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두색 배추가 꽃처럼 활짝 피었다.
산기슭 주말농장을 지나가다,
속이 차오르기 시작해 가운데부터 동그랗게 말려가는 배추들을 한참 바라본다.
둥글어가는 결구가 소중한 것을 꼬옥 감싸 쥔 아이의 손 같다. 그 손 안엔 노랗고 하얀 배추속잎이 꽃심같이 숨어있을 것이다.
아침햇살을 받은 배추의 잎맥이 말간 얼굴에 살풋 보이는 고운 실핏줄을 닮았다.
결구는 커다란 꽃술 같고, 배춧잎은 넓은 꽃잎 같아 주말농장의 작은 밭은 연두빛과 초록빛 배추꽃이 활짝 핀 화원이 되었다.
이제 농부들은 배추 속이 차 오르는 대로, 꽃잎처럼 펼쳐진 이파리를 그러모아 끈으로 동여맬 것이다.
빨간 비닐끈에 이미 묶인 배추들이 아무렇게나 훑어 묶은 머리카락같이 편안해 보인다.
추수를 마친 밭이 하나 둘 늘어간다.
아직 남은 배추들도 곧 누군가의 손에 조심스레 뽑혀갈 것이다. 그러고 나면 텅 빈 밭에, 기꺼이 벌레와 달팽이의 양식이 되어 준 듯, 크고 작은 구멍이 숭숭 나 있는 바깥잎들만이 떨궈진 듯 남아서 천천히 말라갈 것이다. 어느 날은 시베리아에서 온 바람과 이리저리 날리며 춤을 추다가, 어느 날은 흰 눈에 덮여 잠이 들다가, 그렇게 서서히 거름이 되어 땅속으로 스며들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내 삶은 어릴 적 손에 쥔 예쁜 꽃실하나를 조심스레 붙잡고 이어 온 것 같다.
깊은 산골 국민학교 2학년, 나는 얼떨결에 학교 대표로 뽑혀 군(郡) 미술대회에 나가게 되었다. 아빠가 가져다주신 크레파스로 종종 끄적여 본 덕분에 그림이 조금 나았던 모양이다. 학교가 파하면 부모일손을 돕거나 산비탈과 개울을 쏘다니며 노는 게 전부였던 시절이었다.
크고 넓은 대회장에서 나는 주눅이 들어있었다.
그림주제는 아마 '김장'이었을 것이다. 아홉 살 산골아이는 멋모르고 끌려온 송아지 같이 꿈벅꿈벅거리다, 아주머니 서넛이 마당에 놓인 빨간 다라이에 둘러앉아 배추를 버무리는 장면을 그렸다. 잘할 수 있는 것은 꼼꼼히 색칠하는 것뿐이라는 듯 빈틈없이 칠했던 황토색 마당이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있다.
대회가 끝난 이후 나는 학교 운동장 조회대에 올라 '우량상'이라는 낯선 이름의 상을 탔다. 상 받은 게 나쁠 것은 없었지만, 그때 받았던 '우량상'은 실력이 우수해서 준 것이라기보다는, 참가자 대다수에게 격려의 의미로 준 상이 아니었을까 나는 자라면서 생각하게 되었다. 조금씩 천지분간하며 나의 재능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게 된 탓이다.
하지만 어릴 적 쥐었던 그 격려의 꽃실 하나가 까마득한 내 기억 속 어딘가에 감겨있어서,
스스로 실망스러워 작아지는 날이나, 바쁘면서도 무료한 삶이 울적해지는 날이면 그 실끝을 찾아 가만히 잡아보곤 하였다. 그래, 그나마 할 줄 알았던 게 이거였지, 배운 게 도둑질인 거야. 이제는 다른 것 찾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하자. 세상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것들이 있는 것이고, 나는 이렇게 생겨먹었으니, 나에게 있는 것으로 작아지고 외로워지는 마음에 평화를 주자 하며, 어느 날 나는 그 실을 꼭 잡고 쭈욱 뽑아 올렸다.
그렇게 마흔을 앞두고 수채화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레슨을 받으며 풍경도 그리고 꽃도 그리다가
시골 엄마집 텃밭에서 한창 차오르고 있는 김장배추가 문득 눈에 들어왔다.
'좋아요. 그려봐요' 선생님이 말했고, 나는 그 배추그림을 전시회에 보냈다.
어떤 이가 물었었다.
- 배추를 그렸네요.
- 네, 배추가 꽃처럼 예뻐요.
- 제목이 왜 <차오름>이에요?
- 그럼 <배추>라고 해요? 너무 노골적이잖아요.
우리는 모두 같이 웃었다.
이렇게 취미를 찾고, 배추를 그리고, 그것을 교사가 된 후 처음으로 전시회에 출품해 보았으니,
이 모두가 나는 우연이 아닌, 어릴 적 손에 쥔 가느다란 꽃실이 내 삶에서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온 때문인 것 같다.
추수가 한창인 주말텃밭의 농부들은
낮에 지나다 보면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 같고,
저녁 무렵 지나다 보면 밀레의 <만종> 속 부부같이 다정하고 거룩해 보인다.
이제 그들도 나도
산 위를 아슬아슬 넘어가며 마지막 노을을 뿌리는 해처럼
봄과 여름에 뿌려놓고 벌여놓은 것들을 찬찬히 갈무리하며 또 한해를 떠나보낼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러니,
네가 차오르면 너를 감사히 뽑아 다듬고 절인 누군가가,
한 해가 떠나가는 눈 내리는 날에, 바람 쌩쌩부는 날에,
들쥐 프레드릭이 들려주는 것 같은 이야기와 음악을 들으며,
네가 준 한 끼의 따스함으로 가고 오는 쓸쓸한 나날을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옛날 천지분간 못하던
조그만 산골아이가 잡았던 격려의 꽃실처럼,
앞으로의 나를 이어 줄 또 하나의 꽃실이
내 삶에 슬그머니 쥐어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