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앙은 행복했을까, 첫 번째 사주상자
결혼하여 새댁이 된 나의 첫 취미는 한지공예였다.
검은 머리에, 허리도 가늘며, 손가락 마디도 억세지 않던 때였다.
남산만큼 배가 부른 채 허리를 손으로 받쳐가며 한지를 붙이던 기억을 마지막으로 취미는 중단되었다. 시작한 지 이 년여 만이었고, 첫 아이를 낳음과 동시였다.
칼과 가위를 사용하고, 풀을 쑤어 바르고 붙이는 작업을 아기를 돌보면서 하기에는 힘들었다. 무엇보다 위험하였다. 갓난아이를 두고 취미생활을 이어갈 몸과 마음의 여력도 없었다.
아기 한 명을 돌보는 일이 온 우주를 관리하는 것처럼 벅차기만 한 초보엄마였다.
지금 우리 집에 남아 있는 한지공예품들은 그러니까 그 시절,
내가 갓 결혼한 새댁이었을 때,
남편이 아직 00씨 하고 나를 불렀을 때,
시부모님이 아가, 며늘아 하고 불렀을 때,
돌아가신 친정아빠가 '꿈같은 신혼이라!' 하셨을 때,
엄마가 '이서방 밥은 잘 차려주냐' 미심쩍게 물어보셨을 때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새댁이었을 때 내가 살았던 곳은 '한지의 고장'이라 이름난 도시였다.
한지의 우수함이 재조명되는 시기였고, 질기고 오래가는 한지의 장점을 살린 생활용품연구도 활발히 진행되었다. 자연스레 한지로 만든 전통공예품의 귀함과 아름다움도 알아보기 시작하였다.
한지공예를 가르치는 곳도 생겨서
우연한 기회에 그곳을 발견한 나는 불쑥 들어가 배우기를 청하였다.
한지의 따뜻하고 섬세한 질감.
색색이 물들인 한지의 고풍스럽고 우아한 빛깔.
우주의 섭리가 들어있는 듯한 상징적인 문자와 기하문양.
자연을 아름답게 단순화한 인물, 동물, 식물문양들에 나는 먼저 매료되었다.
또 한지공예품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그 세계가 무척 흥미로웠다.
한지공예를 배우면서 내가 만든 사주상자는 총 세 개였다.
한 개는 첫 번째 수업으로 만든 것이고, 나머지 두 개는 나중 공예품 전시회에 내기 위해 세트로 만든 것이다.
얼마 전, 서랍장 다리 사이 깊숙이 밀어놓고 잊어버렸던 첫 번째 사주상자를 꺼내보았다.
제 주인의 무관심에 수북이 쌓인 상자 위 먼지는 여러 번 쓸어내고 닦아내도 잘 떨어지지 않았다. 이미 먼지때가 침착되어 상자는 어둡고 칙칙해져 있었다.
작은 물건들을 넣어두었던 자리는 무엇인가 달라붙은 흔적에 얼룩이 졌고, 문양의 한 귀퉁이는 하얗게 해져 있었다.
테를 둘러 마감한 모서리도 닳아 벗겨지는 중이었다.
세월의 흐름과 무관심 속에 사주상자는 낡아있었다. '좀 더 신경 써 보관할 걸' 나는 후회하였다.
그리고 나의 결혼생활도 이 사주상자의 모양새와 비슷하다고 문득 생각하였다.
나는 사주상자를 '사주단자를 좀 더 예를 갖추어 넣는 함'이겠거니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 속에 들어가는 '사주단자'가 뭔지도 그리 궁금하지 않았다. 어서어서 배워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고픈 마음이 앞섰다.
한지공예는 굉장히 섬세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수작업이었다.
선생님이 가르쳐주시는 대로 나는 사주상자를 만들었다.
먼저, 두꺼운 하드보드지를 칼로 자르고 붙여 사주상자의 틀을 만들었다. 내가 만든 사주상자의 경우 두 개의 층으로 나뉘므로 이 부분을 찬찬히 계산해서 균형을 맞추었다.
엄마에게 물어 처음 쑤어본 풀로 겉상자 바깥엔 황토색 한지를, 안쪽엔 붉은색 한지를 붙였다. 접히거나 울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속상자엔 신부의 초록저고리와 다홍치마를 떠올리며 초록과 붉은 색한지를 구석구석 꼼꼼히 붙였다. 풀을 먹은 얇은 한지가 찢어지지 않아야 하니 손끝이 야물고 세심하면 더 좋았을 것이다.
풀 바른 한지가 마르는 동안, 부부의 상징 원앙문양을 각 부분에 어울리는 색으로 배색한 다음 가는 칼로 오려내 4면에 고루 배치하여 붙였다.
아래층 속상자엔 노란색 바탕에 목숨 수(壽) , 위층은 초록색 바탕에 목숨 수(壽) 문양을 다른 색으로 한 겹 더 배색하여 오려 붙였다.
이 과정을 다 마치고 상자 전체에 풀이 뭉치지 않게 골고루 여러 번 발라주었다. 풀이 완전히 마른 어느 맑은 날, 창문을 활짝 열고 락카를 곱게 칠하여 마무리했다.
완성한 사주상자는 반짝반짝 윤이 났다. 황톳빛의 은은함과 초록, 다홍색의 영롱함을 머금고 있었다. 아름다운 수(壽) 문양도 또렷하였다.
나는 오리, 기러기 조각상 대신 원앙 한쌍이 붙여진 사주상자를 거실 TV장위에 올려놓았다.
사주상자를 바라보며 나는 뿌듯하고 흐뭇했다.
갓 만든 사주상자는 고왔고, 신혼의 집안은 정결했으며, 젊은 새댁의 피부도 팽팽하고 윤기가 흘렀다.
나의 결혼생활도 이렇게 때깔 곱게 흘러가리라 기대했을 것이었다.
한쌍의 원앙처럼 언제까지 서로만 바라보며 갈등 없이,
초록저고리 다홍치마를 입은 신부처럼 생활은 설레고 감미롭기를,
목숨 수(壽)처럼 길게 길게 'happily ever after' 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happily ever after'한 왕자 공주이야기는 그림책 속 동화일 뿐,
결혼은 레알이고 실전이라는 것을
질기고 질리게 서로를 매어놓는다는 것을
사주상자를 만들고 있는 중에도 이미 짐작하고 있었을 것이다.
* '두 번째 사주상자'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