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에 이어 씁니다.
그날도 나는 공원을 가로질러 출근하고 있었다.
버스를 두 번 갈아타야 하기에 아침 6시에 집을 나섰다.
몇몇 사람들이 공원 한쪽에서 철봉, 공중 걷기, 등허리지압등을 하고 있었다.
나는 운동하는 사람들을 지나쳐 공원 옆길로 내려왔다.
공원을 낀 좁은 골목을 걷던 나는 바짝 마른 아스팔트 위를 기어가는 달팽이 한 마리를 발견하였다. 달팽이는 더듬이를 곤두세운 채 길 옆 수풀 쪽으로 기어가고 있었다.
갸웃갸웃 더듬이를 움직이는 걸 보니 촉촉한 풀밭이 있는 곳을 탐색하며 가는 듯했다.
이른 아침 모처럼 만난 달팽이가 반가워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달팽아, 안녕, 반가워. 어찌 여기로 와서 이리 힘들게 기어가고 있을까?'
혼잣말을 건네며 이쪽저쪽 사진을 찍었다.
나는 까끌거리는 바닥에 배를 대고 기어가는 달팽이가 안쓰러웠다.
집어서 풀숲에 놔주려다 내 손길에 더 놀랄까 싶어 휴대폰을 든 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 저 쪽에서 어떤 남자가 성큼성큼 걸어왔다. 얼핏 느낌에 아까 공원에서 운동하던 분 같았다.
이 길을 지나가는 것이려니 하는데
갑자기 그 사람이 내 앞에서 딱 멈춰 섰다. 커다란 신발이 보였다.
그 사람은 대뜸,
하며 내 눈앞에서,
순식간에 발로 달팽이를 문질러 버렸다.
등산화 두꺼운 밑창이 거친 바닥에 드륵 마찰되는 소리가 들렸다.
쭈그려 앉아 있던 나는 쎈 망치에 얻어맞은 두더지처럼 펄쩍 튕겨 일어났다.
"아니,,,,아,,, 아저ㅆ,, 이게 무,, 무스 어,,,어떻게,,이 이 러,,,"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충격에 입이 얼어붙은 듯했다.
그 사람은 그런 나를 무시하고 휙 지나가 버렸다.
나라는 사람은 안중에도 없이 내 코 앞에서
오로지 달팽이에 대한 분노를 발바닥으로 배설한 채 가버렸다.
나는 형체도 없이 뭉개졌을 달팽이를 볼 수가 없었다.
달팽이를 무참히 문질러버린 그 사람에 대한 공포로 심장이 쉴 새 없이 쿵쾅거렸다.
그 남자는 버스 타기 위해 매일 내가 다니던 그 길로 저만치 앞서가고 있었다.
그 남자 뒤를 따라갈 수는 없었다. 달팽이를 향한 그 행동이 너무 혐오스러웠고 나에게로 분노를 전이시켜 해코지할 것 같았다. 나는 그를 피해 옆길로 빙 돌아가서 버스를 탔다
학교에 가까워지고 충격과 공포가 조금씩 가라앉아 갈 때쯤 나는 심장 저쪽에서 올라오는 또 다른 기분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초면의 타인인 내 앞에서 행한 그 행위.
자신의 생각이 옳으면 맘대로 해도 된다는 막무가내의 무례함.
그 무례함에 모욕당했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달팽이와 함께 나의 존엄도 뭉개진 듯한 느낌이었다.
학교에 도착해서도, 수업 중에도 무시로 그 순간이 떠올라 힘이 들었다. 이런 기분으로 하루를 지속할 수는 없었다. 나는 결국 '달팽이가 배추농사에 어떤 피해를 주는지'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다. 그 남자가 그런 행위를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달팽이가 징글징글한 해충인지 알아야 했다. 그래야 그 사람의 행동을 이해하고 애써 내 마음을 다독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과연, 달팽이가 배추를 갉아먹고 상품성을 떨어뜨리는 것은 사실이었다. 배추농사를 업으로 삼는 다면 달팽이는 귀여워할 게 아니라 잡아 죽여야 할 해충임이 분명하였다.
그러하니,
어떤 사람에게는 달팽이가 그저 해충일 뿐일진대, 그것이 귀여워 사진 찍고 말 건네고 하는 나와 달팽이에 어찌 화가 나지 않을 수 있었으랴.
맞다.
하지만 나는 묻고 싶다. 항변하고 싶다.
그 달팽이가 배추밭에 있었나요?
당신의 배추를 갉아먹고 있었나요?
그저 거칠고 마른 아스팔트를 따갑게 기어 풀밭으로 가고 있었을 뿐이었어요.
자신을 살게 해 줄 이슬이 묻은 풀잎을 찾아가고 있었다구요.
그렇게 꼭 문질러 버렸어야 했어요?
그것도 그것을 안쓰러이 바라보고 있던 초면의 한 인간 앞에서요.
물론 당신은 몰랐겠지요.
그 초면의 타인이
달팽이가 마치 느릿느릿 꾸물대는 아이들 같아
귀엽고 애틋하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요.
만일 알았었다면
당신은 분명 그렇게 하지 않았을 거예요.
단지 몰랐을 뿐이에요.
그렇죠?
그렇다고 말해주세요.
*덧글
이 글을 쓰면서 눈물이 많이 나서 당황했어요. 그만큼 그날 일이 상처였나 봅니다.
안타깝고 힘든 일이 많은 세상에, 어쩌면 이 글이 지나친 감정과잉이 아닌가 싶어 발행하지 말까 주저하였습니다.
참 어려운 일 같아요.
달팽이는 생태계의 먹이사슬 중의 하나인, 그냥 그렇게 달팽이일 뿐인데
인간의 눈으로 볼 때는 농사를 망치고 뭔가를 갉아먹는 해충이 되기도 하고,
식용, 의약품으로 쓰이는 이로운 생물이 되기도 하고, 또 친근하고 귀여운 반려동물이 되기도 하네요.
그 사이에서 어떻게 조화롭고 균형 있게 갈피를 잡으며 살아가야 할까요?
잊고 지냈던 오래된 숙제를 다시 꺼낸 기분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