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를 위하여 2

by 버들아씨

1편에 이어 씁니다.


그날도 나는 공원을 가로질러 출근하고 있었다.

버스를 두 번 갈아타야 하기에 아침 6시에 집을 나섰다.

몇몇 사람들이 공원 한쪽에서 철봉, 공중 걷기, 등허리지압등을 하고 있었다.

나는 운동하는 사람들을 지나쳐 공원 옆길로 내려왔다.

공원을 낀 좁은 골목을 걷던 나는 바짝 마른 아스팔트 위를 기어가는 달팽이 한 마리를 발견하였다. 달팽이는 더듬이를 곤두세운 채 길 옆 수풀 쪽으로 기어가고 있었다.

갸웃갸웃 더듬이를 움직이는 걸 보니 촉촉한 풀밭이 있는 곳을 탐색하며 가는 듯했다.


이른 아침 모처럼 만난 달팽이가 반가워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달팽아, 안녕, 반가워. 어찌 여기로 와서 이리 힘들게 기어가고 있을까?'

혼잣말을 건네며 이쪽저쪽 사진을 찍었다.

그날 아침의 달팽이

나는 까끌거리는 바닥에 배를 대고 기어가는 달팽이가 안쓰러웠다.

집어서 풀숲에 놔주려다 내 손길에 더 놀랄까 싶어 휴대폰을 든 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 저 쪽에서 어떤 남자가 성큼성큼 걸어왔다. 얼핏 느낌에 아까 공원에서 운동하던 분 같았다.

이 길을 지나가는 것이려니 하는데

갑자기 그 사람이 내 앞에서 딱 멈춰 섰다. 커다란 신발이 보였다.


그 사람은 대뜸,


"뭐 이런 것을 찍고 있어요?

이게 얼마나 나쁜 놈인데, 배춧잎 다 갉아먹어요."


"이런 건 보는 대로 죽여버려야 해요"


하며 내 눈앞에서,

순식간에 발로 달팽이를 문질러 버렸다.

등산화 두꺼운 밑창이 거친 바닥에 드륵 마찰되는 소리가 들렸다.


쭈그려 앉아 있던 나는 쎈 망치에 얻어맞은 두더지처럼 펄쩍 튕겨 일어났다.


"아니,,,,아,,, 아저ㅆ,, 이게 무,, 무스 어,,,어떻게,,이 이 러,,,"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충격에 입이 얼어붙은 듯했다.

그 사람은 그런 나를 무시하고 휙 지나가 버렸다.

나라는 사람은 안중에도 없이 내 코 앞에서

오로지 달팽이에 대한 분노를 발바닥으로 배설한 채 가버렸다.


나는 형체도 없이 뭉개졌을 달팽이를 볼 수가 없었다.

달팽이를 무참히 문질러버린 그 사람에 대한 공포로 심장이 쉴 새 없이 쿵쾅거렸다.

그 남자는 버스 타기 위해 매일 내가 다니던 그 길로 저만치 앞서가고 있었다.

그 남자 뒤를 따라갈 수는 없었다. 달팽이를 향한 그 행동이 너무 혐오스러웠고 나에게로 분노를 전이시켜 해코지할 것 같았다. 나는 그를 피해 옆길로 빙 돌아가서 버스를 탔다


학교에 가까워지고 충격과 공포가 조금씩 가라앉아 갈 때쯤 나는 심장 저쪽에서 올라오는 또 다른 기분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초면의 타인인 내 앞에서 행한 그 행위.

자신의 생각이 옳으면 맘대로 해도 된다는 막무가내의 무례함.

그 무례함에 모욕당했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달팽이와 함께 나의 존엄도 뭉개진 듯한 느낌이었다.


학교에 도착해서도, 수업 중에도 무시로 그 순간이 떠올라 힘이 들었다. 이런 기분으로 하루를 지속할 수는 없었다. 나는 결국 '달팽이가 배추농사에 어떤 피해를 주는지'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다. 그 남자가 그런 행위를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달팽이가 징글징글한 해충인지 알아야 했다. 그래야 그 사람의 행동을 이해하고 애써 내 마음을 다독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과연, 달팽이가 배추를 갉아먹고 상품성을 떨어뜨리는 것은 사실이었다. 배추농사를 업으로 삼는 다면 달팽이는 귀여워할 게 아니라 잡아 죽여야 할 해충임이 분명하였다.

그러하니,

어떤 사람에게는 달팽이가 그저 해충일 뿐일진대, 그것이 귀여워 사진 찍고 말 건네고 하는 나와 달팽이에 어찌 화가 나지 않을 수 있었으랴.

맞다.



하지만 나는 묻고 싶다. 항변하고 싶다.


그 달팽이가 배추밭에 있었나요?

당신의 배추를 갉아먹고 있었나요?

그저 거칠고 마른 아스팔트를 따갑게 기어 풀밭으로 가고 있었을 뿐이었어요.

자신을 살게 해 줄 이슬이 묻은 풀잎을 찾아가고 있었다구요.

그렇게 꼭 문질러 버렸어야 했어요?

그것도 그것을 안쓰러이 바라보고 있던 초면의 한 인간 앞에서요.


물론 당신은 몰랐겠지요.

그 초면의 타인이

달팽이가 마치 느릿느릿 꾸물대는 아이들 같아

귀엽고 애틋하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요.


만일 알았었다면

당신은 분명 그렇게 하지 않았을 거예요.

단지 몰랐을 뿐이에요.

그렇죠?

그렇다고 말해주세요.




*덧글

이 글을 쓰면서 눈물이 많이 나서 당황했어요. 그만큼 그날 일이 상처였나 봅니다.

안타깝고 힘든 일이 많은 세상에, 어쩌면 이 글이 지나친 감정과잉이 아닌가 싶어 발행하지 말까 주저하였습니다.


참 어려운 일 같아요.

달팽이는 생태계의 먹이사슬 중의 하나인, 그냥 그렇게 달팽이일 뿐인데

인간의 눈으로 볼 때는 농사를 망치고 뭔가를 갉아먹는 해충이 되기도 하고,

식용, 의약품으로 쓰이는 이로운 생물이 되기도 하고, 또 친근하고 귀여운 반려동물이 되기도 하네요.

그 사이에서 어떻게 조화롭고 균형 있게 갈피를 잡으며 살아가야 할까요?

잊고 지냈던 오래된 숙제를 다시 꺼낸 기분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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