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봄 무렵부터 찹쌀도넛을 파는 트럭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봄이면 벚꽃이 와르르 피어나는 산책로와 차가 다니는 사거리 사이의 작은 공터예요.
근처 사는 이웃들이 시내버스를 타러 벚나무사이를 걸어 나오고, 산기슭 주말농장에 가거나 산에 오르려는 사람들이 지나갑니다.
한적한 주택가라 오가는 이들이 그리 많지는 않아요.
어느 해인가는 커피를 파는 트럭이
가끔 서있기도 했어요.
나무 그늘아래 벤치가 여섯 개 있어서
커피 마시며 쉬어가기 좋을 듯 싶었어요.
하지만 그 커피트럭은 두어 달 보이더니 더 이상 나오지 않았어요. 마침 여기서 커피 한 잔 마셔볼까 하던 참이었어서 조금 서운했답니다.
산책을 오가며 눈여겨보니 찹쌀 도넛을 파는 트럭은 토요일과 일요일 중에 하루만 나와요.
주로 토요일에 보이지만, 토요일에 나올지
일요일에 나올지는 주인아저씨 마음인 것 같아요.
저는 주말이면 일어나자마자 선크림 바르고 모자 뒤집어쓰고 서둘러 집을 나와요. 언젠가부터 반쯤 눈뜬 채 이리저리 뒤척이는 것이 오히려 더 힘들어졌거든요. 차라리 일어나 움직이기로 맘먹었어요.
대개 아침 7시 무렵입니다.
주말농장이 있는 산기슭 둘레를 걸을 거예요.
편의점에서 커피 한 잔 사들고 이곳을 지나가요. 트럭은 벌써 나와 있어요. 멀리서 트럭의 지붕이 보이면 왠지 반가워요.
도넛을 만드는 아저씨는 분주히 움직이고 계십니다.
도넛은 매우 맛있어 보여요.
왜 있잖아요?
읍내 장이 설 때 보이는 옛날식 설탕 묻힌 꽈배기, 동그란 찹쌀도넛 그런 거요.
여기를 지나갈 때면 커피와 함께 이 도넛을 먹으면 얼마나 맛있을까 생각해요.
하지만 참는답니다.
건강해보겠다고 눈 비비고 일어나 산둘레를 걷는 것인데, 시작부터 기름에 튀긴 설탕범벅 꽈배기와 도넛이라니요.
저는 곁눈질만 할 뿐 꿋꿋이 잘 지나다녔어요.
그날도 여느 토요일과 똑같은 아침이었어요. 평정심을 유지하며 꽈배기 트럭 앞을 지나치려 했어요.
아주머니 몇 분이 도넛 앞에 서 계시는 게 보였어요. 그때 저쪽에서 아주머니 한 분이 트럭으로 다가오고 계셨어요.
만면에 웃음 띤 즐거운 표정이었어요.
그러더니 일행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게 아니겠어요?
"참새가 방앗간을 어떻게 그냥 지나가아~"
요새 넷ㅇㅇ스에 <트리거>라는 시리즈가 재미있다던데, 그 트리거가 바로 이런 것 아닌가 싶었어요.
그 '참새와 방앗간'이 트리거가 되어
겨우 참고 있던 깃털보다 가벼운 제 인내심을
한 방에 날려버리고 말았습니다.
저는 기꺼이 참새가 되기로 하였어요.
사실 이 순간을 기다린 것 같기도 해요.
발이 저절로 트럭 앞으로 움직였어요.
"안녕하세요. 꽈배기 세 개, 동그란 도나쓰 세 개 주세요"
"설탕 안 묻힌 것으로 주세요"
그 와중에 설탕 안 묻은 것으로 주문했어요.
3개는 삼천 원, 6개는 오천 원인데 저는 6개를 골랐어요.
차라리 후련해요.
사람이 본성을 거스르면 안 되는 거잖아요.
신용카드를 들고 나왔기에 주인아저씨 계좌로 도넛 값을 이체합니다. 이체하면서 보니 주인아저씨는
'○대운'이라는 근사한 이름을 가지셨어요. 아저씨의 트럭에 큰 행운이 깃들기를 바랍니다.
이제 커피와 도넛 봉지를 들고 주말농장 옆 벤치를 찾아갑니다. 벤치에 앉아 반짝거리는 포플러나뭇잎을 보며 이 순간을 즐길 거예요.
산책길에 이곳에 멈춰 나무와 꽃과 풀들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해요.
브런치를 알게 되면서부터는
이 시간 이 벤치에서 구독자분들의 글을 읽고, 라이킷을 누르고, 댓글도 달게 되었어요.
추우면 단추를 채우고 더우면 아이스커피에 얼굴을 대면서 글을 읽는답니다.
커피 한잔, 도넛 한 개를 번갈아 먹어요.
커피만 마시며 앉아 있을 때도 좋았는데,
꽈배기와 도넛을 먹으며 브런치 글을 읽으니
이 시간이 두배로 더 달콤하고 쫄깃해졌어요.
만약에요.
어느 주말아침 라이킷이 눌려지면요.
찹쌀도넛을 참지 못한 어느 여자사람이 포플러나무가 보이는 벤치에 앉아 누른 것도 그중에 하나 있으려니 생각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