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시작하는 주문

왜 이렇게 일찍 출근하세요?

by 버들아씨

“왜 이렇게 일찍 출근하세요? 출근 시간이 자꾸 빨라지시는 것 같아요.”

퇴근길 주차장에서 마주친 선생님이 묻는다.


“아침의 고요한 교실이 너무 좋은걸요” 대답하며 웃는다.


내가 생각해도 나의 출근 시간은 자꾸 빨라지고 있다.


정해진 출근시간은 오전 8시 40분까지고, 예전의 나는 8시 25분쯤 학교에 도착하곤 하였다. 하지만 몇 년 전 편도 1시간 걸리는 학교로 전근하면서 상황이 달라지게 되었다. 출발시간이 조금만 늦어져도 출근 차량이 몰리는 시간대와 맞물려, 8시 40분에야 아슬아슬하게 교문을 통과한다는 걸 몇 번의 시행착오로 알게 되었다. 조바심치며 교문을 들어서는 것도 싫거니와, 허둥지둥 하루를 시작하지 않으려면 적어도 7시쯤에는 집에서 출발하는 것이 안전하였다.


근 이년 여를 이렇게 출퇴근했더니 자연스레 아침 일찍 집을 나서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집과 가까운 학교로 옮긴 뒤에도 이 습관은 지속되어 보통 8시쯤이면 학교에 도착하곤 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점점 빨라져 7시 45분쯤 도착하더니, 갈수록 더 앞당겨져 7시 10분이면 이미 교문을 들어서게 되었고, 지금은 아예 7시에 도착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오늘은 연달아 초록신호를 받은 덕분에 7시가 되기도 전에 학교에 도착하였다.

현관에 들어서는 순간 당직기사님이 나오며 멋쩍게 웃으신다. 깜박 잠이 드는 바람에 어제 출입문을 늦게 열었다는 말씀을 또 하신다. 늦어도 아침 6시 반에는 교문과 현관문을 열어야 하는데, 하필 그 순간 잠이 들어 제시간에 문을 열지 못한 게 못내 신경 쓰이시는 모양이다.


어제는 나보다 일찍 출근하신 두 선생님이 현관 앞에서 서성거리고 계셨었다. 문이 잠겨있던 것이다. 우리는 ‘열어달라’ 현관문을 두드리고, 번갈아 당직실에 전화를 걸었지만 실내에선 아무 기척이 없었다. 포기하고 수다를 떨다 보니 20여분이 지났고 그제서야 당직실에 노란불이 켜졌다.

내내 깨어 계시던 당직기사님이 문을 열어야 되는 그 시간에 하필 까무룩 잠에 빠지셨던 것이다.


그 깜박 들어버리는 잠이 얼마나 깊은지 알기에

이런 일이 때때로 있지만,

우리들은 탓하지 않고 그저 '감사합니다' 인사만 한다.


사실, 두 선생님과 나도

'아차', '또', '이런' 하는 실수들을 수시로 해대고 있고,

그건 스스로도 결코 원하지 않는 것이며,

그런 상황에 대해 가장 속상해하고 미안해하는 사람은 바로 자신인 줄 알기에,

그 당사자에게 또 한 번의 확인사살'을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7시의 하늘은 나날이 어두워지고 있다. 컴컴한 복도의 불을 켜고 교실로 들어오면 간밤 내 갇혀있던 공기가 따스하게 나를 감싼다. 얼마 전만 해도 교실문을 열자마자 덮쳐오는 열기에 창문부터 서둘러 열어제꼈지만, 계절은 점프라도 한 듯 차가운 시베리아 공기를 갑자기 데려왔다. 나는 잠시 주저하다, 스카프를 여미고 활짝 창문을 열어 새 아침의 공기를 교실에 들였다.

그리고 화장실 세면대의 따뜻한 물에 천천히 손을 씻었다. 찻잔을 씻고 주전자에 물을 받아 교실로 돌아왔다.


이제부터는 고요한 아침 교실을 즐길 시간이다.


메신저의 업무를 확인한 후, 커피를 홀짝이며 아침일기 파일을 연다.

이런저런 상념들과 요새 나를 사로잡고 고민케 하는 것들을 실타래 풀듯이 쓴다. 인간관계이기도 하고 업무이기도 하고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 얘기이기도 하고 집안일이기도 한 그것들을 떠오르는 대로 일기로 쓰며 털어낸다. 이야기가 뒤죽박죽 섞이고, 글이 오자투성이가 되어도 그냥 놔두기로 한다.


조용한 교실에서 이렇게 나를 풀어내고 나면

복잡하게 꼬이고 근심으로 소용돌이치던 마음이 제법 편안해진다.


‘학교의 하루‘를 즐겁게 시작할 수 있는 용기와 여유가 생긴다.


그래서 이 시간은 하루 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며,

내가 학교에 일찍 출근하는 이유다.


어느새 8시,

두런두런, 타박타박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려온다. 하나 둘 교직원들이 출근하기 시작한다.

일찍 등교하는 아이들이 사박사박 걷는 소리, 아침새처럼 조잘거리는 소리도 들린다.


'두런두런', '타박타박', '사박사박', '조잘조잘'


‘나’에서 ‘선생님’으로 복귀하라는 알림 소리,

'요이 땅' 하며 학교의 하루를 시작하라는 신호다.


나는 서둘러 일기를 마친다. 일기의 마지막은 항상 똑같다.


하루를 시작하는 나의 주문.


‘알라뷰, 피이스, 파이팅!’


‘오늘도 다정하고 친절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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