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머나먼 곳

백년초(百年草)에 부쳐

by 버들아씨

파랑과 초록의 윤슬.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그 바람에 마구 휘날리던 머리카락.

숲 속의 반짝이는 나뭇잎, 숭숭 구멍 난 까만 돌들.

노란 유채꽃이 피어있는 올레길,

그 중간쯤에 꼭 들러가던 바다가 보이는 카페들.


기억 속 제주는 언제나 좋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비행기를 타고 가는 섬.

가볍고 편하게 출발하지만

이국으로 떠나는 듯 감미로운 설렘을 준다.


오래전 8월에도, 우리 부부와 아이들은

친정엄마와 함께 제주에 갔다.

아이들은 초등학생이었고, 이제 막 70세가 된 엄마는 잘 걸어 다니셨다.

아이들은 어리고 부부는 젊고 엄마는 정정했던 여름이었다.


우리는 앞뜰이 바다로 이어지는 하얀 펜션에 머물렀다.

이름에 '코지'가 붙었던 게 떠올라 섭지코지에 갔던 것인가 했지만, '코지(cozy)'엔 '아늑한, 편안한'의 뜻도 있으니 그 '코지'가 딱히 섭지코지의 '코지'라 말할 수만은 없겠다. 오래전이고 기록해두지 않아 어디였는지 잘 모른다.


제주의 한낮은 너무 더워서 아이들은 숙소에서 만화책을 읽었다. 엄마와 남편은 가벼운 낮잠에 빠져 있었다.

나는 밖으로 나와 앞뜰에서 바다를 보며 그네를 타다 펜션 뒤쪽을 향해 걸어갔다.

펜션 뒤는 들판으로 이어졌고 모래와 흙과 돌멩이가 뒤섞인 오솔길이 나타났다.

한낮의 정적에 나무와 꽃들과 풀들은 숨을 죽이고 있었다.


작은 카메라를 들고 오솔길을 걷던 나는 그들 사이 옹기종기 모인 한 무더기 이질적인 식물을 보았다.

이 그림은 뜨거웠던 여름, 제주에 대한 기억이다. 수채화, 그리운 머나먼 곳, 53.0*33.4, 2009


그것은 어렸을 적 아빠가 키우던 선인장을 닮아 있었다.

둥글고 넓적한 줄기에 작고 뾰족한 가시가 돋친 선인장.

꽃과 선인장을 즐겨 키우시던 아빠는

오전 10시~11시 사이에 꼭 물을 주라 우리들에게 명하고 외출하시곤 했다. 그 뛰어놀기 좋은 시간에, 수도꼭지에 연결한 호스로 '좌아악' 물을 뿌려주는 것이 아니라,

조로에 물을 받아가며 왔다 갔다 한 시간 정도를 꼬박 물 줘야 하는 것은 그리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공부나 숙제같이 마지못해 할 뿐이었다.


특히 가지각색 선인장들에 물을 줄 때면 크고 길고 짧은 가시에 찔릴까 봐 몹시 긴장하곤 하였다.

조심조심 물을 주다가, 이파리 없이 핀 빨갛고 노란 꽃에 홀리다 보면 어느 순간 찔리고 말던 가시들.


그것들을 닮은 것이 거기에서 자라고 있었다.


넓은 들로 이어진 오솔길 가장자리에서,

마치 낯선 이국 땅에서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이방인들처럼 꼭 붙어 엉긴 채 자라고 있었다.


나는 이 선인장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리고 몇 해 지난 뒤 앨범에서 꺼내 그려보았다.

그림으로 그리면서야 이 선인장이 부채선인장이고,

백년초(百年草)라 불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멕시코가 원산지이며,

1976년 제주 한림읍 해안가에 자생하는 것이 발견되어 제주도 지방기념물 제35호로 지정 보호받고 있다는 선인장.*


먼 옛날 멕시코에서 바람에 날려 해류를 타고

거친 파도와 짜디 짠 바닷물을 견디며 머나먼 섬 제주까지 흘러왔을까.**


낯선 이국의 땅에서,

손바닥 같은 줄기에 '나를 함부로 하면 찔러버릴 테야' 말하는 듯 뾰족한 가시를 붙인 채,

그러나 나비날개같이 여리고 노란 꽃을 피운 채,

그 옆에 마침내 이겨낸 듯 자줏빛의 단단한 열매를 맺은 채,

백 년같이 견디고 살아남아 얻은 새 이름.


'백 년을 사는 풀, '백년초'.


아주 오래전 그때,

제주 바닷가 모래밭에 도착했던 너의 조상들은 떠나왔던 머나먼 곳을 그리워했을까.

떠나온 고향에서 불리던 이름을 기억하고 있을까.


노란 꽃 한 송이가 홀로 핀 백년초를 보고 있자니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나도 그리워진다.

나에게도 내가 모르는

떠나온 머나먼 곳이 세포 속에 새겨져 있나 싶다.


이 그림의 제목을 새로 붙여본다.


'그리운 머나먼 곳'





* 출처: Copilot

** 일부 학자들의 의견, 출처: Copi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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