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를 마주하는 나의 자세

왜 이렇게 일찍 출근하세요?

by 버들아씨

위 글에 이어집니다.



통 통대는 소리, 뛰어다니는 소리, 쿵쾅대는 소리가 들린다면

보통 어떤 것들을 떠올릴까.


홍콩할매? 층간소음?

거꾸로 서서 통통대며 머리로 돌아다니는 홍콩할매는 차마 떠올릴 수도 없을 만큼 무섭다.

매스컴에서 들리는 층간소음문제는 이미 그것만으로도 현실에서 충분히 공포스럽다.


하지만 도긴개긴, 이른 아침 학교, 어두컴컴한 위층에서 들리는 소리에 나는,

예전에 보다가 너무 무서워 멈춘 일본영화 <주온>, 그 영화 속에 나오는 '도시오'의 원혼을 떠올렸다.

다락방을 뛰어다니던 어린 소년 '도시오'의 발소리를 말이다.


'통, 통, 통, 통......'

내가 이렇게 '도시오'를 연상하며 머리칼이 곤두서던 그 순간,

위층에서 내려오던 그 소리는,


'톡, 톡, 톡, 톡, 톡, 톡.....'

둔탁한 소리로 바뀌어 갔다. 그리고 더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점점 커져가는 그 소리에 동공이 확장된 채,

어두운 위층을 올려다보던 그때,


계단모퉁이를 휙 돌아 나오는 검은 실루엣이 보였다.

'숨이 멎는다는 게 이런 것이구나' 자각할 새도 없이, 그 형체는 나를 향해 톡 톡 톡 톡 계단을 뛰어내려왔다.


아래위 검은 옷을 입은 남자아이가 나를 향해 내려오고 있었다.

하얀 얼굴, 두 팔, 두 다리가 보였다. 사람이었다.

나는 안도했다.


'휴우... 우리 학교 학생이었네. 다행이야'

그러나 안심도 잠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너!! 지금 몇 신데 여기 있어?"

"지금 등교한 거 맞아?"


"네... 엄마가 교문으로 나오라고 해서 가는 거예요"


아이는 빠르게 나를 지나쳐 아래로 내려갔다.


'에휴, 간 떨어질 뻔했다. 일찍 등교한 아이의 발소리였어......'

교실로 가려다 나는 문득 멈췄다.


다시 확인하자면, 지금은 아침 7시. 그런데 아래위 검은 옷을 입은 아이는 벌써 등교하여 5층에서부터 내려왔다. 그러면 언제 1층 현관으로 들어와서 언제 5층까지 올라간 거지? 지금 4,5층은 계단도 복도도 교실도 깜깜 할 텐데 거기를 혼자 올라갔다고. 비까지 내리는 날 혼자서? 겁도 없이? 교실문도 잠겨있을 테고 가방은 어디에 두고 내려오는 거야?


갑자기 혼돈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내 뺨을 찰싹 때렸다.


"아얏"


'또 무슨 요망한 생각을...... 이상한 생각 하면 자꾸 더 이상해지는 거야아!'


그렇게 그날, 비 오는 이른 아침, 나는 찻잔과 주전자를 들고 허둥지둥 교실로 돌아왔다.




아침 일찍 출근하기 전에는 더더욱 없었고,

일찍 출근하기 시작한 이후에도 경험해 본 적 없던, 지난가을 마주친 '공포 삼단콤보'.


뭐 대단했던 것인 양 사설도 많고 이야기도 길었지만, 이른 아침 나의 일터에서 겪은 등골 서늘했던 순간들을 그냥 지나치고 싶지 않다. 내 망상일지라도 말이다. 또 어릴 때부터 나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던 못 말리는 나의 공포심도 이번 일과 함께 정리해두고 싶었다. 그래야만 두려움 없이 계속 이른 아침 출근을 이어갈 수 있고, 시도하지 못했던 다른 일들도 용기를 갖고 도전해 볼 수 있을 것 다.


세상에는 무서운 것들이 아주 많지만,

나는 어릴 적부터 귀신이 제일 무서웠고, 지금도 여전히 무섭다.

두려워하는 마음에 어둠이 깃든다는 말처럼,

이러다가 진짜로 귀신을 보게 될까 걱정된다.


이런 얘기를 속마음 고백하듯 말하면 어떤 이는 '아직 어리구먼' 혀를 차고, 어떤 이는 '신앙을 가져봐' 권유하고, 어떤 이는 '사람이 제일 무서운 거야' 가르친다.

내 딸은 '그게 왜 무서워 대체, 귀신이 엄마를 해치기를 해, 뭐를 해' 하면서 나를 안타까워하다가,

'취직 못하고 있는 내가 제일 무섭구만' 팩폭을 하여, 철없는 엄마가 된 듯한 기분으로 나는 금세 쭈굴해지기도 한다.


