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진실
전 편에 이어 씁니다.
# 자랑스럽지도 않지만 부끄럽지도 않은
거울을 수시로 보므로, 흉터도 자주 보게 되었다.
오른쪽 눈썹 2cm 위 세로로 기울어진 초승달모양의 흉터. 피부색과 같아 크게 눈에 띄지는 않았다. 왼쪽 가르마에서 사선으로 자연스레 머리카락을 내리면 더욱 감쪽같다고 생각했다.
누가 내 이마만 들여다보고 있겠나.
말하지 않는 한 남들은 그것의 존재를 잘 모르는 듯했다. 아니,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 모른 체했을 수도 있겠다. 모두가 다 알지만 당사자만 모르는 '그렇고 그런 소문'들처럼 말이다.
아무튼 내가 먼저 '흉밍아웃'을 하면
"어~ 있네"정도의 시시한 반응을 지인들은 보여주었다.
떠벌리지 않으면 남들도 관심 갖지 않았기에,
흉터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받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지도 않았다. 흉터는 그저 얼굴의 주근깨나 기미정도의 지위를 차지하였다.
그래도 어느 때인가는 '흉터가 아예 안 보이는 게 낫지 않겠나'하며 흉터를 사라지게 해 준다는 연고를 한동안 발라보기도 했다. 하지만 오래된 흉터엔 약발도 소용없는지 그것은 그대로 끄떡없이 건재했다. 사실 별 기대도 없었다.
살아오는 동안 흉터는 계속 익숙해져 아무렇지 않았고, 나는 나대로 흉터보다 예쁘다 생각되는 다른 부분으로 매력을 어필하고 자신감을 충전하였다.
또 언젠가부터는 흉터의 사연에 대해 '푸훗' 웃을 수 있게까지 되었다.
친정식구들과 친구들과의 자리에서 '그깟 무 하나'로 생긴 나의 흉터를 우스개 삼아 얘기하곤 했다.
흉터는 자랑스럽지도 않지만 그렇게 부끄럽지도 않은 나의 은밀한 개성일 뿐이라고 생각하였다.
# 우리들 기억은 믿을 수 없을지도 몰라
'세월과 함께 흉터에도 주름이 생겼구나'
새삼 깨닫던 어느 날,
마침 시골집에 엄마를 뵈러 간 언니에게 그때 일을 물어달라 부탁했다.
챗지피티로 만든 그림도 엄마에게 보여주라 청했다.
언니는 엄마에게
'버들이 이마 다쳤을 때 생각나?
다친 버들이를 엄마가 업고
아빠를 찾아 학교로 갔는데,
아빠는 학교 근처 막걸릿집에 있었대.
그리고 솔티재 너머 의사한테 가서
버들이 찢어진 이마를 꿰매고 돌아왔다던데.
하며 물었단다.
언니는 엄마가 그림을 보더니 이렇게 대답했다고
카톡으로 전했다.
'무슨 아빠자전거 타고 의사한테 갔냐고. 아니래.
집에 병술이라는 일꾼이 있는데 그 사람이 업고
엄마가 뒤따라가, 은하리라는 골짜기에, 그때 당시
아프면 누구나 찾아갔던 의사한테 가서 꼬맨거래.'
엄마는 또렷하게 기억난다며 확신하듯 말하셨다 덧붙였다.
......
이건 또 뭔 소리실까.
엄마에게 보여준 챗지피티 그림은 치료받으러 갈 때가 아니라, 치료를 끝내고 귀가하던 모습을 그린 건데, 87세의 엄마는 사진을 대충 보시고(내 이마에 둘러진 붕대를 머리띠나 모자로 여기셨나?) 다친 나를 아빠가 자전거에 태워 의사한테 데려가는 모습이라 생각하셨나 보다.
나는 카톡으로
'그래? 의사한테 갈 땐 누구랑 갔는지 몰라도, 이마를 치료받고 집에 돌아갈 때는 분명 아빠 자전거를 탔어.
그때 솔티재의 노랗고 둥근달이 지금도 선명허게 기억나는데!' 대답하며,
집에 돌아갈 때 달밤이었던 것과, 아빠자전거 타고 같이 간 것도 생각나는지 더 물어달라 재촉하였다.
