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

귀여움이 날 살린다.

by 버들아씨

선생님도 아이들도 제일 기다리는 시간.

오늘도 나와 아이들은 엄마오리 아기오리처럼 줄을 지어 급식실로 이동한다.

얼마 전 한명 더 전학와 우리반은 27명이 되었다. 27명이 줄지어 이동할 때면 뱀처럼 꼬리가 길어지고,


"앞 친구 잘 따라오세요. 장난치면서 걷다가 다쳐요. 블라블라....."

나는 꽥꽥 잔소리쟁이 엄마오리(아니 할머니 오리)가 된다.


이제 곧 시작되는 감사한 한끼의 행복.

나는 우리학교 급식에 매우 만족한다.

매끼 다양한 메뉴에, 모든 반찬이 맛깔스럽다.

건강에 지극정성인 영양교사와 조리실무원께서 유기농 식재료와 자연조미료를 사용하여 찬을 만드신다.


이 만족에 플러스 되는 또 하나가 있는데, 두둥!

디. 저. 트.

가 항시 곁들여진다는 점이다.

반찬이 아무리 맛있어도 후식이 없다면 왠지 서운한 법.

식목일엔 나무케익, 단오엔 수리취떡, 추석에는 송편 등등. 과일, 쿠키, 파이, 음료, 아이스크림... 가지각색 맛난 디저트가 시기적절 나온다.


아이들은 디저트를 먼저 먹고 싶어 안달이 난다. 왜 아이들 뿐이겠나, 그 마음은 나도 지지 않는다.


하지만,

영양선생님께서 마이크를 들고


"디저트는 맨 마지막에 드세요. 먹고 싶다고 먼저 드시면 안됩니다. 다른 반찬부터 드세요."

말하고 다니신다.


오늘은 디저트로 우리밀 파이가 나왔다. 사과파이와 고구마파이 중에 선택할 수 있다.

나는 사과파이를 골랐다.

옆에 앉은 우리반 주홍이는 고구마파이다.

주홍이는 키번호 맨 끝에 서는 통통한 남자아이.

영양선생님 눈길에 먹을 수는 없고,

파이를 들고 연신 냄새를 맡으며

"흐음~~ 흐음, 맛있는 냄새."한다.

앞친구에게 "너도 맡아봐." 하더니


다시 파이를 들고, 마치 커피광고에 나오는 남자배우가 커피향을 맡는 듯한 포즈로 하는 말,


"흐음, 낭~만!"


호오, 이게 무슨 소린고. 그 언제적 '낭만'이던가.

간지럽고 오글거려 언제부턴가 저쪽에 치워둔 그 이름 '낭만'

그 낭만이 8살 주홍이 입에서 나왔다.


"하하하, 주홍아, 낭만이 뭐야? 맛있는 파이를 흐음하고 즐기는 게 낭만이야?"

주홍이가 수줍게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맞장구치며

"맞아 맞아, 그게 낭만이야." 칭찬하였다.


'낭만이 별건가, 이런 순간들의 즐김. 이것이 바로 낭만이지.'

'우리 귀요미들이 숨어있던 나의 낭만을 깨우는구나!'

생각하며,


나도 주홍이따라

사과파이를 들고

"흐음"

냄새를 맡았다.



지난 일요일에 노트북을 들고 카페에 갔다. 음료만 주문하기 서운하여 케익도 한조각 주문했다. 꼭 케익이 먹고싶어서가 아니다. 차와 케익이 함께 있는 순간을 즐기고 싶기 때문이다. 진짜다.


나는 그 기분좋음을 사진 찍어 딸에게 전송했다.


나: 집 앞 이*야


딸: 케이크를 여전히 못 끊으시는구만


나: 낭만


주홍이가 일깨워준 '낭만'으로

즉시 딸의 말문을 막았다.


오늘도 귀여움이 나를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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