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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무리 Nov 12. 2019

대기업 중간관리자, 그 알아두면 쓸쓸한 이름

애매모호하고 위험한 순간들에 대한 고찰



입사 후 3년 간 마케팅 부서에서 일하다가 지금의 본부로 처음 인사 발령을 받던 날, 이제 막 신입 사원의 티를 벗은 나에게 발령 부서의 첫 번째 팀장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사업 부서에서 본사로 왔으니 CEO를 비롯한 다양한 임원과 관리자들을 만나게 될 것인데, 윗사람이라고 배울 점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장점은 빠르게 배우고 단점은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하고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타산지석보다 반면교사라니 어딘가 냉정한 말이었다. 그러나 팀장님은 그래야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며 명심하라고 덧붙이셨다. 뭔가 드라마에 나오는 팀장님을 만난 기분이었다. 실제로 그분은 승진 때마다 '최연소' 타이틀을 달며 조직 내에서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취할 건 빠르게 취하고 버릴 건 빠르게 버리는 것을 넘어, 버리기 전에 '나는 저렇게 되면 안 된다'는 결심도 해야 한다는 그 말씀은,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팔할의 배움이 사람으로부터 오고, 사람을 통해 비정형의 학습을 하는 조직 생활에서 거의 '진리'에 가까운 말이었다.


이런 조직 생활에서, 특히 조직 규모가 커질수록 틈틈이 빠르게 양산되는 것이 바로 '중간관리자'다. 담당 파트, 담당 팀, 담당 본부, 거기에 메트릭스 조직 운영이라는 미명 아래 ~부문 총괄, ~그룹 총괄, CFO, CMO, CRO, CDO, COO 등등 총괄 임원에 총총괄 임원에 총총총괄 임원 같은 수많은 중간관리자가 양산되며 조직의 복잡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는 상태.


이러한 복잡한 상태를 우리 같은 실무자들은 한 문장으로 정의 내리곤 했다.


일하는 사람은 없고 잔소리하는 사람만 많다.


좀 어려운 말로 표현한다면 의사결정 체계가 복잡해서 일하기 힘들다, 정도일까. 아무튼 힘들다.




국내 일반적인 대기업에서 사원일 때 내가 하는 일의 100이 실무라면, 권한이 커지고 위로 올라갈수록, 특히 함께 일하는 구성원(이른바 부하 직원)이 생길수록 '관리'라는 업무의 비중이 늘어난다. 문제는 이 관리 업무는 대부분 대기업, 심지어 대기업 가운데서도 딱 여기, 바로 이 조직에서만 쓸모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 조직에서만 통용되는 노하우(유사어로 짬밥, 눈칫밥)만 늘어나는 커리어라니. 정년퇴직을 해도 인생 이막, 삼막이 남은 백세 시대에 이것은 재앙 수준의 위험이 아닐까.



물론 요즘은 대기업에서도 애자일(Agile) 조직, 셀(Cell) 조직이라며 빠른 의사결정을 위해 수평적인 조직을 지향하고 실제로 그렇게 조직을 운영하기도 한다. 그러나 문화가 바뀌지 않고 체질이 개선되지 않으면 부서 명칭 변경 그 이상의 의미나 효과가 없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 한 계열사가 애자일과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위해 기존 호칭 제도를 폐지하고 '매니저'라는 단일 호칭을 도입했는데, 우연히 회의 자리에서 만난 그 계열사의 담당자가 호칭 변경 후 오히려 소통이 더 어려워졌다며 고충을 토로한 적이 있다.


자기와 같은 차장급 직원도 매니저, 신입사원도 매니저다 보니 같은 팀 사원에게 무언가를 가르쳐 주기도 애매해졌다는 것이다. 이런저런 조언이나 가이드를 잔소리나 괜한 참견으로 듣지 않을까? 이러면 나도 꼰대인가? 신경이 쓰이고, 신입사원의 입장에서도 적극적으로 물어보는 게 눈치 보이고 어렵다고 한다.


그저 각자 자기 일을 할 뿐인데 신입 사원과 내가 동등한 입장에서 일하는 것이 과연 공정한 것인지, 이게 정말 수평적인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고. 맨땅에 헤딩하고 있는 신입사원을 보며 우리가 막상 스타트업과 같은 DNA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닌데, 오히려 몸에 맞지 않는 제도만 받아들여 이들이 배우고 성장할 기회를 막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마저 든다고 했다. 이쯤 되면 부작용이 분명한 게 아닐까.



  

이렇게 '중간관리자'를 극단적으로 아예 없애버린 특수한 계열사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전통적인 대기업 조직은 ‘중간관리자'가 무한대로 양산되는 중이다. (역시 회사에 중간은 없다.)


조직에서 진심으로 존경하고 배울 점이 많은 훌륭한 선배들도 많이 만났지만, 요즘 들어 배울 점 보다 나도 저렇게 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드는 위험한 순간들이 늘어나고 있음을 느낀다. 이는 비단 개인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모호한 '관리' 업무라는 명목 하에 무한 책임 요구, 보고를 위한 보고, 애매한 역할 분담과 불분명한 R&R 등 애매모호한 조직이기에, 애매모호한 '중간관리 업무'와 '중간관리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게 아닐까.


중간관리 업무가 늘어난다는 것은 결국 내가 하는 일 가운데 더 아랫사람이 한 일을 취합해서 더 윗사람에게 보고하는 일이 늘어난다는 것인데, 이 일에는 어떤 가치나 의미나 내공이 더해질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에 위험하다. '잔소리 스킬'이나 '소모적인 지적', '안 해도 될 말'로 밖에 미미한 나의 존재감을 확인할 길이 없는 상황이 눈에 띄게 발생한다.


상상만으로도 짜증 나는 상황이지만, 한 발자국만 떨어져서 바라보면 어딘가 쓸쓸한 모습이다. 그럴 때마다 '반면교사'를 명심하라셨던 그때 그 팀장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같은 반면교사의 다짐이 개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면, 조직을 통째로 바꿀 수는 없지만 '나라도 그러지 말아야지' 같은 개개인의 다짐이 모여 변화의 단초가 되기를 바라본다. 물론 언젠가 나도 반면교사의 선배가 되는 게 아닐까, 를 상상하면 다시 한번 등골이 오싹해지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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