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바를 처음 만난 것은 서울 강남의 어느 술집에서였다. 초년병이었던 시절 선배들이 부르는 자리에 가다보면 자연스럽게 여자가 옆에 앉는 유흥주점에 가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접대부들 사이에서 호탕하게 웃으며 폭탄주를 잘 마시던 조르바. 그가 후배들에게 술을 사는 자리였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서 주니어 기자 대상으로 강의에 그가 강사로 나왔다. 우리 기수가 막내였거나 막내 바로 윗 기수쯤 됐을 때였다. 그는 누군가 질문에 답해줄 학생들을 찾다가 갑자기 나랑 눈이 마주쳤다. “어이, 나랑 같이 강남에서 술 마신 놈~ 답 좀 해봐” 당황스러운 나는 ‘설마 나 말인가’하며 주변을 살폈다. “거기 바로 고개 좌우로 돌아보는 너” 나는 그 뒤 선후배들 사이에서 ‘강남에서 술 마신 놈’이란 별명이 붙었다. 물론 조르바는 그런 것조차 신경쓰지 않았다. 굵고 배포가 큰 사람이었다.
그를 볼 때면 나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가 떠올랐다. 거구인데다 거침없는 언행 때문이었다. 그는 사상이 리버럴했고 관습과 시선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인이었다.
그는 내가 보낸 기사에 대해 “기사를 함부로 쓰지 말라”고 했다. 내가 볼 때 아주 의미 있는 기사여서, 1면 등 주요지면용으로 발제를 하면 “이게 기사거리가 되냐”, “지면 소중한 줄 알라”고 했다.
그는 나에게 질문을 많이 던졌고 토론을 요청했다. 회사로 들어오라거나 전화로 길게 이게 무슨 의미에서, 어떤 맥락에서 기사가 되는지를 꼬치꼬치 캐물었다. 귀찮았고 위축됐다. 결국 나는 “일단 오늘 발제에선 뺄게”라는 말에 무릎을 꿇곤 했다.
그는 내가 보낸 기사를 몇 시간째 그대로 놔뒀다가 마감시간이 임박해 “야 이거 안 되겠다. 다시 써”라고 했다. 뭐를 어떻게 바꾸라고 하지 않고 밑도 끝도 없이 다시 쓰라는 주문에 막막함이 밀려왔다. 전화를 걸어 “이건 이런 뜻이지?”, “이거 이렇게 표현을 바꿔도 될까?”, “이 기사는 이런 방향으로 다시 쓰는 게 좋겠다”는 식으로 물어보는 여느 선배들과는 달랐다. 어떨 때는 내가 보낸 기사를 한자도 고치지 않아 “저대로 나가도 될까?”라는 생각이 오히려 더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는 일에 있어서 머리가 좋다는 평가를 받았고 거시적인 것에 관심이 많았다. 미국 영자지도 즐겨보며 새로운 기사와 기획 방향을 고민했다. 하지만 디테일하진 않았고 선이 굵은 편이었다. 야구 타자에 비유하면 100번 헛스윙을 하더라도 1번 홈런을 치면 된다는 주의였다. 그래서 이 산이 아니면 저 산으로 가게 했다. 홈런 없이 100번 헛스윙만 하다보면 이제 더 이상 팔을 휘두를 기력이 없어 홈런도 못하게 마련이다. 이상적이었지만 현실적이진 않았다.
그래서 그에 대한 평가와 호불호가 엇갈렸다. 따르는 후배들이 많았지만 그렇지 않은 후배도 많았다. 그는 커리어에 자부심이 있었고 자존심이 강했다. 윗사람과 토론하고 비판하길 좋아했다. 혹자는 그가 어릴 적 너무 큰 상을 받았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그는 회사에서 책을 가까이했다. 가만히 모니터를 보다가도 책을 펴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누군가에게는 놀고 있는 것처럼 비춰졌다.
그는 권위적이지 않았다. 당시 해외 출장을 갔다 오는 게 나름 혜택을 받는 것인 만큼 부 회식 때 쓸 면세점 양주를 사오는 문화가 있었다. 나는 여느 주니어 선배들처럼 양주를 한 병 사왔다. 그는 “야 그런 걸 왜 사왔냐. 니가 가져가”라고 화를 냈다. 출장비로 일당이 더 나오고 개인적으로 부담이 있던 것도 아니었지만 그는 일종의 상납 문화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그는 까마득한 후배인 나에게 “막내야 오늘은 네가 밥 사라. 선배만 밥 사란 법이 있냐”고 했다. 그런 선배가 아무도 없었으니 당연히 농담인가 싶었지만 그는 진짜로 계산을 하지 않았다. 선배만 후배들에게 밥 사란 법은 없다는 뜻이었다.
내가 그를 언제 마지막으로 봤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떤 학(學)인지 인생 공부인지 모르겠지만 공부를 계속하고 싶다며 회사를 나갔다는 얘기만 들었다. 환송회도 없었다. 그냥 어느 한 때 내 주변을 차지하다가 훌쩍 떠났다. 나는 그를 존경하지도 않았고 나와 잘 맞는 타입은 아니었다. 다만 내가 사랑하는 캐릭터였던 조르바와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는 그 시절 내게 사회적 규율을 깨는 거인처럼 보였다.
십년이 지나면서 나는 이 사람이 실존했던 사람인지 내 머릿속에서 탄생한 건지 이제 확실하지가 않다. 이 글이 수필인지 소설인지 헷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