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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무리 Jun 02. 2019

한 회사를 10년 다니는 건 위험한 일일까

대수롭지 않은 모든 일들에 대한 고찰



일요일 오후 4시.


직장인이라면 기쁨과 슬픔 사이의 어중간한 시간일 즈음 팀장님으로부터 카톡 알림이 왔다. 분명 일요일 오후 4시에 굳이 보내지 않아도 될 업무 이야기. 나 역시도 세 시간쯤 지나서 메시지를 보았기에 대충 대답하고 넘겼다.


그런데 더 걱정이 되는 것은 그 카톡방에 있는 오늘 막 유럽으로 휴가를 떠난 후배였다. 비행 중일 거라 메시지는 확인하지 않은 상태였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이 메시지를 볼텐데 기분이 어떨지. 나야 뭐 그러려니 하며 금세 잊어버렸지만, 요즘 밀레니얼 세대들은 '휴일 상사로부터의 카톡 메시지' 같은 거 정말 극혐한다던데. 90년대생인 후배가 걱정되면서 조금 자괴감이 들었다. 하아 이렇게 살아야 하나.






회사에선 그저 수많은 과장 나부랭이 중 한 명일 뿐인데, 어느 순간부터 파트장의 역할을 하게 되며 일을 같이 하는 후배들이 생겼다. 수많은 선배들이 했던 말 ‘너 밑에 들어오면 더 힘들어', '시키는 일을 하는 것보다 일을 시키는 게 더 힘들다 너' 했던, 당시엔 '꼰대 소리'인 줄만 알았던 말들이 명언으로 다가왔다.


차라리 혼자 열심히 일하고 혼나고 칭찬받던 시절이 편했다. 승진을 했을 때 축하한다며 그런데 조직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개인이 느끼는 행복은 줄어든다고 정말 불행한 표정으로 건넸던 팀장님의 말은 진정 진심이었다.



유럽의 공항에 설레는 마음으로 내리자마자 주말 업무 카톡을 볼 후배가 걱정되면서 문득,


나는 괜찮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카톡 알림 소리에 일요일 오후 낮잠에서 깨어 잠시 짜증이 났지만 대충 대답하고 대수롭지 않게 스마트폰을 침대 위로 던져버린 나,


이런 나는 정말 괜찮은걸까.



한 회사를 오래 다니면 좋은 점은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진다는 것이었다. 저 사람은 원래 저래, 저 팀이랑 일하려면 어쩔 수 없어, 저건 이렇게 할 수밖에 없지 하는 것들. 이렇게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게 된 것이 조직에서의 내공이라면 내공이었다. 그러는 사이 나름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다, 일 잘한다는 평판이 생기기도 하니까.


그런데 이게 정말 내 안에 쌓이는, 그러니까 어느 조직에서나 통용되는 내공이 맞는지, 아니면 10년차를 향해 달려가는 이 조직에서만 가능한 일인지는 진지한 성찰이 필요했다. 이 곳에서 정년퇴직을 꿈꾼다면 모르겠지만 (아 정년까지 일한다니 일단 끔찍) 그게 아니라면 말이다.



한 회사를 오래 다니며 많은 일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가 정말 문제의식이 전혀 없는 꼰대가 되는 것은 아닐까?

'나 때는' 이라던지, '내가 해봤는데' 같은 극혐했던 말들과 '유사동의어'를 나도 모르게 내뱉게 되는 날이 오는 것은 아닐까?


아 정말 등골이 서늘해졌다.
나 정말 괜찮은 걸까?






9년차가 된 이후로 나는 낯선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한 회사를 이렇게(?) 오래 다녔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조금 꺼려졌다. 그전에 우선 내가 꽤나 희귀한 케이스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업계마다의 차이는 있겠지만 나 정도의 연차면 다들 한 두 번쯤은 이직을 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다들 나를 신기해했다. 초면이니 차마 신기하다고 말은 못 하지만 정말 신기한 얼굴로,



좋은 회사 다니시나봐요?


네??



아 나는 좋은 회사에 다니고 있나?

그래서 이렇게(?.. 물음표의 향연) 오래 다녔나?

좋은 회사에 다니는 사람이나 한 회사를 이렇게 오래 다니는 거였나?

그런 거였어?


뼈 때리는 질문이었다.

아야, 뼈가 아팠다.


나 정말 괜찮은 걸까.... ㅠㅠ



그만... 그만...! 이라고 소리지르고 싶은 순간






눈물을 흘려봤자 누굴 탓하리오.


내가 선택한 길, 내가 걸어온 길이었다. 언젠가 동생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한 회사 10년 다니는 게 요즘 트렌드는 아니긴 하지'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하긴 그렇다. 그런데 트렌드라면 대세의 흐름이긴 하겠지만, 남들이 다 한다고 꼭 따라갈 필요나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우리 회사는 아직까지는 '온정(?)'이 살아있는 보수적인 옛 문화의 영향으로 다행인지 불행인지 정년이 보장되는 분위기라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고찰이 필요한 건, 그러니까 더더욱 고찰이 필요한 건 분명하다.


그야말로 내가 온정이 살아있는 연못에서 많은 것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꼰대가 될 준비를 하며 안주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익숙함의 덕, 조직 내에서 이 사람 저 사람과 쌓아 온 세월의 덕을 보며 사실은 그게 나의 내공인 양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가 정말로 일을 잘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내공이 어디에서도 통용되는, 그러니까 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만큼의 능력치로 내 안에 쌓이고 있는지 항상 경계하고 성찰할 필요가 있다는 걸, 뼈아프게 깨달았다.


10주년이라는 말은 정말 무섭다. 등골이 서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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