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움이 날 살린다.
교실에 들어서는 파랑이 머리에
까치집이 보인다.
파랑이가 뻗치고 들뜬 까치집을
뒤통수에 달고 왔다.
슬몃 웃음이 난다.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파랑이 뒤를 졸졸 따라간다.
까치집이 귀여워 자꾸 뒤통수를 보고 싶다.
'선생님이 왜 나를 따라오지?' 하는 얼굴로
흘낏 파랑이가 나를 본다.
나 어렸을 땐
까치가 아이들 머리에 많이도 집을 지었었지.
세수했는지 안 했는지 알 수 없는 얼굴은
까치집과 한 세트.
그 얼굴에 눈곱이나 콧물까지 달리면
삼종세트 완성.
오래전, 교사가 되고 나서 만난
아이들에게서도 종종 까치집을 보았다.
까치집을 달고 오는 아이들을 나는
대견하게 생각하였다.
지각할까 허둥지둥, 까치집 다듬을 새도 없이 학교에 달려와줬으니 대견.
보살핌 받지 못해 엉긴 까치집머리를 한 채 등교하였으면 안쓰런 마음에 더욱더 대견.
자고 일어난 뒤 까치가 지은 둥지처럼
머리가 이리저리 뻗치고 부스스 떠 있는 모습을 까치집이라 하지.
까치집은 긴 머리 여자아이보다
짧은 머리 남자아이에게 생길 때 더 곤란하다.
짧게 붕 뜬 까치집은 잘 가라앉지 않는다.
눌린 머리 까치집은 원상복구도 잘 안된다.
까치집 부스스한 어른은 그리 귀엽지 않지만,
까만 머리 붕 뜬 아이들 뒤통수 까치집은
볼 때마다 신기하고 귀엽다.
말랑말랑 몽글몽글 내내 미소가 지어진다.
왜 그러지?
내 아이들은 결혼은커녕 남친 여친도 없는데......
교사생활 어느 시점부터는
아이들 머리 까치집 구경을 별로 하지 못했다.
요샌 더욱더 못 본 것 같다.
내가 근무하는 학구 아이들이
매무새 단정히 등교할 수 있도록
특히 더 잘 챙김 받고 있어서일까.
아니면 까치집 머리를 방지하고 정리하는
제품들을 사용하기 때문일까.
궁금하다.
옛날까치는 둥지 틀 데가 없어
사람머리에 집을 짓고,
요즘까치는 집 지을 데가 많아 사람머리카락은 쳐다보지도 않는 것은 아닐 테니까.
아무말 대잔치처럼 글을 쓰고 있지만,
지금도 나는
등교하자마자 자리에 앉아 열심히
'에그 박사'책을 보던 파랑이 머리 까치집을 떠올린다.
그리고 혼자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