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패션을 입다.

#21 도쿄 소나타(Tokyo Sonata, 2009)

by john C

'의복'이란 언제나 그 사람의 사회적인 위치나 계급, 직업 등을 나타내는 증표였다. 그 사람의 옷차림으로 피상적 판단이 가능했고, 표현의 수단으로써 사용되기도 했다. 때로는 사회에 순응하는 태도였으며, 때로는 저항 그 자체였다.


'가족'은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이자 '사회'의 축소판이다. 부모와 형제라는 수직적 개념으로 상하가 절대 바뀔 리 없는 영원한 계급사회이다. 엄마, 아빠, 자식 등의 구성원은 각자 자신의 위치에 부합하기 위해 맡은 권리와 의무를 다 한다. 가끔 가족을 이루는 구성원의 지위나 그 가족이 존속하는 이유의 근간이 흔들릴 때 비로소 그 사회는 생명을 다하고 또 다른 사회가 태어난다. 주로 끝없는 가장의 권위의식에 대한 아래서부터의 저항으로 시작되는 기성 사회의 균열은 역시 '의복'의 형태로 피상적인 힘을 가지고 꿈틀댄다.


<도쿄 소나타>의 포스터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영화 <도쿄 소나타>는 계급화된 현대의 가족의 민낯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이른바 '핑크영화'로 불리는 로망포르노 장르로 1980년대 데뷔한 구로사와 감독은 <절규, 2006>, <회로, 2001>, <큐어, 1997>의 절망 3부작을 필두로 현대 사회의 부조리함을 폐부 깊숙이 후벼 파는 듯한 하드보일드한 연출과 미스터리와 호러의 장르적 쾌감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일본 영화계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독보적인 거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도쿄 소나타>는 감독의 2009년작으로 국내에서 큰 반향을 얻진 못했지만, 61회 칸영화제 심사위원상과 3회 아시안필름어워즈 최우수작품상과 최우수각본상을 수상하였다.


실직한 아빠 '류헤이'는 회사원 복장으로 고용센터와 무료급식소를 전전한다.


갑자기 실직되어 버린 가장사사키 류헤이(카가와테루유키 분)와 가족 안에서 그림자처럼 살아가는 외로운 엄마 사사키 메구미(코이즈미쿄코 분), 한마디 상의 없이 미군에 지원한 첫째 아들 타카시(코야나기유 분), 그리고 피아니스트가 꿈인 피아노 천재 막내 켄지(이노와키카이 분). 실직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류헤이는 매일 무료급식소와 고용센터를 전전하게 되고, 외로움에 사무친 메구미는 집안일을 하다 멍하게 있는 일이 많아진다.


엄마 '메구미'는 가족 간의 소통의 부재로 외로움에 지쳐 있다.


각종 헛드렛 알바를 하던 타카시는 갑자기 미군에 자원하겠다고 하지만 권위적인 아빠는 이를 용납하지 않는다. 결국 집은 나간 첫째는 전쟁터로 파병되고, 씻을 수 없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가지고 돌아온다. 한편 파아니스트가 꿈인 막내 켄지 역시 아빠의 불허로 급식비를 받아 몰래 피아노 학원을 다니는 일을 저지른다.


스타일이 좋은 첫째는 미군에 자원했다가 PTSD를 얻고 돌아온다.

켄지의 천재적인 피아노에 대한 재능을 본 피아노 선생님이 부모님께 편지를 쓰고 모든 만행(?)은 발각된다. 그 와중 메구미 홀로 있는 집에 도둑이 들고, 엄마는 인질이 되어 도둑과 함께 떠나게 된다. 마치 일탈과도 같았던 도둑과의 짧은 여행(?)을 마친 메구미는 뭔가 후련해진 모습으로 집에 돌아온다.


피아노에 천부적이 재능이 있는 막내 켄지는 드디어 경연대회에 참가한다.


이 영화는 보통 가족영화들의 메시지처럼 메마른 현대 사회의 가족에 대한 걱정이나 소통의 부재에 대한 성토뿐이 아닌 가족 구성원 각자의 현실적인 고뇌와 개인적이며 인간적인 미련과 유약함을 날카롭게 파고든다.


아무래도 가장 큰 무게감을 보여주는 것은 가장 류헤이이다. '가장'이라는 무게감이 항상 입고 나오는 그 감색 슈트로 말해 준다. 직장 내 총무부장으로써 권위의 상징이 되었던 그 감색 슈트는 회사를 떠난 곳에서는 어딘지 모를 측은함을 내포한다.

