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황스러웠다.
창피하기까지 했다.
2025년 12월 31일,
눈물은 내 종업식 시나리오에 없었다.
겨울방학안내를 하고 자기 자리 정돈을 하고 생활통지표를 나눠줄 때도 평소와 똑같았다.
오히려 나는 '오늘이 종업식인데 내 마음 너무 담담한 거 아냐?' 하는 생각을 줄곧 하고 있었다.
마지막 4교시, 한 명 한 명 이름 부르며 생활통지표를 나눠주었다. 통지표 앞장엔 진급반이 적혀있다.
아이들은 자신이 몇 반이고, 누가 나와 같은 반이 되었는지에만 온통 정신이 팔렸다.
교실은 장터처럼 소란스러워졌다.
"얘들아, 마지막 인사 나누는 시간이에요. 조용히 해주세요"
여러 번 말하고 나서야 아이들은 내 얼굴을 보았다.
오늘 이 종업식과 방학식에서 나는,
겨울방학을 건강하고 즐거운 시간으로, 새 학년을 준비하는 알찬 시간으로 보내기를 간곡하게 당부하는 선생님, 따뜻한 미소를 머금은 채 헤어짐의 슬픔을 품위 있고 우아하게 절제하는 선생님이 되는 게 내 컨셉이었다.
나의 이 시나리오가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내가 종업식을 치르는 게 어디 한 두 해이냐.
드디어 마지막 인사,
나는 아이들과 눈을 맞추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여러분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가 어끄제..가.....튼데..."
( '어어! 이게 아닌데', 목소리가 갑자기 떨려 나왔다. 당황 시작.)
"벌써 ...일년이 지나...가...써...요...끄윽"
(목이 메었다. '뭔 일이야, 품위 없이' 속으로 생각. 8살 꼬맹이들의 '선생님 지금 뭐지?' 하는 눈길이 보인다.)
"선생니믄...끄억..지크음..까지 만난 아이...드리...모두 예뻐어...는데..훌쩍."
(목메임이 울먹임이 되어 발음 더욱 불분명해짐. 눈물도 흐르기 시작. 나 원 참! 더욱 당황스럽고 창피해져서 "얘들아, 선생님이 자꾸 눈물이 나네" 스스로 시전. '하아 어떡하지?' 잠시 말을 멈추고 목소리를 가다듬고.)
"지큼..끅끅....우리 1항년 ...1반...끄윽.. 여러...부니..제일 예쁘....닥..오... 생가....케요..훌쩍"
(한 번 나온 눈물이 그치지 않음. 에라 모르겠다, 울먹이면서 말을 이어감. 눈물은 더 더 흘러내림. 혹시 나와 같이 '와앙' 하고 큰 소리로 울어주는 아이가 있으면 시선을 그쪽으로 돌려 이 당황스러움을 좀 모면하겠는데 하며 그 와중에도 아이들을 둘러 봄. "선생님, 울지 마세요" 소리. 몇몇 아이들이 손으로 눈을 훔치며 훌쩍거린다.)
"여러...부..운...끅끅.. 일년 또..ㅇ안...잘 자라..줘서 고마.. 어..요....훌쩍"
('너희들은 1학년이고, 나는 할머니 선생님이야.' '커다란 선생님이 쪼꼬미들 앞에서 울다니, 정신 차리고 품위를 지켜' 계속 속으로 되뇜. 눈물과 울먹거림이 조금 가라앉음. 이 틈새를 이용 마지막 말을 끝까지 이어가기로 함.)
"2항녀...니 되어서도...끄윽.. 지큼처럼...겅강하고 예쁘게..끄억.. 자라 주쎄요....훌쩍"
(지금 내 얼굴이 어떤 모양일지 머릿속으로 그려봄. 뜬금없이 울고 있는 선생님, 눈물로 꼬질 해진 얼굴에 (콧물이 나오지 않아 다행) 말을 이어가느라 일그러진 표정의 내가 보인다. '햐아, 뭔 일이래! '나, 정말 갱년긴 거야???!!!')
이렇게 난데없는 눈물과 목메임 속에, 당황스러움과 창피함을 무릅쓰고 나는 겨우 겨우 인사말을 마쳤다. 이 무슨 주책이냐! 철부지 일 학년 앞에서. 아이들은 가만히 있는데 선생님이 먼저 운다. 나의 우아한 계획이 완전 어긋났다. 내 의사와는 무관하게 흘러내린 눈물. 다시 주워 눈 속에 집어넣을 수도 없구나 한탄했다.
