기 시작한다. 그리고 얼마 뒤 여지없이 말다툼 소리가 울려 퍼진다.
내가 더 단호히 마음을 먹고 둘의 상봉을 끝까지 허용하지 않아야 했는지 모른다. 그래야 두 아이도 '사안의 엄중함'을 매운맛으로 깨닫고 조금 덜 다투었을지 모른다.
아니다. 아무리 여덟 살짜리더라도 둘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 것이다.
놀고 싶은데 우리는 항상 싸운다는 것을. 말과 행동이 새끼손가락 걸은 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뭔가 서로 어긋난다는 것을.
한편으로 생각한다.
내가 아니라 다른 선생님이 또 다른 특별한 방법으로 지도하였으면 둘은 사이좋게 지냈을까.
아니 '사이좋게'는 차치하고 싸우지 않고 지냈을까.
내 능력이 부족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학년 말까지 나는 이 둘의 갈등을 해결할 수 없었고,
두 아이를 각 각 다른 반으로 떼어 진급시키고서야, 이 지난했던 둘 사이의 갈등이 사라진 것을 확인하였다.
학년이 바뀐 후 복도에서 가끔 마주칠 때면 두 아이들은 서로 남남이 되어 아무렇지도 않게 지냈다.
서로를 향한 그 화나고 새된 목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학교는, 교실은 또 하나의 '작은 사회다'라는 말은 진정 맞다.
몹시 같이 놀고 싶어 하지만 결국 싸우고 마는 관계.
몹시 그리워하여 만나지만 서로 상처를 주고야마는 관계.
이런 관계의 해결방법은 결국 서로 떨어져 멀리하는 것 밖에 없는 걸까.
생각이 깊어졌던 어느 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