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쉽게 맺은 연(緣), 두 번째 사주상자
1년 이상 사귀고 난 뒤에 시작하는
결혼생활은 어떨까.
사람 속은 열길 물 속이라
오래 봤다고 다 안다 할 수 없고,
알고 있다 생각했던 모습도
껍질 벗길 때마다 달라지는 양파 같을 수 있겠지만,
그래도 그 시간이면
'결혼했을 때 서로 잘 맞을지 안 맞을지,
서로를 감당할 수 있을지 없을지'를
신중히 판단 내리도록 시간을 벌어주지 않을까.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는 만고불변의 진리에 따라
나는 오래 만나보고 결혼한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그들은 서로에 대한 앎과 그간 쌓인 정으로
결혼생활의 갈등을 좀 더 지혜롭게 극복할 것 같았다.
일 년 사계절은 만나봐야 했다고 후회했다.
한지공예를 시작하고 얼마 뒤, 공예품 전시회에 내기 위해 두 번째 사주상자를 만들었다.
선생님은 공예수업과는 별도의 '특별레슨'으로 전시회에 출품할 작품을 지도해 주셨다.
나를 비롯한 수강생 모두는 특별레슨비가 얼마이던지간에 선생님의 특별한 지도를 받고 싶어 안달이 났다. 출품이력을 차곡차곡 쌓고 열심히 배워 익히면 이름 앞에 '한지공예가'라는 타이틀을 달 수도 있었다. 운이 더 좋으면 문화센터나 평생교육기관의 강사자리를 얻을 수도 있었다. 물론 선생님의 인정이 제일 중요했다. 연줄이 많던 선생님은 00시 한지공예의 대모로서 자신의 애제자를 그런 곳에 꽂아줄 수 있는 능력을 갖추셨던 것이다.
선생님은 전시회에 내는 것이니, 이왕이면 두 개를, 세트로 만들자고 말씀하셨다.
만드는 방식은 첫 번째 사주상자와 동일하였다.(주 1)
전시회 출품이기에 첫 번째 것보다 더 멋을 부렸다.
겉상자 위와 옆 가장자리에 턱을 한 층 올리고, 문양을 두 겹으로 하여 입체감을 살렸다. 두 개가 세트이되 서로 다르게 색과 문양의 차이를 두었다.
두 개 중 하나에는(사진)
연노란 송화(松花)색 한지로 바탕을 하고 한가운데 봉황과 꽃이 어우러진 문양을 붙였다. 네 귀퉁이 모서리엔 복(福)을 상징하는 박쥐문양을, 한 겹 더 층을 올려 입체감을 준 테두리에는 장수와 다산을 뜻하는 덩굴무늬를 장식하였다.
속상자는 위층을 세 칸으로 나누고 삼색바탕에 태극을 붙였다. 파랑이 들어간 것보다 초록을 넣은 삼색태극이 더 예뻐 보였다. 아래층 바닥은 붉은 바탕에 좀 더 큰 태극으로 만들어 붙였다.
처음 만든 원앙문양 사주상자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한 셈이다.
하지만 업그레이드 한 작품이라고 세월이 봐주지는 않는 법.
오랜만에 꺼내 본 사주상자.
봄날 송홧가루 같았던 연노랑 상자에는 먼지 때가 배었고 점처럼 피어난 곰파이는 상자를 칙칙하게 하였다.
상자의 탁한 얼룩들은 마치 새댁의 맑던 피부에 어느새 내려앉은 거뭇한 기미 같았다.
남편은 새언니 남동생의 친구였다.
첫 만남의 장소인 레스토랑에서
우리는 스테이크를 썰었다.
포크와 나이프를 잡은 남편의 흰 와이셔츠 소맷부리가 까맸다. 소개팅을 마치고 귀가한 내가 상대의 까만 소맷부리에 대해 말하자, 나의 친오빠는 '열심히 일하다 보면 책상먼지에 쓸려 소매가 더러워지기도 하는 것'이라며 편을 들었다.
그때 당시 나는 결혼한 오빠집에서 살고 있었다.
언니와 내가 자취하던 13평 아파트를 팔아 오빠의 신혼집 마련에 보탰었기에 자연스레 오빠네와 함께 살게 되었다.
나는 새언니 동생이 자기 친구를 소개한 것과, 오빠가 자꾸 남편의 편을 드는 것으로 혹시
'나를 오빠집에서 빨리 내보내기 위한 프로젝트'가 진행 중인 것 아닐까 의심하였다.
오빠는 종종 '시집갈 생각은 안 하고 맨날 술만 (처)먹고 다닌다느니', '이러니 바겐세일이라도 해서 결혼을 시켜야겠다느니'등의 잔소리를 애정 담은 우스개로 시전 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럴 때면 나는 사귀는 사람도 뭣도 없으면서
"알았어, 알았어, 내년엔 꼭 결혼할 테니 걱정 붙들어 매셔" 너스레를 떨었고,
오빠는 "참 나" 하며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이런 상황들이 나는 기분 나쁘거나 서운하지 않았다.
장남으로서 학부형(學父兄)(주 2)의 의미를 계속 주입받고 자란 오빠는 자신을 결혼 안 한 여동생의 보호자라 여기고 있었을 터였고
나는 나대로
'내가 안 가고 있는 것이지 못 가고 있는 것이 아냐, 내가 맘먹으면 언제든지 결혼할 수 있어'라는
밑도 끝도 없는 '근자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말이 씨가 되었는지, 내가 말의 씨를 키웠는지
그 내년의 1월 중순에 처음 만난
새언니 동생 친구인 남편과
4월 말에 바로 결혼식을 올리고 말았다.
만난 지 3개월 만이었다.
이 무슨,
집안끼리 결정하면 순식간에 혼인이 이뤄지던 봉건시대도 아니고,
오래 연애만 하고 살아도 하나 이상할 것 없는,
밀레니엄을 코 앞에 둔 그 시절에
나는 이렇게 쉽게도 결혼의 연(緣)을 맺었다.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주 1) 함(상자)을 만드는 순서
1. 하드보드지를 오려 상자틀을 만들고 목공풀로 붙인다.
옛날이라면 종이를 여러 겹 덧붙여 두껍게 하거나 불린 종이를 풀과 반죽하여 틀을 만들었을 것이다.
2. 밀가루 또는 찹쌀 풀을 쑤어 하얀 한지를 속지로 붙인다.
3. 2위에 바탕색 한지를 붙인다.
4. 원하는 전통문양을 칼로 오리고, 필요에 따라 배색하여 붙인다.
5. 상자 모서리나 가장자리를 바이어스 하듯이 한지를 오려 두르며 붙인다.
6. 완성하면 전체를 쑤어둔 풀로 여러 차례 바른다.
뭉치지 않게 틈 없이 골고루 발라야 습기에 강하게 된다.
한지공예품이 튼튼하고 오래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7. 투명한 라카나 니스로 잘 바른다. 옛날에는 옻칠을 하거나 기름을 발랐겠다.
(주 2) 학부형(學父兄)
예전에, 학생의 아버지나 형이라는 뜻으로, 학생의 보호자를 이르던 말, 네이버 어학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