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치트키는 <빨간 부채 파란 부채>
옛날 옛날에 할아버지 두 사람이 한 동네에 살았더란다. 한 할아버지는 가랑이가 찢어지게 가난하게 살고, 한 할아버지는 만석꾼 부자로 살아. 가난뱅이 할아버지는 왜 가난한고 하니, 무엇이든지 생기면 생기는 대로 남에게 다 줘서 그렇지.(중략) 그런데 부자 할아버지는 왜 부잔고 하니, (중략) 탐나는 물건이라도 있으면 얻든지 빼앗든지 훔치든지 해서 다 가져.
아이들이 수업 중 하품하며 지루해할 때.
아이들 모두가 <아침 10분 독서>를 열심히 했을 때.
갑자기 다른 반에 보결수업을 들어갔을 때.
나는 옛날이야기를 읽어준다.
옛날이야기를 해주기 위해 꺼내는 책은 <우리 옛이야기 백가지 1>*.
아이들의 시선은 온통 책을 펼치는 내 손끝에 모아진다.
내가 읽어줄 <빨간 부채 파란 부채>는 나의 치트키.
왼 손엔 책을, 오른손은 제스처를 준비하고,
재빨리 두 할아버지에 빙의하여 이야기를 시작한다.
흉년이 들어 가난뱅이 할아버지가 부자할아버지에게 보리쌀을 꾸었어.
부자할아버지는 얼토당토 않은 트집을 잡아 몇 배나 더 보리쌀을 내놓으라 하지 뭐야.
이를 내지 못한 가난뱅이 할아버지는 나무를 한 짐씩 해다 줘야 했어.**
나는 두 할아버지의 대화를 목소리를 바꿔가며 읽는다.
가난한 할아버지는 착하고 순박한 목소리로,
"거 보리쌀 있으면 좀 꾸어주오. 우리 보리가 익으면 베어서 갚을 터이니".
부자할아버지는 욕심을 가득 담은 째진 목소리로
"그건 댁의 사정이지. 정 양식이 없으면 나무라도 해다 주시오. 올 여름내 하루 한 짐씩"
아이들의 눈은 '초롱초롱' 귀는 '쫑긋쫑긋' 완전 집중하고 있다.(공부할 때도 이랬으면)
나는 아이들의 집중을 연료 삼아 발동 걸린 차바퀴가 된다. 너스레도 떨기 시작한다.
가난뱅이 할아버지는 나무를 하다 날씨가 더워지자 빨간 부채를 부쳤어.
오른손으로 코를 잘 겨냥하여 살랑살랑 부채 부치는 시늉을 한다.
"할아버지가 한참을 부채질하다 보니 코가 이상해. 만져 보니 코가 이만큼 길어졌네.
'아이쿠, 내 코가 왜 이래?'아무리 쓰다듬고 만져봐도 이건 코끼리 코야."
나는 깜짝 놀란 얼굴로
"우엥? 코가 길~어졌대! 얘들아! 너희들 코는 괜찮은지 함 만져봐!"
호들갑을 떤다.
아이들은 동그래진 눈으로 제 코를 확인하며
"코 안 길어요."
"납작해요!"
"그대로예요"
너도나도 소리친다.
"그래~? 다행이네~"
나는 천연덕스럽게 계속 읽어간다.
"할아버지는 참 별난 일도 다 있다 하면서 이번에는 파란 부채로 부채질을 설렁설렁했지.
한참 부채질을 하다가 보니, 이건 또 뭐야. 코가 없어졌어. 만져 봐도 밋밋해.
"어머머머머머! 이건 또 무슨 일이래. 세상에~ 코가 없어졌대! 너희들도 코 있는지 함 만져봐"
이번에야 말로 제대로 놀랐다는 듯 발도 한 번 구르며 말한다.
아이들은 토끼눈이 되어 제 코를 만져본다.
"코 있어요."
"저도 있어요"
"삐쭉 나왔어요"
너도 나도 제 코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아우성이다.
"그뤠~? 정~~ 말 다행이야!"(매우 안도하는 표정과 목소리를 장착하고)
나는 올라오는 웃음을 꾹 눌러 참는다.
이제 이야기는 끝을 향해간다.
부채를 보고 탐이난 욕심쟁이 영감이 가난뱅이 할아버지에게서 부채를 억지로 빼앗았어.
떼 돈 벌 생각에 좋아서 빨간 부채를 부치던 부자 영감은 자기 코가 지붕을 뚫고 구름을 지나 하늘나라 옥황상제 앞까지 쑥 올라간 줄도 몰라. 이때 이를 본 옥황상제가 쑥 올라온 코를 나무에 묶으라 신하들에게 명령해. 이제야 정신이 든 부자영감은 파란 부채로 막 부채질을 해. 코끝이 하늘나라나무에 묶여있으니 코가 짧아질수록 몸뚱이는 코에 매달려 하늘로 둥둥 떠올라 갔어. 그때 하늘에서는 옥황상제가 점잖게 명하기를***
"이제 그만하면 됐으니 풀어 주어라"
나는 어깨를 젖히고 위엄있게 말하며, '에헴' 수염을 쓰다듬는 시늉을 한다.
그리고 이야기의 마지막을 아래와 같이 읽으며 마친다.
그러자 신하들이 달려들어 묶은 끈을 풀었어. 그래서 어찌 됐느냐고? 그다음은 나도 몰라
이야기가 끝났는데
아이들은 그다음을 안다고 기어이 선생님을 불러댄다.
"쿵하고 땅으로 떨어졌어요"
"아~!"
"엉덩방아를 찧었어요"
"그렇구나~"
"떨어져 죽었어요"(는 좀 무서워서 못 들은 체하고 싶지만)
"으.... 응? 저런~~"
나는 어떤 무서운 말이 더 나올까 두려워져
"자~자~ 이제부턴 여러분 상상 속으로만 생각합니다아~"
마무리한다.
어릴 적 할머니에게 이야기를 조르던 나처럼
이야기를 읽는 나도 덩달아 흥이 나는 이 시간.
아이들에게 읽어주는 <빨간 부채 파란 부채>는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
* 서정오, <우리 옛이야기 백가지 1>, 현암사
** 지면 관계상 이야기를 줄임
*** 지면 관계상 이야기를 줄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