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상엔 꽃을 올려놓겠어요.

외며느리 추석소회(所懷)

by 버들아씨

저는 제사 지내는 외며느리예요.

매년 추석, 설날의 차례와 시어머니 제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남편은 4형제이지만 3명이 누나와 여동생들이에요. 그러니 남편은 외아들이고 저도 당연히 외며느리가 되었겠지요. 명절에 시누이들은 '에휴, 애쓰겠다. 수고한다' 말해줍니다. 홀로 차례준비하는 올케의 곤고함을 알아주는 고마운 시누이들이에요.


올 추석은 아버님, 남편과 나, 딸 이렇게 4명이 차례를 지냈습니다.

프랑스 하늘의 보름달

아들은 프랑스에 가 있어 함께 하지 못했어요.

이역만리 타국에서 송편하나 맛보지 못할 것을 생각하니 안쓰러워서, 저는 아들에게 차례상 사진을 보냈습니다. 눈으로라도 맛보라고요.

그리고 하늘의 달은 거기서도 똑같은 보름달일 테니 '우리 같이 달맞이하며 소원을 빌자' 통화했어요. 달님이 우리를 연결해 줄 테니까요.

아들은 프랑스 달님에게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빌었답니다. 저는 연휴 내내 비 오고 흐린 탓에 달을 볼 수 없었어요. 아쉬운 대로 구름 뒤 달이 숨어있을 듯한 곳을 보며 두 손 모아 안녕을 빌었습니다.

만약 그 마음이 들려, 구름 뒤에 숨은 달님이 살짝 내려다봤다면

'동쪽과 서쪽에서 얼굴 닮은 사람들이 시차를 두고 소원을 비네.' 했을지도 몰라요.


여느 해처럼 이번 추석도 제가 주관하여 장을 봤습니다. 남편이 운전을 하고 딸도 따라와 짐을 나눠 들었어요.

저는 장본 것을 정리하고,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새벽같이 일어나 차례상을 차렸어요. 여러 번 절하며 함께 차례를 지냈어요. 차례음식으로 아침식사까지 하고 나서야 저는 한숨을 돌리고 조금 여유를 찾았습니다.


이렇게 차례를 지낸 세월이 제법 깁니다. 시어머니 제사 지낸 지도 벌써 십오 년 가까이 되어가고요.

차례와 제사 지내는 일도 이젠 '그러려니' 하지요. 또 '이왕 할 것 즐겁게 하자' 항상 맘먹습니다.


하지만 차례를 지내지 않거나, 명절연휴에 여행 떠나는 이들을 보면 어쩔 수 없이 부러워집니다.

이 좋은 날들의 연휴를 온전한 쉼으로 보내면 얼마나 편안할까요. 충만한 계절의 여행은 또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저는 언제나 명절연휴에 캐리어 들고 떠나볼 수 있을까요?


아버님 살아계신 동안에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94세 아버님께 '제사차례 그만하자' 꺼낼 용감한 사람이 우리 집엔 없습니다. '그만 지내고 싶다' 말씀드려 연로하신 아버님을 상심하게 할까 봐 두렵습니다. 아버님 뜻을 거슬렀다가 아버님 돌아가신 뒤 후회하고 가슴 치며 자책하는 건 더욱더 무섭고요. 그래서 차례와 제사 관련 논의는 아버님 돌아가신 이후로 넘겼습니다.

차라리 그게 더 마음이 편해요.


다행히 혼자 준비하는 며느리가 힘들지 않도록 가족모두 배려해 줍니다.

아버님은 '간단히 준비하거라'하시고(그 말씀 믿고 간단히 준비했다가 은근 서운해하시던 표정을 눈치챈 건 안 비밀), 남편도 제기준비와 정리, 청소, 설거지에 적극 나서지요. 저는 저대로 명절노동과 심리적인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 왔어요. 차례음식과 식구들 먹을 음식 대부분을 구입하고, 밥과 국, 굽고 데치는 몇 가지만 손수 합니다.

만약 정성이 최고랍시고 명절음식을 직접 다 만들어야 한다면,

저는 한 달 전부터 우울해질 것이고, 추석 내내 굳은 얼굴로 집안을 어둡게 할 것이며, 결국 몸살이 나고, 집에 돌아와서는 남편과 대판 싸우며 '사네, 마네', '명절이혼'이라는 네 글자를 제 현실로 만들었을 수도 있었을 테니까요.


그러나 사서 준비하던 직접 만들던 더 신경 써서 차례를 지내고 매 끼니를 챙겨야 하니, 모든 것들이 명절연-휴(休)가 아니라 명절의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이럴 때 제 스트레스를 덜어주는 저만의 행복을 찾곤 합니다.

바로 차례상에 꽃을 올리는 것이지요. 예쁘고 향기로운 꽃을 준비하여 차례상 시어머님 사진 옆에 놓습니다.

어떤 이는 피식 웃을 수도 있는, 매우 단순하고 소박한 행위지만, 꽃의 힘은 놀라워서,

그렇게 하면 차례상이 왠지 로맨틱하게 보입니다.

명절을 치르는 저의 수고들이 위로받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

차례 지낸다의 차례는 말 그대로 茶禮니까.

누구 한 명도 수고스럽지 않게,

간단한 다과와 고운 꽃으로만,

가을의 결실을 맺게 한 삼라만상에 대한 경의(敬意)와

이 모든 것을 도와주셨지도 모르는 어느 영(靈)들에 대해 감사를 표현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제사와 차례에 대한 논의를 아버님 돌아가신 후로 미루었으니, 저는 음식들 사이 차례상 한 구석에 가만히 꽃을 올려놓을 뿐입니다.

소심하게나마 이렇게라도 나만의 방식을 표현하고 스스로 위로받는 거지요.


이번 추석에도 장을 보면서 꽃을 샀습니다. 분홍과 하양 꽃이 너무 고왔어요.

그 꽃을 물병에 담아 시어머니 사진 옆에 올려놓았지요.


"아이고~ 나 죽으면 버들 혼자 제사 지내야 할 텐데" 걱정하셨던 시어머니도 며느리가 올려놓는 꽃을 좋아하셨을 것 같아요.


차례상이 예쁜 꽃으로 환해지면

내 마음도 따라 밝아집니다.


꽃 몇 송이가 주는 위로가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차례상엔 꽃을 항상 올려놓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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