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만드는 수수한 평화 2
나는 술을 좋아한다.
옛날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가끔 홀짝홀짝 마신다.
아빠의 술 유전자는 친정 오남매 중 첫째인 오빠, 셋째인 나, 넷째인 바로 아래 남동생에게 흐른다.
아빠의 술 때문에 우리 가족 모두 힘들었으나,
오빠는 돌아가신 아빠의 무덤에 소주를 부으며 "이제 마음껏 드세요"하며 울었다.
술수저 딸답게,
나는 대학 때부터 호프와 소주와 막걸리를 마셔댔으며,
결혼해서는
한잔 술에 신호등처럼 빨개져, 다가오던 술잔이 저절로 멈추는 남편을 대신해 시댁모임의 '술상무'가 되었다.
술을 잘 못 마시는 집안인 시댁은 한 잔 술을 거절치 않는 며느리를 반갑게 여겼다.
그리고 아들보다 며느리에게 먼저 잔을 건네주셨다. 다행이었다.
직장에서는 용케 적절히 처신하였다. 여초직장이라 술자리도 흔치 않았다.
취해도 좋을 때, 취하는 것이 볼썽사나울 때를 적당히 가릴 줄 알게 되었다.
'부장들 화합이 잘되어야 학교가 잘 굴러간다'며 주말 낀 일박이일 친목여행(대부분 원치 않던)을 가게 되면, 저녁식사에 한잔 술(아니 여러 잔)을 마시고 나는 시를 낭송했다. 한 사람씩 장기자랑 비슷한 것을 해야 되는 순서였다. 그때 좋아서 열심히 읊은 시가 바로
신현림 시인의 <사랑이 올 때>였다.
시의 구절 중,
'술 마실 때 취해 쓰러지는 것을 염려치 않고(술을 마셔라)'.
'봉숭아 꽃물(취해 붉어진)처럼 기뻐(기분이 좋아져) 서로가 서로를 물들여 가리(서로가 권하여 친해지리)'
이 부분은 어찌나 그 자리와 딱 맞았던지, 화합의 술자리에 시의적절 어울리는 진정 아름다운 시낭송이었다.
위의 시를 술자리에서 읊어대던 시절, 이 그림을 그렸다.
사랑이 오는 것처럼 흐드러지게 장미가 필 때,
어느 길가 담장 곁에 서서 넝쿨장미들을 한참 들여다보았었다.
그날의 빨간 장미는 유월의 햇살에 눈이 부셨다.
겁 없이 술 마시고, 흥에 사무쳐 시를 암송하던 나의 그날들도 눈이 부셨다.
불안한 청춘의 이십 대도 아닌
일과 육아, 살림에 정신없던 삼십 대도 아닌
이제야 나를 돌아볼 틈이 생긴 사십 대였다.
어느 것에도 혹하지 않는다던 불혹의 40대는
아직은 포기하기 일렀고,
아직은 견딜만했고,
그래서 뭔가에 대한 열정이 있었다.
나의 삶을 폭풍 속으로 밀어 넣어도 다시 빠져나올 수 있을 듯한 욕망과 에너지가 남아있었다.
적당히 철이 들어
적당히 삶을 알고
아직 적당히 젊어있던 아름답고 눈부신 나날.
내 생애 가장 눈부셨던 나날들.
내가 사는 이곳, 그림 속 그날처럼 빨간 넝쿨장미가 만개했다.
넝쿨장미가 흐드러지게 핀 담장 곁을 걷는다.
눈부신 나날.
이제는 다른 의미로 또 눈이 부시다.
햇살 가득한 길을 걸으면 언제부턴가 쨍한 햇살에, 지면에 반사되는 빛에 눈이 부셔 찡그리게 되었다. 눈부심이 견디기 힘들어지고 있다.
눈이 노화되고 있나 보다.
선글라스는...... 선글라스로 보게 되는 무채색의 세상이 싫어 끼지 않았건만.
아~ 눈부셨던 나날이여, 안녕!
눈부심을 감당할 수 있었던 나날이여, 안녕!
나는 돌아온 누님처럼 안경점에 가서
새 선글라스를 맞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