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밤의 휘영청 밝은 달빛

흉터의 사연

by 버들아씨

솔티재를 넘던 밤의 노랗고 둥근달이 지금도 선명하다.

이마에 붕대를 감은 나는 아빠의 자전거에

앉아있다. 아빠는 자전거를 끌고, 엄마는 자전거 옆을 따라 걷는다.

가끔씩 여우와 도깨비가 출몰한다는 그 고개.

셋이 넘던 그 밤의 환한 달빛과 조용한 두런거림이 엊그제인 듯하다.

우리는 고개 넘어 무면허 의사집에서 내 찢긴 이마와, 빠진 앞니와 잇몸에 난 상처를 치료받고 귀가하는 중이다. 의사는 찢어진 이마를 바늘로 꿰매고 하얀 붕대를 감아주었다


그때 내가 다친 이유와 그 발단이 생각하면 사뭇 어이없어 그동안 혀를 '끌끌' 차 왔다.

지금은, 그저 '푸훗'하고 웃을 뿐이다.


남이 볼 때는 있는 듯 없는 듯,

그러나 나는 콕 집어 찾아내는 오른쪽 이마 위 기울어진 초승달 모양의 흉터.


국민학교 5학년을 마치고 도시로 전학 가기 전까지 깡촌에 가까운 시골에 살았다. 집이 열 채가 좀 넘는 작은 산골이었다. 어린 소녀인 나는 나와 나이가 같은 희록이, 한 살 많은 진숙이와 삼총사같이 어울려 놀았다.


봄에는 진달래와 풀을 찧어 소꿉놀이를 하고,

해 긴 여름에는 시냇가의 돌을 헤집어 송사리를 가두었다.

따가운 가을빛 아래선 작고 빨간 열매덤불을 헤치며 감나무에 오르고,

눈이 내린 겨울에는 비닐푸대를 타고 엉덩이가 아프도록 비탈진 길을 미끄러져 내려왔다.


한 살 많은 진숙이를 희록이와 나는 언니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냥 진숙아 불렀다. 우리는 동갑내기 친구들 같았다.

그날도 희록이와 진숙이와 나는 산기슭에서 놀았다. 놀이가 시들해질 무렵 배가 고파진 나는 산비탈 우리 밭에서 무를 한 개 뽑았다.

매끈하게 뽑아진 흰 무의 겉을 앞니로 돌돌 뜯어내고 한 입 사각 베어 물었다.

옆에 선 진숙이가 말하였다.


"나 쪼깨만"




'그 무가 뭐라고......'


그때 한 입 먹으라 주면 되었을 것을.

사탕도 아니고 아이스께기도 아닌 그깟 무를 나는 왜 안 주었을까.

또 그깟 무를 주기 싫다는데,

'치사빤쓰다'하며 저도 자기네 밭의 무를 뽑아 먹으면 되었을 것을.

왜 굳이 달라고 진숙이는 고집부렸을까.


나는 안 주겠다고 달리기 시작했다.

진숙이는 기어이 먹겠다고 쫓아왔다.

산비탈을 달려내려왔다.

내리막에 가속이 붙었다.


나는 그만 돌부리에 걸려 개골창에 처박히고 말았다.


뒤따라 쫓아오던 진숙이가 멈추었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놀란 나는 어리벙 아픈 줄도 모른 체 몸을 일으켰다.

찝찔한 뭔가가 입속으로 흘렀다.


"피 피봐!"

몰려든 아이들이 소리 질렀다.


그다음부터는 기억나지 않는다.

저녁밥을 짓다 말고 나를 들쳐업은 엄마가 아빠를 찾아 내달렸다고만 생각된다.


당시 아빠는 국민학교 선생님으로 우리가 살던 시골 소재지 학교에서 근무하셨다.

나를 업은 엄마는 학교로 먼저 갔다. 아빠는 없었다. 해 질 녘이니 당연히 퇴근하셨었겠지.

엄마는 학교 근처 막걸릿집에서 아빠를

찾아내었다. 퇴근 후 한두 잔 막걸리로 기분 좋은 듯 웃고 있던 아빠.


장면이 바뀌어,

깜깜한 밤, 깊숙한 골짜기의 외딴집.

어슴푸레한 등잔 밑에서 내 이마에 붕대를 칭칭 감아주던 누군가의 손길이 생각난다.

이마를 꿰맬 때 아팠는지, 아파서 울었는지, 빠진 이는 어찌 되었는지 모르겠다.

치료를 받고 있는 나를 비스듬히 위에서 바라보는 전지적 시점의 내가 있을 뿐이다.



진숙인 단지 한 입 먹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내가 욕심쟁이처럼 굴어서 이런 일이 생겼던 걸까.

수십 년 전, 8살 적 있었던 일인데 아직까지도 잘 잊히지 않는다.

잊히지 않는 이유를 생각해 본다.

흉터가 아직까지 남아있는 탓에,

상처 생긴 이유가 어이없어서,

개골창에 처박히던 순간이 너무 충격이어서,

아니면 내 어린 날의 어떤 결핍과 이 일들이 연결되어 있어서,

그냥 기억으로 저장되어서......

잘 모르겠다.


나를 들쳐업은 엄마.

막걸릿집의 아빠.

나를 치료해 주던 손길과 어슴푸레한 등불.

이마에 하얀 붕대가 감긴 채 아빠자전거에 앉아있는 나.

자전거를 끌고 가던 아직 젊어있던 아빠와 그 옆에 엄마.

고개를 비추던 노랗고 둥근달.

검은 나무들과 숲.

어두우면서 밝았던 고갯길과 밤의 공기.


그날 있었던 일과 머릿속 장면이 당연히 사실이라고 나는 생각하여 왔다.

챗지피티에게 주문해 만들어진 이미지. 당시 산골마을 사람 같지 않게 세련되게 그려놨다. 다시 해달라 설명할수록 더 이상한 그림만 만들어 내는 통에 그냥 이것으로 정하였다.

(다음 글로 이어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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