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를 위하여 1

by 버들아씨

보슬보슬 비가 와요 하늘에서 비가 내려요

달팽이는 비 오는 날 제일 좋아해

빗방울과 친구 되어 풀잎 미끄럼을 타 볼까

마음은 신나서 달려가는데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

야호 마음은 바쁘지만 느릿느릿 달팽이

어느새 비 그치고 해가 반짝

아직도 한 뼘을 못 갔구나

조그만 달팽이의 하루

- <달팽이의 하루>, 조원경 작사 김진성 작곡 - *


아이들이 노래를 부른다.

모두 모두 열심히 부른다.

우리 반 까칠이도 차분히 앉아 부른다.

장난꾸러기 표정들이 얼굴에서 사라진다.

목소리에 감성이 충만하다.


세상 처연하게,

어찌 그리 애잔하게 부르는지 모르겠다.

비까지 내리면 아주 난리 날 것 같다.

아이들이 만든 달팽이

어린이 26명이 한마음으로 푹 빠져 부르는 것을 보면 분명 이 노래에 뭔가가 있다.


아이들에게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혹시, 달팽이와 자신들이 서로 닮았다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마음은 빨리 해내고 싶은데

손이 서툴러 느릿느릿할 수밖에 없다든지

학교에선 1학년이 달팽이처럼 제일 조그맣다든지

등교하기 싫은 아침,

달팽이처럼 꾸물꾸물 댄다든지

한참 공부한 것 같은데 겨우 10분밖에 안 지났다든지 말이다.


실제로 희곡낭독모임에서 셰익스피어 희곡을 읽다가 비슷한 대목을 발견하였다.

1599년, 셰익스피어가 30살 정도 나이였을 때 만든 희극 <좋으실 대로(As You Like It)>에

아래와 같은 대사가 나온다.

인상 깊어 밑줄 그었다.

극 중 '제이퀴즈'라는 인물이


<이 세상은 하나의 무대고 세상 모든 사람들은 각각 맡은 역할을 위해서 등장했다가 퇴장해 버리는 배우에 불과하죠. 살아생전에 여러 가지 역을 맡는데 연령에 따라서 전부 일곱 개의 장면으로 나눌 수가 있어요.

첫 번째는 애기장면. 유모의 팔에 안겨 울면서 보채는 역이죠.


그다음은 개구장이 아이 장면.

아침햇살을 받으면서 가방을 메고 달팽이처럼 마지못해 학교로 기어들어가구요>


이 부분을 함께 읽던 중

내가 교사임을 아는 맞은편 회원이


"이 때도 아이들이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것은 똑같았네요"


하여서 크게 같이 웃었었다.

나도 그 구절에 매우 공감했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밑줄을 그어 놓았다.


'그래, 옛날이나 지금이나 아이들은 학교 가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거야.

달팽이에 대한 비유도 16세기나 지금이나 똑같으니 더 놀랍고. 역시 클래식은 영원해'

속으로 감탄하였다.


그리고 아이들이 왜 그리 <달팽이의 하루>를 애잔하게 불렀는지, 그 이유를 셰익스피어가 바로 내 앞에서

증명해 주는 것 같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이후 이 일들이 가끔 떠오를 때면 달팽이와 아이들이 오버랩되고, 이 모든 것들이 '엉뚱 발랄' 귀엽고 재미있어져 '푸하하' 혼자 웃었다.

노래 <달팽이의 하루>까지 어느새 흥얼거리며 말이다.


또,

산책길 풀잎 위에 노니는 달팽이를 보거나,

더듬이를 곤두세운 채

시멘트 바닥을 기어가는 달팽이를 발견하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나도 몰래 애틋한 마음으로 바라보곤 하였다.

달팽이의 하루-By MH(인디스쿨)

하지만

지난 초여름

어느 이른 아침,


이런 나의 마음이 무참히 뭉개지고 말았다.



(다음 글로 이어 씁니다.)



* 1학년 교과서에 실려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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