하지만 나는 선생님. 끝까지 마무리해야지.
이제 우리 반 인사구호만 하면 되었다.
내가 말하면 아이들이 따라 말하는 것이다.
차가운 이성을 남은 한 톨까지 박박 긁어모았다.
이제라도 감정을 절제하는 품위있는 선생님으로 되살아나리라.
나는 울먹거리지 않으려 애쓰며 선창 했다.
"친구야, 안녕!"
아이들이 따라 했다.
"건강하고 즐겁게 겨울방학 보내고, 2학년 때 만나요."
함께 따라 하며 서로 마주 보고 손을 흔들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모두 같이 배꼽 손하며 꾸벅 고개 숙여 인사했다.
어쨌든 성공, 드디어 끝났다. 여전히 목메었지만 다행히 발음은 분명했다.
눈물 찔끔거리는 선생님을 남겨두고 아이들이 와아! 교실을 빠져나갔다.
다른 때 같으면 나도 바로 아이들을 따라나가 배웅했을 것이지만 나는 따라 나가지 못했다. 여전히 눈물이 흘렀다. 눈물보다도 내 감정에 취해 혼자 울어버린 선생님이 된 것 같아 창피해서 따라나갈 수가 없었다. 눈물이 좀 더 멈춘 다음에 나가자고 생각하다가,
아이들이 다 가버리면 어쩌나, 눈물을 빠르게 닦고 몸을 일으켰다.
복도로 나가 신주머니를 챙기는 아이들을 축축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어떤 아이들은 쪼르르 가버리고, 어떤 아이들은 다가와 또 한 번 인사하고,
어떤 아이들은 떠나지 않고 울먹이며 나의 허리를 안았다.
나는 손을 흔들고, 어깨를 토닥이고, 마주 안아주었다.
눈을 깜박깜박 거리며 급히 물기를 눈 속에 집어넣었다. 아이들이 다 가고 복도가 조용해졌다.
정말 어이가 없다.
종업식 한 두 해도 아닌데, 왜 눈물이 났을까.
내년에 또 만날 수 있는 아이들인데 왜 그렇게 눈물이 났나.
교실로 들어와 흐트러진 27개의 책상과 의자를 바라보았다.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환청같이 아직 귀에 남아있다.
올 한 해 너무 귀한 아이들을 만났던 것이다.
쉬는 시간 고물고물 놀던 아이들.
선생님의 이름을 큰 소리로 외쳐주던 아이들.
아주 작은 놀이에도 활짝 웃으며 즐거워하던 아이들.
해야 할 공부를 다 마치려 애쓰던 아이들.
자질구레 말썽들은 있었지만, 그건 내가 감당할 수 있었던 것들이었다.
그리고, 내가 하루를 시작하며 속으로 외치던 주문, 나 자신에게 세뇌시키던 그 말.
'오늘도 다정하고 친절하자'를 매번 매 순간 실천할 수 없었을 것임에도
'착하고 친절하신 선생님'이라고 쪽지를 남겨주었던 아이들이었다.
정말 복 받은 시간들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나도 배우며 더 성숙해진 시간들이었다.
그러니까 눈물은, 그 시간들이 12월 31일과 함께 떠나갔음을 확인하는 눈물.
휴우! 무사히 한 해를 마친 홀가분함과 뒤늦은 아쉬움이 함께한 눈물일터.
여기에 나이 들수록 늘어가는 측은지심과 쉽게 울컥해지는 갱년기 마음이 더해져서,
매년 하는 종업식인데도 유독 더 그렇게 눈물이 났나 보다라고, 나는 아전인수로 정리해본다.
이틀 전 종업식을 돌이키다 보니
문득, 따뜻한 차가 마시고 싶어진다.
전기포트의 불을 켜고 물을 끓인다.
끓어오르는 기포가 동그란 눈물방울 같아 웃음이 난다.
캐모마일 차가 심신안정에 좋다지.
여리고 노란 빛깔, 향기로운 허브 내음,
따스한 찻잔을 손으로 감싸 쥐며 기원한다.
'나의 제자, 나의 고마운 아이들아.'
'잘 지내거라. 모두 행복하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