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A선배는 나와 B씨가 점심을 먹는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듣고 “끼어도 되냐”라고 전화가 왔다. 같이 출입처에 나갈 때는 “언제 회사로 들어가야 할지 모른다”며 번개로만 점심 약속을 잡던 선배다. 그래서 종종 선배랑 같이 나갈 자리를 만들거나 약속이 없어 보이면 합석의 아량을 베풀어주며 “내가 선배 밥 챙겨주는 거 잊지 마세요”라고 너스레도 떨었다.
마음이 맑고 내가 아주 좋아하는 선배지만 역시나 다소 눈치 없을 정도로 말이 많다. 점심 자리에 합석한 그는 마치 회사 안에서 못한 말을 털어놓는 느낌이다. 그 말 중에 손뼉을 치게 만드는 주옥같은 '워딩'들도 있지만 그래도 말이 너무 많다. A의 얼굴을 쳐다보니 며칠 못 본 사이 주름이 늘어난 것 같다. 어제 분명히 오후 11시 넘어서 마감 후에 회사 누군가와 소맥은 한 잔 마신 얼굴이다. 그래도 오늘은 머리를 감고 온 것 같다.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본인이 오후 발제를 종합해야 하는 당번 데스크인 것도 잊고 벌써 오후 1시 반이 가까워졌다. 황급히 회사로 들어가는 그의 모습이 안쓰럽다. 그의 모습이 내 미래여서일까 더욱 남일 같지 않다. 그는 사람이 그리운 걸까.
기자를 굳이 둘로 나누자면 평기자와 데스크로 나뉜다. 경찰 등 정보 업무 종사자들이 데스크라는 용어를 쓰는 걸 보면 외근이 아닌 내근을 하면서 외근자들의 업무를 관리, 종합하는 시니어 관리자들을 일컫는 것 같긴 하다. 내 명함에 정치부가 ‘political desk’라고 쓰여 있는 걸 보면 데스크와도 연관이 있을 수도 있겠다.
하여튼 평기자 생활 15년쯤 하면 차장으로 처음 승진을 한다. 회사를 30년 다닌다고 치면 절반쯤 다녔을 때 첫 승진을 하는 셈이다. 기자 직급은 기자, 차장, 부장, 부국장, 국장 등 5단계가 끝이다.
그러나 차장이 되면 이제 자기 기사는 안 쓰게 될 확률이 높다. 한 부서는 통상 부장 1명에 차장 2, 3명인데 차장은 각 팀을 총괄 관리하면서 주로 1차 데스킹(2차 데스킹은 최종 출고 책임자인 부장이 한다)을, 기자가 보내온 기사를 체크하고 고치는 역할, 기사 기획 등을 맡는다. 그래서 주로 내근을 한다. 기사 대신 고정 칼럼을 쓰는 경우가 많다. 간혹 보직 차장을 맡으면서 현장 팀장을 맡게 하는 경우에는 내근과 외근을 하며 팀장과 데스크 역할을 같이 한다.
그들은 스스로 ‘앉은뱅이 기자’라고 자조한다. 현장을 나가지 않다 보면 감이 떨어진다. 그렇다 보니 감 떨어지는 지시를 하거나 기사를 잘못 고치는 경우가 생긴다.
그렇다 보니 기자들에게 차장은 주적인 경우가 많았다. 주니어 시절 동기들끼리 만나면 차장들의 화려한 개인기가 안주거리로 올라온다. 짠돌이 차장부터 삽질하게 만드는 차장, 술자리에서 쇼를 한 차장 등 온갖 험담과 희로애락 세상만사다. 어찌 보면 부장은 좀 어렵고 그 보다 낮은 차장은 만만해서일 수도 있다.
언론계에서는 차장까지는 ‘선배’라고 부르지만 부장부터는 선배 대신 ‘부장’이라고 부르며 존중과 대우를 해준다. 검찰 드라마 ‘비밀의 숲’에서 차장검사가 검사장으로 승진을 하자 후배 검사들이 도열하는 모습과 유사하지만 그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부장은 그 정도 대우를 받는다는 뜻이다. 부장도 국장과 부국장 등 윗선에 치이지만 그나마 부의 운영과 인사권 등 권한이 있기 때문에 엔도르핀이 좀 솟는다고 한다.
그래서 차장은 서럽다. 후배들에게 치이고 부장한테 까인다. 하루 종일 부장 옆 자리에서 눈칫밥을 먹는다. 피라미드 조직에서 부장 승진이 되느냐 안 되느냐도 늘 조마조마할 것이다. 중년에 맞이하는 슬픈 데스크. 한창 아이들이 커가는 중년 기자. 차장을 기점으로 기자로 산 날보다 남은 날이 적어질 확률이 높게 되는 그런 기점이다.
차장급 선배들이 그래서 이직을 많이 한다. 더 기자로 살지 말지. 아니 어쩌면 이제 ‘기자’가 아닌 데스크이기에 제2의 인생을 고민하며 회사를 나가는 걸 수도 있다.
나는 폴 고갱의 그림과 책 ‘슬픈 열대’를 떠올린다. 이젠 고갱을 소재로 한 소설 ‘달과 6펜스’처럼 이제 도망칠 수도 없다. 그래서 데스크는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