언니는
'더 이상은 말씀 없으셔. 경전 읽고 머리염색, 혈압약에 관심 보임'
이라 보내곤
'기억의 오류. 우리들 기억은 믿을 수가 없는지도 몰라' 하였다.
계속 더 캐보고 싶었지만, 엄마도 언니도 각자 자기 일에 골몰하느라 수십 년 지난 내 기억 따위 깊이 생각해주지 않을 것이므로, 나도 그냥 여기서 멈추고 말았다.
# 마치, 영화 <라쇼몽>처럼
어떤 기억은 맞고 어떤 기억은 틀리다.
어쨌든 그날을 두고 엄마와 나의 기억이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잘 알고 있다 생각했던 나의 기억도 정확한 게 아니었다.
또
느닷없이 튀어나오신 새로운 존재, 병술님
'니가 왜 거기서 나와'처럼
이분은 왜 거기서 등장하시는 걸까......
전혀 기억에 없다. 병술아저씨(라고 불러야 할 듯)라는 분이 나를 업고 갔다는 것은 금시초문이다. 그때 내가 반 기절 상태라 나를 업은 이가 누군지 알아차리지 못했었나? 그래서 당연히 엄마가 나를 업고 갔으리라 생각했을까.
8살이었으니 가볍지만은 않았을 텐데 아저씨가 나를 업고 솔티재를 넘어가셨구나.
수십 년 지난 지금 많이 늦은 감사인사를 드린다.
엄마와 나의 기억이 다른 것을 알고 문득 영화 <라쇼몽>이 떠올랐다. 영화에선 한 사건을 두고 등장인물 네 사람의 기억이 다르다. 모두 자기 기억이 맞다고 주장한다. 결국 한 사람의 기억만 진실이고 나머지 주장은 거짓기억임이 영화에선 밝혀지지만,
내 흉터의 사연은 영화도 드라마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여자사람의 기억 찾기 일뿐.
엄마, 진숙언니, 돌아가신 아빠, 또 미지의 병술아저씨를 5자 대면하여 그날의 진실을 밝혀볼 수도 없고,
별수 없이 나 혼자 그날의 아귀를 맞춰본다.
'아빠는 막걸리로 이미 거나해진 탓에, '병술'이라는 분이 나를 계속 업은 채 엄마와 함께 솔티재 너머 은하리 의사집에 갔다. 내가 치료받은 후, 나중에 술이 깬 아빠가 자전거를 끌고 그곳으로 왔다. 그리고 아빠는 나를 자전거에 태워 엄마와 함께 솔티재를 넘어 집으로 돌아왔다'
# 기억 앞에 겸손할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상처도 안 받았고 콤플렉스도 아닐진대,
어린 시절 하면 나는 왜 제일 먼저 이 흉터를 떠올리는 것일까.
아마도, 흉터가 물리적인 사실로 남아 계속 눈에 띄었기 때문에
그것을 볼 때마다 과거의 기억이 호출되는 것이고,
수십 년 지나오며 곱씹은 기억은 경험과 책과 영화와 드라마가 덧씌워져 재생산되었으며
그 재생산된 서사가 어린 날의 이미지로 각인되어 어떤 감정을 부풀려 일으키는 것일 테다.
그러므로
선명하게 느껴지는 과거의 장면들도 언니말처럼 기억의 오류일 수 있고, 우리들 기억은 완전히 믿을 수 없는 지도 모르며, 그러니 기억 앞에 겸손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뭔가 아쉬운 마음이 든다.
무를 들고 달려내려오던 산비탈
넘어져 처박힌 개골창
병술아저씨 등에 흘렀을 땀방울
은하리 의사집의 어슴푸레한 등잔불
솔티재를 넘던 그 밤의 휘영청 밝은 달빛
고개 넘던 우리를 숲 속에서 지켜보았을지도 모르는 도깨비와 여우는
흉터에 대한 그날의 진실을 알고 있을 것이라 믿고 싶다.
명치께가 살짝 아리다.
이 느낌 뭐지?
흉터를 얻을지언정
한나절 소꿉놀이가 최고로 중요한 일이었고,
한 개의 무가 내 양식의 전부인양 소중했던
작고 아름다웠던 나의 우주.
깊은 산골 철부지 시절이 그립고, 그만 안쓰러워졌기 때문일까.
*개골창: 수채물이 흐르는 작은 도랑(표준국어대사전)
* 대문사진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