19세기 영국 런던에서 만들어진 현대적인 슈트(suit)라는 개념은 이 전 세대의 화려하고 웅장한 디테일이 많이 불편했던 정장 복식에서 간편하고 절제되며 품위를 지킬 수 있게 개량된 복식으로 하나의 원단으로 된 상하의 한 벌을 말한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일자리의 급격한 증가는 비단 공장이나 굴뚝의 험한 일 뿐만은 아니었다. 법률이나 금융 등의 사무직의 일자리도 증가함에 따라 그 들에 맞는 '유니폼'이 필요했으며 슈트가 바로 그 역할을 하기 시작하면서 의복이 가진 품위가 신뢰의 상징으로 변모하였다. 하지만 그 신뢰는 상대적으로 낮은 급여를 받는 블루컬러들보다 더 많은 경제적 자유를 누리면서 점차 권위적인 모습으로 바뀌었으며 현재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슈트가 가지는 이미지는 절제된 품위 속에 숨겨진 권위의식의 상징이 되었다.


류헤이는 실직한 이후 에도 줄곧 슈트를 말끔히 차려입고 집을 나선다. 그가 도착한 무료급식소나 고용센터에는 그 와 같이 슈트를 입고 브리프케이스를 든 사람들로 가득하다. 실직으로 인해 그 슈트가 가진 상징을 잃어버렸음에도 불고하고 껍데기만 남은 권위를 끝까지 버리지 못하는 그들이 어리석게만 보이지는 않는다.


어딘가 닮은 듯한 두 영화, <어쩔수가없다>(좌)와 <도쿄소나타>(우) 포스터


어딘가 모르게 작년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없다> 어쩔 수 없이 오버랩되는 건 전혀 이상하지 않다. 많은 인터뷰에서 공공연히 밝혔듯이 박찬욱 감독은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열렬한 팬으로 그간의 작품에서 많은 부분을 참조하고 오마주하였다. 박찬욱뿐 아니라 봉준호 감독 역시 영화 <살인의 추억>을 만들 때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큐어>를 참조했었다고 밝힌 바 있다. 물론 일본 내에서도 고레에다 히로카즈, 하마구치 류스케 등 이미 거장의 반열의 오른 감독들 역시 가장 존경하는 감독으로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을 꼽는다.


엄마 메구미는 집과 흡사 물아일체의 경지를 보인다. 옷 역시 집안의 분위기나 인테리어를 해치지 않는 옅은 브라운톤이나 그레이색의 옷을 입는다. 영화가 시작하면서 열린 문틈으로 비가 들이치는 장면이 나온다. 메구미는 금세 훔칠 걸레를 들고 나와 문단속을 하고 들이친 빗물을 열심히 닦아 낸다. 집 안에 닥칠 우환을 막는 엄마의 역할을 정적인 장면으로 소리 없이 보여준다. 영화 중반쯤 같은 장소에서 맑은 날의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듯한 씬이 있다. '지키는 자'의 무료함, 외로움이 느껴지는 장면으로 향후 일어날 일에 대한 대비의 효과로 보인다. 마치 보호색의 옷을 입은 듯 한단색의 수수한 원피스 차림의 메구미의 행동과 대사는 이처럼 많은 대비효과를 낳는다. 오랜 시간 여자로서 엄마로서 억눌린 자아가 폭발하는 순간을 기다려온 듯이.


이 영화에서 의상은 캐릭터를 부각하거나 부연 설명을 해주는 장치가 아니다. 오히려 그 캐릭터의 피부와 같은 역할로 자연스러운 삶의 흔적이며, 징표이다. 상황이 변해도 의상이 변하지 않듯, 사건사고가 일어나도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류헤이는 갑옷 같던 감색 슈트를 벗어던지고 화장실 청소용 작업복을 입는다. 자유로운 스타일의 아메카지를 즐겨 입던 타카시는 아빠의 반대를 무릅쓰고 마침내 군복을 입는다. 엄마가 챙겨주는 아무거나 걸쳐 입는 듯했던 켄지 역시 피아노 경연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연미복을 입는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나라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꿈을 지키기 위해 그들은 옷을 갈아입는다. 네 가족은 모두 다 지키기 위한 상태가 되었다.


영화 속에서 '의복'은 자신이 통한 계급, 젠더, 세대의 경계를 흔들며 기존의 체제를 전복시키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형성하고자 하는 욕망로만 부각되어 해석되는 경향이 있다. 때로는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지키고자 하는 마음도 역시 저항인 것이다.


영화는 얼마나 우리가 우리 것을 지키지 못하였는가에 대한 질책을 하는 것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그토록 열심히 지켜내려고 하는 것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 줄 아는지에 대한 물음이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서로에게 양보하고 포기하면서까지 지켜내야 했던 것들에 대한 항변도, 싸우고 시기하고 단절해 가며 지키려 했던 것들에 대한 변명도 다시 한번 상기해 보라고 한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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