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둘이 살(뻔?) 했습니다

서울, 1인 가구, 전셋집 구하기 中

by 별무리



반짝반짝 빛나는 애증의 도시 서울을 떠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으니, 이제 서울에서 살 집을 구해야 했다.


1인 가구를 위한 집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 1인 가구가 선택 가능한 주거 형태는 매우 제한적이다. 이 '제한적'이라는 사실 또한 다른 주거 형태를 꿈꾸어 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다른 주거 형태라 함은 그 흔하디 흔한 '아파트'였다. 원룸이나 오피스텔이 아닌 '집 같은 집' 아파트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결심하고, 지금 사는 동네의 아파트 시세를 알아보고 일단 기겁부터 했다.


간신히 88 올림픽을 넘겨 1990년 언저리에 지어진 30년 가까이 된 아파트 전세가 4억에서 시작이었다. 조금만 역에서 가깝거나, 조금만 최근...(음 한 20년 전)에 지었거나, 조금만 리모델링을 했거나, 어디서 슬쩍 들어본 브랜드 아파트이기만 해도 다시 시작가가 5억으로 바뀌었다.


‘먹고 죽을래도 없는’ 5억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걸까.


대략적인 시세 파악 후 '서울에서 1인 가구가 아파트에 사는 다음 방법'으로 생각해낸 묘안이 바로 '동거인을 구하는 일'이었다. 때마침 나에게는 이사를 고민하는 대학 동기 친구 K가 있었다. 때마침 김하나, 황선우 작가님의 책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를 읽고 깊은 감흥과 영감을 얻은 때이기도 했다.


우리는 대학 시절 같이 살아 본 경험도 있었고, 이사를 고민하는 이유도 비슷했다. 각자가 '집'이라는 곳에 바라는 것과 원하는 생활 동선도 거의 일치해서 더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우리는 바로 같이 살 집 구하기에 돌입했다. 그런데,


1인 가구에서 2인 가구가 되어도 5억이 없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그래도 1인 가구에서 2인 가구가 되니 대출을 받지 않고 어찌어찌 보증금을 마련해 볼 희망이 보였기 때문에, K와 나는 전세에서 반전세로 전환하는 묘안을 떠올렸다. 보증금을 나누어 내니 대출을 받지 않아도 되고, 세상 아까운 월세도 반반 나누어 낼 생각을 하니 그럭저럭 괜찮았다.


1인 가구였을 때는 반전세라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대출이자에 월세까지 내는 삶이라니. 길거리에 나앉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처럼 느껴졌다. 아파트도 전세보다 월세를 선호하는 요즘, 전세를 반전세로 전환하니 선택지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우리는 그 날로 매 주말, 공휴일마다 아파트를 보러 다녔다. 폭염이 지속되던 한여름 즈음이었다.


한여름 폭염 속에서 만난 아파트들은 오래되고 비쌌다. (물론 새 아파트들은 우리 예산으론 만나주지도 않았다.)





함께 아파트를 알아보기 시작한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처음이자 드디어, 딱 마음에 드는 아파트를 발견했다. 딱 마음에 든다기보다는(우리 예산에 그런 아파트는 이 세상에 없을 가능성이 높다.) 무언가 걸리는 점이 하나도 없는 아파트랄까. 이것만도 얼마나 기적적인 일인지를 절감할 만큼 우리는 폭염과 길거리에 나앉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지쳐 있었다.


'치명적인 단점 없음'이라는 최고의 장점을 가진 아파트를 매물로 보여주신 부동산 사장님은 내일 오후도 두 팀이 집을 보러 오기로 했으니 이 집으로 결정하려면 내일 오전까지 천천히 고민해보고 연락을 달라고 하셨다. 쇼핑몰 장바구니 속 카디건도 아니고 전셋집인데 ‘내일 오전까지 천천히’라니. 보기 드문 최고의 매물답게, 우리에게 '천천히' 고민할 시간은 24시간도 채 허락되지 않았다. 마음에 드는 전셋집 앞에서 고민은 사치였다.


우리는 부동산을 나와 카페에 마주 앉았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씩 원샷하고 냉정하게 지금 우리의 상황을 되짚어 보았다. 보기 드문 최고의 전셋집을 발견했지만 바로 계약금을 계좌 이체할 결심이 서지 않는 이 상황을 말이다. 우리는 같이 살 집을 알아보면서도 막상 '같이 사는 일'에 대해서는 진지한 고민이 부족했던 것이었다.


