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움이 날 살린다.
여름방학을 마치고 아이들이 등교하였어요.
'개학이라니, 이게 실화인가'하는 얼굴들이지만
모두들 빠짐없이 학교에 잘 왔어요.
사실, 어제가 개학인 줄 알고 등교하던
우리 반 보라를 교문 앞에서 마주쳤답니다.
혼자만 가방 메고 등교한 게 부끄러운지
배배 꼬며 삐죽 웃었어요.
저만치 데려다준 보라엄마도 보였어요.
이 상황이 어찌나 우습고도 귀엽던지
"학교에 빨리 오고 싶었나 보네, 내일 만나"하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어요.
교실에 들어온 아이들 얼굴에 살짝 두리번거리는 표정이 스칩니다.
"설레기도 낯설기도 하는 개학날의 그 기분, 선생님도 똑같단다."
말해주었어요.
이십여 일 남짓한 방학이었는데
그 사이에도 아이들은 조금씩 달라지고 조금씩 더 자란 것 같아요.
매년 여름개학 때면 저는 깜짝 놀라곤 합니다. 이번에도 그래요.
딱 보기에도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싶게 달라진 아이들이 있거든요. 바로
해진 얼굴.
분명 방학 전에는 우유푸딩같이 뽀얗고 보드레했었어요.
그런데 잘 구워진 커피번이나 카페라떼같은 갈색얼굴로 바뀌어, 앞니 빠진 입까지 활짝 벌리며 웃고 있어요.
햇볕에 제대로 그을린 거겠죠?
아마 뜨거운 태양아래 '노는 게 제일 좋은' 뽀로로처럼 신나게 놀았을 거예요.
햇볕에 까맣게 탄 그 얼굴과,
그 얼굴에 어린 멀뚱함이 너무 귀여워요.
그 얼굴이 되기까지 아이에게 있었겠다
싶은 일들이 제 머릿속에서 나래를 펼치며
한 편의 여름날 동화가 만들어집니다.
저는 궁금해져요.
자꾸 말 걸고 싶어져요.
모르는 척 다가가 슬그머니 물어봅니다.
"뭘 했길래 이리 까매졌을까? 피부는 안 쓰렸니? 까마귀가 형님이라고 안 불렀어?"
'네엣? 까마귀요?'
뭔 소린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아이들이 나를 봅니다.
"왜에? 선생님 어렸을 땐 까마귀도 말을 했단다.
어떤 사람에겐 형님, 누나라고 부르기도 했지" 합니다.
점심급식을 마치면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놀고 와요.
일분일초 다할 때까지 놀다가 시작종이 울리기 직전에야 우르르 들어옵니다.
비 맞은 것처럼 머리카락이 땀에 젖어있어요.
"아유, 뻘뻘 땀난 것 좀 봐, 잘 씻고 오세요." 하면서,
'저리 뙤약볕에서 매일같이 뛰어노니 얼굴이 하얘질래야 하얘질 수가 없네' 혼자 웃어요.
여름이 조금만 더웠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라고 또 걱정합니다.
더워도 너무 더우니, 뜨거워도 너무 뜨거우니
짧은 점심시간 운동장에서 노는 것이 최고로 즐거운 일인 아이들에게
"조금만 놀다 오렴. 햇볕에 오래 놀면 이젠 위험하단다. 놀다가 힘들다 생각되면 바로 들어와야 해"
매번 당부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그저 '개구쟁이 산복이'처럼 태양아래 맘껏 뛰어놀아야 하는데 말이에요.
개구쟁이 산복이*
이문구
이마에 땀방울 송알송알
손에는 땟국이 반질반질
맨발에 흙먼지 얼룩덜룩
봄볕에 그을려 가무잡잡
멍멍이가 보고 엉아야 하겠네
까마귀가 보고 아찌야 하겠네
* 이문구의 동시집 <개구쟁이 산복이>에 실린 동명의 시. 1988년에 출간된 시집에는 아버지로서 자녀에 대한 따뜻한 사랑과 관심이 묻어나는 시들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