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트백과 데이지 키링
우리 집엔 오래된 피아노가 한 대 있다.
한때 바쁘게 뚜껑이 열렸다 닫혔다 똥땅소리를 냈지만, 이젠 아무도 치는 이 없어 거실 한 구석 외로운 신세가 되어있다.
'이러다 물건에 파묻혀 질식할 것 같아' 푸념하며
매년 미니멀라이프를 다짐하고 매번 실패하는 내 눈에 '처분대상 1순위'로 눈총 받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하지만 연두부처럼 마음이 몰캉몰캉 해지는 날이면,
'그래도 한 번씩은 건반을 두드려줘야지 않나' 하며 피아노 위에 올려진 수건이나 책 따위를 밀어내고
뚜껑을 여는데, 그때 치는 곡이 있다.
동요 '초록 바다'
교사가 되기 위해 연습했던 곡들 중, 지금도 감성충만 즐겁게 노래하는 곡.
멈출 때도 있지만 그래도 손이 외워서 치는 곡.
초록빛 바닷물~에 두 손을 담그면
초록빛 바닷물~~에 두 손을 담그면
파~란 하늘빛 물~이 들지요
어여쁜 초록빛 손~이 되지요
음악취향은 잡식이랄 정도로 클래식, 국악, 가요, 팝, 트로트 가리지 않고 잘 듣고 따라 부르지만,
악기를 연주하는 데는 별 재주가 없어서 음악교육과정에 나오는 피아노, 리코더, 단소를
나는 공들여 연습해야 했다.
특히, 다 자라 손가락이 굳은 채 피아노를 연습하자면,
머릿속은 피아니스트마냥 현란하게 건반을 두들기는데, 현실의 내 손가락은 더듬더듬 띄엄띄엄 초초보 열등생 수준으로 건반을 헤매곤 했다.
그렇게 떠듬거리던 그 시절을 후울쩍 지나
오랜만에 피아노 뚜껑을 열고 '초록 바다'를 노래 부르면
통통 울리는 선율 따라
살랑살랑 초록물결이 손을 간지럽히고
찰방찰방 초록여울이 종아리까지 차오르는 듯하다.
'초록 바다'를 부르며 초록에 스미듯
초록이라면 모두 예뻐서, 뜨개실도 초록을 자주 선택한다.
올해 직장뜨개동아리에서 첫 번째로 만든 '토트백' 역시 초록색이다.
초록의 상큼함과 라탄느낌의 짜임으로 가방이 제법 시원하게 보인다.
이 가방은 만드는 방법이 복잡하지 않다.
초보와 마찬가지인 나에게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사이버세상 속 뜨개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뜨면 된다.
토트백의 준비물은 실, 코바늘, 돗바늘.
유튜브 영상*을 참고하여 사진처럼 가방바닥을 만들고 가방 옆을 떠 쌓아 올린다. 마지막에 '새우 뜨기'로 가방끈을 두 개 만들어 돗바늘로 이어주면 된다.
완성한 가방은 초록색만으로도 예뻐 눈이 맑아지는 느낌이다. 하지만 뭔가 밋밋하다.
2% 부족할 때,
화룡점정이 필요한 순간.
가방에 키링을 달아볼까?
산책길의 하얀 샤스타데이지를 떠올린다.
초록이 차오르는 계절에 함께 어울려 피던 꽃.
'맞아, 데이지가 좋겠어'
초록가방에 달아줄 키링으로 데이지꽃을 정한다.
하얀 데이지가 초록가방에 사랑스러움을 더해줄 것 같다.
유튜브 검색창에 '코바늘 데이지 키링'을 친다.
주르르 코바늘 꽃 뜨기 영상이 올라온다.
맘에 드는 꽃모양을 고르고, 사이버세상 뜨개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데이지를 뜬다.
데이지꽃 키링의 준비물은
자투리실(원하는 색), 코바늘, 돗바늘, 솜, 키링고리.
실이 많이 필요치 않은 키링은 쓰고 남은 자투리실을 주로 활용한다.
데이지는 모양만으로도 예뻐서 어떤 색을 사용하든지 모두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난다.
유튜브** 설명을 참고하며 사진의 순서대로 같은 모양을 두 개 뜬다.
돗바늘로 4번의 꽃 두 개를 솜을 넣어가며 꿰매주면 끝.
나는 솜으로 통통해진 데이지 꽃에 집에 굴러다니는 열쇠고리 한 개를 찾아내어 달았다.
하얀 데이지 키링이 달린 초록가방을 본다.
'화룡점정이란 이런 것이지, 우훗'.
나는 자화자찬하였다.
기대한 것보다 너무 맘에 들어, 뜨개동아리 단체톡에 사진과 함께 올렸다.
'늦게 완성했지만 너무 예뻐 자랑삼아 올려봤어요. 헤헤~~'
답글이 떴다.
'완성하셨네요...ㅎㅎ 수고하셨습니다... 이뻐요.. 키링센스 더욱 이쁘고요^^'
다정하신 뜨개동아리장님은 매번 꼴찌로 완성하는 지각생에게도 칭찬과 격려의 말씀을 아끼지 않는다.
'옴마,,,키링 색상 선택도 딱이고요, 너무 예뻐요^^'
'와 예뻐요.'
'완성을 축하드립니다. 너무 예쁘네요.'
동아리 회원님 말씀들.
소가 뒷걸음치다 쥐를 잡은 듯,
어쩌다 산책길의 초록들과 하얀 데이지에 힌트를 얻어 만든 것인데, 어쩜 이리 상냥하게들 화답해 주실까.
초록가방이 하얀 데이지를 만났다.
가방은 제법 수납력이 있어 파우치, 휴대폰, 지갑, 물병, 책 한 권, 이것저것 담을 수 있다.
도서관 갈 때, 가까운 곳에 외출할 때, 일터에도 가끔씩 들고 가면 소녀 같은 기분이 든다.
초록가방을 들고 일터에 다녀오는 길.
왠지 기분이 좋다.
오늘 같은 날이 바로
'연두부처럼 마음이 몰캉해지는 날이렸다.'
피아노 뚜껑의 먼지를 쓸고
'초록바다'를 노래 부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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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빛 여울물에(초록빛)
두~발을 담그면(담그면)
물결이 살랑 어루만져요
물결이 살랑 어루만~~~져요.
하얀 원피스를 입고 초록 가방을 들면
더운 날에도 내 마음은
초록 바다에 두 손을 담근 듯
초록 여울에 두 발을 담근 듯
몸과 마음에도 어여쁜 초록빛 물이 들어
멀리멀리 떠나지 않아도 여름을 시원하게 날 수 있을 것 같다.
올여름을 보내는 나의 잇템, 초록빛 작은 토트백.
이제 신나게 여름을 보낼 계획만 세우면 된다. 야홋!
하지만 만약 여름 바다로 떠난다면, 데이지꽃 대신 갈매기, 물고기, 해파리, 불가사리, 조개로 키링을 만들어 달면 되겠지요?
참고:
유튜브*(토트백) https://www.youtube.com/watch?v=qqy6dF0z7qU&t=1851s
유튜브**(데이지키링) https://www.youtube.com/watch?v=axCX9gqX5GQ&t=827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