'같이 사는 일'에 대한 고민과 나름의 시뮬레이션을 해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같이 살 집을 알아보기 시작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같이 살 집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과 가능성이 희미해져 갔다. 가뭄에 콩 나듯 나오는 전셋집 매물 가운데 모든 조건이 맞으면서 둘 다 마음에 들면서 공간 활용까지 공평하고도 합리적인 집을 찾을 수 있을까?


어느 순간부터는 희망은커녕 언젠간 집을 살 테니 공부하는 셈 치자, 며 부동산 투어 하는 마음으로 집을 보러 다니는 지경에 이르렀던 순간,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만난 기적 같은 '마음에 드는 집'인 것이었다.





K와 나에게 '같이 사는 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같이 살 수 있는 기간' 이었다. 2인 가구가 되다 보니 신혼부부가 아님에도 신혼부부가 살 만한 집을 많이 추천받았는데, 신혼부부라면 처음부터 우리 이혼할지도 모르니까 2년만 살아보자, 하고 기간을 정하진 않겠지만 우리에겐 중요한 문제였다.


특히나 2년 만에 전셋집을 다시 구하게 되고 나니 2년이 얼마나 빠르게 지나가는지(돌아서면 2년), 그리고 전셋집을 구하는 일이 얼마나 지옥 같은지를 지금 여기서 함께 느끼고 있기 때문이었다. 신혼부부는 아니지만 우리에게도 보장된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이 보장된 시간을 산정하는 것이 도무지 불가능해 보였다. 일단 우리의 미래가 얼마나 불확실했느냐 하면, 우선 친구는 박사 학위를 받고 대학에서 강사로 일하는 중이었고, 기회만 있으면 전임 교수 임용 공고에 지원서를 내고 있었다. 첫 부임에 인서울 대학 교수가 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어서 주로 수도권이나 지방의 대학으로, 사실 가리지 않고 지원서를 내는 중이었다. 여기서 나는 질문을 던져보았다.


만약 K가 1년 안에 지방의 어느 대학으로 전임 교수 임용이 된다면?


그것은 정말 온 마음으로 축하해 줄 일이다. 진심이다. 그런데 바로 '같이 사는 일'을 끝내야 한다는 것, 다시 각자 2인 가구가 아닌 1인 가구가 살 집을 알아봐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이사를 하자마자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이 지점에서 이번엔 K가 이런 질문을 던졌다.


만약 네가 1년 안에 결혼을 한다면?


결혼? 누구? 나?

갑자기 무슨 1년 안에 결혼이냐는 나의 반응에 K는 만나고 3개월 안에 결혼하는 커플도 많이 봤다고 말했다. 있을 것 같지 않은데 그렇다고 없지도 않은 일이라는 느낌적인 느낌으로 나는 동공이 심하게 흔들렸다. K 역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온 마음으로 축하해 줄 것이라고 했다. 축하 선물로 양문형 냉장고라도 사줄 기세였다.


사실 집을 알아보러 다니며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두 분 자매세요?" 였다. "아니요, 친구예요." 라고 하면, 가족(자매)도 아니고, 곧 가족이 될 관계(신혼부부)도 아닌 우리에게 바로 이어지는 질문은 (특히 명절 때 고모, 작은 아빠 캐릭터의 부동산 사장님의 경우) "어머, 둘이 같이 살다 누구 한 명 시집가면 어쩌려고?" 였다.


어쩌긴요? 아... 어쩌지.





우리는 보장되지 않은 시간에 대한 상상이 갑작스러웠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음이 당황스러웠다. '만에 하나'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인가.


전임 교수냐 결혼이냐, 그 '만의 하나'의 가능성이 누가 더 높은지에 대해 옥신각신 농담을 주고받던 우리는 문득 마주 보며 허탈하게 웃었다. 뼈 때리는 농담 사이로 우리는 같이 깨닫는 중이었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라는 책 속의 김하나, 황선우 작가님처럼 2인 가구를 꿈꾸었으나, 어쩌면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것.


카페를 나서기 전 마지막으로, "야 우리 이러다 2년 뒤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그때 진짜 웃길 거 같지 않냐?" 하며 뼈 때리는 마무리 농담을 하긴 했지만, 지금이 타이밍이 아닌 것은 맞는 것 같았다. 어렴풋이.






(* 이러한 사연으로 1인 가구를 위한 집을 찾는 일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 글은 다음 화 <서울, 1인 가구, 전셋집 구하기 下> 마지막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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