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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무리 May 06. 2019

평범한 직장인의 플리마켓 개최기 下

나에게도, 남에게도 좋은 일




플리마켓에 방문한 손님들도, 마켓에 참여한 셀러들도 모두 정리를 마치고 떠난 늦은 저녁, Y와 나는 텅 빈 카페에 마주 앉아 오늘의 매출 계산을 시작했다. 결과는 흑자도 적자도 아닌 애매한 숫자 0.


전체 수익 금액과 마켓을 준비하며 우리가 투자한 비용이 거의 비슷했다. 결국 두 달 가까이 마켓 준비를 하며 투자한 우리의 인건비(?)는 1원도 벌지 못한 셈이니 재무적으로는 완벽한 실패였다.



완벽한 실패를 확인하고 우리는 마주보며 웃었다. (쿨한 분위기 아님. 약간은 허탈했음) 처음부터 '일단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고, 해보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깨닫고 배웠다. 사업에 실패하면 '비싼 수업료'를 낸 셈 치라고 한다던데 수업료까지는 내지 않았으니 이만하면 성공인지도 몰랐다.


웃음이 났던 이유는 홍대 피맥집에서 플리마켓을 해보기로 결심하며, 돈 많이 벌면 내년에 같이 발리에 가자며, 딱 여행 경비만큼만 벌었으면 좋겠다며,  지금 생각하면 귀여운(?) 행복 회로를 돌리고 있었던 우리가 떠올라서였다.


회식비도 벌진 못했지만 우리는 뒤풀이 회식을 하러 근처 양꼬치 집으로 갔다. 숯불 위로 굴러가며 익어가는 양꼬치를 바라보며 우리는 이 실패가 헛되지 않도록, 스타트업 업계에서 많이 한다는 '회고''Lesson-Learn'의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실패의 이유는 많았다.


1. 우선 셀러 입점비, 입장료, 마켓 내 음료 비용 등 가격 정책의 오류가 많았다. 나름 고심해서 정했다고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셀러들에게는 좋은 조건이었지만 마켓을 개최한 우리는 수익을 내기 힘든 가격 정책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물론 처음 마켓을 개최하는 것이고 마켓이 인지도가 전혀 없으니 우리를 믿고 플리마켓에 참여하는 셀러들에게 불리한 조건을 제공할 수는 없었다.


2. 마켓 타깃을 잘못 예측했다. 평소 슬라임 카페의 주 손님이 초등학생과 부모님이라 마켓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셀러들이 판매하는 ’DIY 수제 슬라임’이 아닌 '완제품' 형태의 슬라임은 초등학생보다는 중고등학생이나 대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플리마켓에 온 초등학생들은 평소에 하던 수제 슬라임을 원하기도 했고, 홍보물을 보고 찾아온 중고등학생이나 대학생들은 초등학생 타깃의 이벤트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3. 마켓 내에서의 역할 분담(직장인 용어로 'R&R')에 문제가 있었다. 나와 Y, 아르바이트 직원 2명까지 총 4명이 플리마켓을 운영했는데, 나 또는 Y 중 한 사람은 적극적으로 마켓 셀러로 참여하여 매출을 일으켰어야 했다. 4명 모두 처음 해보는 플리마켓 운영에 우왕좌왕 올인하다 보니, 야심 차게 준비한 우리의 코너는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결과적으로는 만족스러운 판매량에 다다른 다른 셀러에 비해 우리 코너는 판매를 거의 하지 못한 수준이었다.



스타트업 공동 대표 모드로 꽤 진지한  '회고''Lesson-Learn'의 시간을 가진 우리는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초기에 하는 대표적인 실수 3종 세트를 범했음(?)을 깨달았다. 가격 정책이라니, 마케팅 타깃이라니, 조직의 R&R이라니,


회사에서 지겹도록 듣던 말이었다. 그런데 야생의 실전은 달랐다.


귀염뽀짝 슬라임의 세계에서도 야생의 실전은 냉혹했다.





비범한 실패가 아닌 '평범한 실패'를 했다는 깨달음에 다다랐을 무렵, 갑자기 스마트폰 화면에 마켓을 준비하며 설정해 두었던 인스타그램 알림이 떴다. 오늘 플리마켓에 참가했던 한 셀러의 동행인이 올린 글이었다.


그는 마켓에 참가한 셀러의 남동생인 듯했는데, 앳된 얼굴이 이제 막 스무 살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누나를 도와주고, 초등학생 손님들에게 일일이 샘플을 보여주는 모습이 어찌나 친절하던지.


슬라임을 구매하는 손님들에게 안내 설명서를 나누어 주었는데 무려 한 장 한 장 귀여운 자필로 쓴 설명서였다. 손글씨로 쓴 설명서와 일주일 동안 만든 슬라임을 짊어지고 누나와 함께 마켓에 참여하려고 서울도 아닌 지방에서 이 곳까지 올라왔다고 했다.


그 모습을 보며 우리도 너무나 어렵고 힘들게 플리마켓을 준비했는데, 그 플리마켓에 참여한 셀러들 또한 이 시간을 위해 이렇게 정성을 다해 준비를 했다는 게 감동적이었다. 뭔가 처음 느껴보는 성질의 감동이었다.


인스타그램에 그가 올린 짤막한 글은, 플리마켓에 참여하러 가는 길 이른 새벽 기차 안에서 찍은 사진과 함께, “누나를 따라서 슬라임 마켓에 참여했는데 힘들었지만 그래도 뿌듯한 하루였다. 다른 분들이 만든 슬라임들도 너무 예뻤다."라는 참으로 평범한 참가 후기였다. 그런데 너무도 근사했다. 처음 느껴보는 근사한 감동이었다.




 


어쩌면 내 사업을 한다는 것의 보람은 이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모든 책임이 나에게 있는 만큼 모든 실패도 성취도 나의 몫이 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긴다. 누군가에게 뿌듯한 하루를 선사하는 것처럼,

 

나뿐만 아니라 남에게도 좋은 일이 될 수 있다는 것  


'일자리 창출' 같은 거창한 표현을 쓰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참여와 연결을 만들고, 생산과 소비가 일어나게 한다는 것.



그 남동생의 인스타그램 마지막에 오늘 플리마켓에서 번 총 매출 현금을 책상 위에 올려두고 뿌듯하게 찍은 사진이 올라와 있었는데, 현금을 자랑하듯 펼쳐놓고 찍은 사진이 하나도 속물 같거나 이상하지가 않았다.


이슬아 작가의 책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 속에는


나는 돈이 몹시 좋다고 느꼈다.

엄마에게 시간을 선물할 수 있다니

돈이란 정말이지 근사한 것이었다.


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그 사진이 이 문장 속 ‘근사함’처럼 근사했다.



돈을 번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지만
근사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평범한 직장인의 플리마켓 개최기는 평범한 실패로 근사하게 끝이 났다. 해보길 잘했다. 직장 생활도 어찌보면 ‘돈을 버는 일’의 일환이었지만 회사에서는 절실하게 알 지 못했던 다른 세상이 있었다. 해보지 않았다면 알 수도, 깨달을 수도 없었을 연못 밖 세상의 문이 아주 조금 열렸다. 아쉽고 아까운 그 문틈으로 아가미를 힘껏 내밀고 크게 숨을 쉬어보았다.


다음번에는 잉어가 아니라 유영하는 돌고래처럼,

수면 위로 뛰어올라 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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