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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무리 Nov 16. 2019

직장인 사이드 프로젝트의 순기능

'딴짓'이 주는 '온전한' 행복



투잡을 넘어 'n잡러'라는 말이 유행하고, 직장인 '딴짓'을 우아한 말로 '사이드 프로젝트'라 한다. 사이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각종 원데이 클래스 도장깨기를 해보고, 플리마켓 개최에도 도전해 보았지만, 나에게 있어 사이드 프로젝트의 끝판왕은 바로 이곳, '브런치에 글쓰기'다.

얼마나 끝판왕 인가 하면, 나는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고 3개월쯤 되었을 무렵, 구독자 140명을 돌파하며 아래와 같은 글을 썼다. 언젠가 이 글을 다시 읽는다면 분명 손발이 한없이 오그라들며 '발행취소' 버튼을 누를 것이라 생각했는데. 다시 읽어도 그때의 흥분과 행복감이 넘치게 되살아나며,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내가 참 애틋하다. 아래와 같이 애틋한 글을 썼으니 말이다.




브런치에 드디어 10번째 글을 쓴다. 감개무량하다. 브런치를 시작하기 전과 후 무엇이 달라졌냐고 한다면,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다는 말도 맞고, 모든 것이 달라졌다는 말도 맞다. 입사 10주년을 앞두고, 10주년이 되기 전에 일단 써보자, 하는 마음으로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해서 그런지 10번째 글은 10번째로 글을 쓰는 소감에 대해 쓰고 싶을 만큼 '10'이라는 숫자가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은 여전히 입사 10주년 이후의 다른 삶에 대해서는 정해진 것이 없고, 여전히 고민과 성찰과 불안으로부터 한 걸음도 떨어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달라졌다는 것은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고 오늘을 기준으로 구독자가 140명이 되었다는 것, 그러니까 내 글을 읽어주는 140명의 사람들이 있으며 나는 이 사람들을 위한 '책임감 있는 글쓰기'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혹자는 그 책임감 참 소박하구만, 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 역시도 이런 책임감은 베스트셀러 작가들만 가질 자격이 있는 줄 알았다.) 이 책임감이 얼마나 무겁냐고 한다면, 나에게 이런 일화가 있다.




브런치 작가 신청을 하기 전에 임시 보관함 같은 공간인 '작가의 서랍'에 다섯 편의 글을 써두었다. 이 글들은 일종의 총알이었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 이 다섯 편을 수없이 고치고 또 고치며 한 편씩 발행하면서 또 새 글을 써나갔다. 새로 쓰는 속도가 써둔 글을 발행하는 속도를 따라가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어느덧 다섯 알의 총알이 다 떨어져 갈 때쯤, 세 번째로 쓴 글이 브런치 메인에 걸리면서 순식간에 조회수 1만 뷰에 도달하고 구독자가 100명을 돌파했다. 누가 보겠어, 하며 시작한 브런치 글쓰기였는데 나에겐 정말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허허 거참 소박한 친구구만, 누가 보면 100만 명인 줄 알겠어, 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할 수만 있다면 100명의 구독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손을 잡고 읽어주셔서 너무 고맙다고 인사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진심으로.


저장해 둔 총알 중 마지막 다섯 번째 글을 발행하고 며칠 후 나는 오래전 예정된 유럽 여행을 앞두고 있었다. 열흘 정도는 브런치에 글을 쓰지 못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스치는 순간, 나는 짐 싸던 캐리어들 밀어 두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 여행을 떠나기 전날 밤 11시였다.


내가 상상한 브런치 글쓰기의 풍경(1)은 이런 모습이었으나, 현실은 널브러진 캐리어와 짐 싸다 만 옷 무더기 옆


서랍 속에 넣어둔 여섯 번째 글을 꺼내어 마저 쓰고 고치고 또 고치고, 한숨도 못 자고 동틀 무렵 글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내 글을 기다리고 있을(기다리지 않을 수도 있는) 100명의 구독자들을 향해 발행 버튼을 눌렀다. 그 순간의 감정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아무도 그러라고 한 사람이 없다. 늦어지면 안 된다고, 무조건 쓰고 비행기를 타라고 아무도 독촉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밤을 새워 썼다. 나도 내가 이럴 줄은 몰랐다. 


브런치 작가 신청을 하고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나 혼자가 아닌 누군가가 읽어주기를 바라는 글, 다른 사람에게도 의미가 있고 도움이 되는 글을 쓰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이 결심 후 어느 글쓰기 수업에서 이것이 '일기'와 '에세이'의 결정적 차이임을 알았다.)


이 결심과 100명의 구독자가 만든 시너지는 나에게 무거운 책임감 그 자체였다.


그런데 그 무게가 나를, 게으르고 의지가 약하고 의심이 많은 나를 끊임없이 노트북 앞에 앉게 했다.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을 하다가, 책을 읽다가, 영화를 보다가, 친구와 대화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글감을 찾고 그게 무엇이 됐든 어떻게든 '잘 써먹을 궁리'를 하게 했다.


오늘만 해도 일요일 아침이건만 회사 일로 영혼까지 탈탈 털리는 경험을 했는데, 사건(?)이 간신히 종결된 오후 무렵 진이 다 빠지긴 했지만 이 사건 언젠가 글로 써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이렇게 털린 게 억울해서라도 오늘 일을 잊지 않고 영혼을 갈아 넣어 멋진 글을 써보리!


그야말로 나는 어서 다음 글을 내놔, 라고 팔짱을 끼고 노려보는 나의 망상 속 구독자들의 존재와 그 무거운 책임감에 중독되어 버린 것이다.




그런데 나를 짓누르는 이 책임감에 너무 행복하다. 동트는 새벽 발행 버튼을 누르는 순간의 환희와 쾌감이 아직도 생생하다.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온전한 행복이었다.


뜻대로 되지 않는 사람의 인생에서 내 뜻대로 완결된 무언가를 세상에 내놓을 수 있다는 것, 그런데 세상에 내놓는 순간 더는 나만의 것이 아니고 타인의 마음에 가 닿을 수 있다는 것. 글을 쓰며 기대한 것들, 그리고 기대도 못한 일들이 일어날 수 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 그런 기대가 가능한 상태로 살 수 있다는 행복.


내가 상상한 브런치 글쓰기의 풍경(2)은 이런 모습이었으나, 현실은 지금 PC방


10번째 글을 쓰는 지금도 예상치 못한 상황, 길 가다 문득 이 마음(누가 보면 수상 소감인 줄)을 쓰고 싶어 황급히 검색하여 들어온 PC방이다. 하필 LoL 전문 PC방이라 나 빼고 전부 LoL 게임을 하고 있는 이곳에서 홀로 고독하게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다.


이제 글을 마무리할 것이며, 곧 '발행' 버튼을 누를 것이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지 말라는 말처럼, 이 행복이 나에게는 '글쓰기'가 본업이 아닌, '사이드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덕업일치의 시대라지만, 글쓰기가 '업'이 되는 일이야말로 꿈같은 일인지도.


그래도 일단 쓰고 있다. 마음껏. '딴짓'이 주는 ‘온전한’ 행복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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