지난 늦은 봄, 브런치에서 Mind Thinker 님의 글, 처녀귀신과 소년 그리고 개를 읽게 되었다. 그 글이 내 공포심의 기전을 잘 설명해 주는 것 같아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듯 나는 고맙고 기뻤다.

몇 구절을 인용해 본다.


공포는 단순히 위협적인 대상에 대한 반응이 아니다. 그것은 '무엇이 나를 위협하는가'에 대한 해석이며, 그 해석은 우리의 기억, 교육, 문화 그리고 상상력 속에서 길러진다. '과거의 단편적인 기억들, 외롭게 울던 밤, 들었던 이야기,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스스로 만든 상상'이 뒤엉켜 우리 뇌는 하나의 '의미 있는 서사'를 구성한다. 그것이 곧 '공포'의 실체다.
공포를 느끼는 나, 감정을 만드는 해석의 구조, 그 해석이 어디서 왔는지 질문하는 것, 그것이 공포로부터 벗어나는 첫걸음이다.


위의 글에 따르면,

내가 지난가을 마주했던 공포들은,

실재 위협이 있어 공포를 느낀 게 아니라,


자동으로 울리는 음악소리를

공포영화 속 멜로디로,

창문을 열다가 찍힌 손자국을

알 수 없는 존재들의 증거로,

계단을 뛰어내려오는 소리를

어린 원혼의 발소리로


내 뇌가 해석해서 생겨난, 만들어진 공포라는 것이다.


즉, '실재하는 위협 공포심'이 아니라 '단순한 실재 → 내 뇌가 기억, 상상, 경험을 조합하여 의미 있는 서사를 구성 → 진짜인지 만들어 낸 것인지 구별하지 못하는 편도체가 이를 위협으로 처리 → 공포심을 느낀 것' 뿐이라는 얘기다.


그러므로,

아침의 어둠이 더 깊어져가는 이때, 또다시 마주할지도 모르는 이른 아침의 공포 앞에서 나는,


어둠은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생긴 현상이고,

상황은 학교라는 공간의 단순한 실재일 뿐인데,

상상력 폭발한 내 뇌가 그것을 공포서사로 만들어내는 것뿐이고,

그 서사가 실재인지 꾸며낸 이야긴지 구별하지 못하는 바보 편도체가 등골 서늘, 머리털 쭈뼛한 감각을 느끼게 하는 것뿐임을

항상 명심하자고 다짐한다.


이렇게 내 공포심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알고, 도망치지 않고 상황에 마주 서면,

언젠가는 나도 내가 만든 내 안의 공포로부터 자유로워질 날이 올 것이다.




최근, 지난가을 있었던 이 일들을 딸에게 말했더니,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신촌의 용하다는 곳에서 사주를 봤던 이야기를 꺼낸다.


사주를 보시던 선생님이 엄마 쪽에 영적인 일을 하거나, 무속 같은 종교를 가진 사람이 있느냐 물었다고 한다. 딸은 모른다 하였다고 전했다.


나는 작게 탄식하였다.


'햐아! 이건 또 뭔 소리냐.

설마, 내가 귀신을 무서워하는 것이 혹시 이런 것들과 관련 있는 거......?'


그럴 리가 없다. 내가 최강 겁보이긴 하지만,

때로 나는 꽤 과학적이다.

이성을 끌어모아 생각해 봤다.


나와 내 형제는 무교, 엄마만 불교, 기타 친척들 중 기독교가 조금,

돌아가신 외삼촌만이 취미로 사주명리공부를 하다 퇴직 후 철학관을 잠시 운영하신 적이 있는데,

분명 이것을 말하는 것이겠지.


문득, 공포심의 기전 어쩌고 하며 내 편도체를 바보라고 흉봐놓고는

맞을지 안 맞을지도 모르는 사주풀이를 내 공포심과 연결시키고 있으니 좀 한심해진다.

말만 주저리 주저리 했을 뿐, 공포에 맞설 준비가 아직 덜 되었나 보다.


하지만, 그래도, 그렇더라도,

앞서 다짐한 (포를) (주하는) (나의) 자세를 자꾸자꾸 환기하고 시도하다 보면 언젠가는 나도 겁쟁이를 탈출할 수 있겠지 희망을 가져본다.


계속해서 이른 아침 출근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며,

혼자서도 불 끄고 깊이 잠들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며,

내 버킷리스트, 나 홀로 제주 한달살이를 두려움 없이 즐겨볼 날도 결국은 오게 될 거라고 믿는다.


끝.


* 참고: [연재 브런치북] 공포의 본질, Mind Thin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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