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두, 살구, 체리

언젠가 입맛이 바뀔지라도

by 버들아씨

초여름이 좋은 이유는

자두, 살구, 체리가 있기 때문이다.


빠알간 자두

주황빛 섞인 노란 살구

흑장미색 체리


이들이 과일가게에 등장할 무렵이면,

달큰하고 농익은 향에 근처만 가도 어지러운 듯 몹시 황홀해진다.

생김새의 어여쁨과 그 맛은 또 어떤가.

나는 참새가 방앗간 들르듯 속수무책, 과일가게로 마트의 과일코너로 발길을 돌리고 만다.


사시사철 여러 과일을 즐길 수 있지만,

자두와 살구는 주로 제철에만 맛볼 수 있는 과일이 아닌가 싶다.

서양벚나무 열매인 체리도

계절이 다른 남반구(호주, 칠레)에서 수입해 오기 때문에 언제든 먹을 수 있을 뿐,

우리나라 벚나무 열매인 버찌가 까만 진주같이 떨어져 내리는 지금이 우리 사는 북반구에선 체리의 제철이다.

이제 기후변화로 우리나라에서도 체리가

재배되어 5,6월부터 출하된다는 뉴스도 있다.*(나무위키)


나는 순전히 내 입맛, 내 취향을 기준으로

자두, 살구, 체리를 초여름의 F3(fruit의 F3), 초여름과일삼총사라 부르고 싶다.


과일가게나 마트 과일코너에 하나둘씩 자두 살구 체리가 보이기 시작하면

눈여겨 두었다가 값이 좀 더 내리기를 기다린다.

값도 값이려니와 출하 초기엔 신맛이 많이 돌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너무 이른 여름도, 너무 한가운데의 여름도 아닌

유월 하순에서 칠월 중순까지가 이들의 맛이 제일 좋았다는 나만의 경험치가 있다.

그래서 딱 지금쯤 자두, 살구, 체리에 대한 나의 탐닉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7월이 다 지나기 전에 어서 그 예쁨과 향기와 상콤 달콤함을 맛보아야지,

많이 많이 먹어두어야지, 조바심을 친다.

떨어질 새라 냉장고에 쟁여둔다.

단과일이 혈당치를 무섭게 상승시킨다는 세간의 충고는 저만치 흘려듣는다.

물들어올 때 노 젓듯이, 이 시기 열심히 이것들을 맛보지 않으면

날은 어느새 성하(盛夏)로 접어들고 찐득한 더위에 몸부림치다 그만,

덩어리도 크고 과즙도 많은 수박 복숭아에 마음을 뺏겨버린다.

그러다가 여름이 끝나가고 공기 중에 미세한 서늘함이 감돌면 이 삼총사가 다시 생각나며,

'그때 더 많이 먹어둘 걸' 후회한다.

지만 살구철은 이미 끝났고, 아쉬운 대로 그 맛있다는 가을 자두라도 먹어보자 하지만 초여름 그 맛을 대신할 수 없다.


자두와 살구, 여기에 체리까지. 이들을 좋아하는 이유를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어여쁜 생김새와 새콤달콤한 맛도 맛이지만,

역시 추억도 한 스푼 들어있어 그런가 여긴다.


시골 우리 집 앞, 자두나무 한 그루.

어린 나는 열매를 잘 맺지 않던 그 나무를 보며,

저 나무에 주렁주렁 자두가 열려 빨갛고 달콤한 열매를 맘껏 따먹어 봤으면, 바라곤 했다.

하지만 도시로 전학 간 어느 날 시골집에 왔더니, 자두나무는 베어져 사라지고 말았다.

출근길에 발견한 유치원 뜰의 살구나무, 반갑다!

마을 끝 희록이집, 큰 살구나무.

고개 들어 올려다보면 까마득히 높은 가지에 노란 별처럼 살구가 달리고 별똥별처럼 몇 개씩 마당에 떨어져 내렸다. 희록이집에 놀러 간 날, 때마침 잘 익은 살구를 땄을 때만 행운처럼 그것을 맛볼 수 있었다.


그런 아쉬움들일까. 커서 내 돈으로 맘껏 사 먹어본 것들 중에 자두와 살구가 있다.

자두, 살구는 어린 날의 풍경과 함께 먹는 맛이 있다.


체리는 어린 시절과는 상관이 없다. 그때는 그런 과일이 있는지도 몰랐다. 성인이 되고도 아주 오래 뒤에 먹게 된 과일이다.

맛보았다면 대학시절 멋 부리며 마셔본 칵테일과 제과점 케잌 위 절여진 체리정도일 것이다.

체리맛 사탕도 포함인가.

수성펜으로 따라 그린 그림

절여진 체리와 진분홍 사탕으로 맛본 그 오묘하며 이국적인 달콤함은 체리의 실체를 더욱 궁금하게 하였다.

그러니 싱싱한 체리가 본격적으로 등장했을 때,


매끄럽게 윤이나는 루비 같으며, 도도하게 붙어있는 길고 가느다란 꼭지. 흑장미같이 뇌쇄적인 자태에 어찌 홀딱 반하지 않을 수 있을까.


체리에는 청춘의 호기심이 들어있다.



자두 살구 체리는 손에 들고 한입 두 입 베어 먹으면 되는 간편한 과일.

깎고 자를 필요가 없어 좋다.


마치 차(茶)를 음미하듯,

손에 쥔 자두, 살구, 체리를 다음과 같이 즐긴다.


먼저, 눈으로 어여쁜 색깔을 충분히 감상하고

다음, 풋풋한 듯 농익은 향기를 코로 맘껏 들이키

마지막으로 달콤한 과육과 그 즙을 온몸 세포로 감각하며 먹는다.

베어문 후엔 자두의 노란, 살구의 연주황, 체리의 검붉은 속살도 꼭 보고 즐길 것.


씨는 각기 다른 방법으로 처리한다.

자두 씨는 입안에서 오물오물 굴리며 뾰족한 부분에 입안이 다치지 않게 남은 섬유질 속 달콤함을 더 빨아내고 뱉어낸다.

살구는 잘 익은 가운데를 손으로 벌리면 과육과 씨가 깔끔이 분리된다. 씨를 먼저 발라내고 먹는다. 즙이 흘러내리지 않아 좋다.

체리는 과육을 먹은 후 입안에 씨를 남겨두고 사탕처럼 이리저리 굴리다 톡 뱉어내곤 했는데,

체리씨가 몸에 좋지 않으니 깨물어먹거나 삼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조심해도 시원찮을 판에, 몸 상하는 건 싫으니 이젠 바로 뱉어낼 밖에.

입안에서 오물거리던 씨를 박자 맞춰 '톡' 뱉는 일이 체리 먹는 작은 재미 중 하나였는데, 아쉽다!



초여름의 맛있고 어여쁜 과일이 어디 자두 살구 체리뿐일까

오디, 앵두, 파리똥*, 산딸기, 천도복숭아......


언젠가는 입맛이 변해

자두, 살구, 체리 말고

오디나 앵두, 파리똥을 사 먹으며

산비탈을 쏘다니던 어린 날을 그리워할 수 있겠지만


지금 이 순간은,

매년 찾아와 주는 이 어여쁜 자두 살구 체리를 추억과 함께 감사히 먹고 싶다.


많이 먹고 싶다.




*파리똥: 포리똥, 보리수열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도깨비와 여우는 알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