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무리 Apr 27. 2019

평범한 직장인의 플리마켓 개최기 上

너무도 선명한 행복


Do what you love,

Do what you want.




당장 회사를 그만 둘 순 없지만, 또 회사 밖에서 돈 벌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라는, 그러니까 절망도 낙담도 아닌 어중간한 깨달음으로 잠시 현타의 시간을 갖던 중, Y가 말했다. 아니 제안했다.


"나랑 플리마켓 한번 해볼래?"


제안을 받은 곳은 홍대였다. 우리는 그날 합정 근처의 북카페에서 저자와의 만남 강연을 듣고, 꿔바로우가 먹고 싶어 홍대 쪽으로 걸어왔었다. 그런데 그 꿔바로우 집이 최근에 문을 닫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시 홍대 거리를 해메다 주차장길 안쪽의 피맥집에 들어와 막 피자가 나온 순간이었다.


왠지 홍대 메인길은 이제 '애들 가는 곳'인 것 같아 상수나 합정만 다니다 오랜만에 홍대 거리 한복판의 홍대스러운 피맥집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Y의  제안은 분명 플리마켓에 가보자가 아니라 '플리마켓을 해보자' 즉 개최해 보자는 의미였다. 그리고 나는 정말로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그래, 해보자!"


Y는 최근에 슬라임 카페를 오픈한 상태였다. 초등학생들에게 액체괴물로 인기인 슬라임을 직접 카페에서 수제로 만들 수 있는 공간이었다. 카페를 오픈하고 2개월 차, 카페도 홍보하면서 평소 둘 다 관심 있었던 플리마켓을 야심차게 개최해 보기로 했다. 플랫폼을 만드는거야! 인스타그램의 유명 슬라임 셀러를 모집해보자! 블로그 마케팅을 활용해볼까? 잘 되면 키즈카페에 제안해 보는 건 어때? 하며 벌써 플리마켓 성공기를 쓰고 있었음을 고백한다.


Y는 이미 카페라는 공간을 가지고 있었고 슬라임과 관련된 인프라를 유통할 수 있었다. 그래서 플리마켓 운영과 관련된 제반 사항의 준비를 Y가 담당, 나는 회사에서의 홍보 마케팅 경험을 바탕으로 플리마켓에 참여할 셀러 모집, 마켓 홍보와 이벤트를 담당하기로 했다. 피맥을 앞에 두고 우리는 신이 나서 계획을 세웠다.


막차 시간이 다 되어 자리에서 일어날 때쯤 Y는 나에게 이 제안을 하기 위해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 지 엄청나게 고민했었다고 말했다. 이것도 일종의 동업이라 본다면, 친한 친구와 동업하면 안된다는 흔한 말도 분명 신경이 쓰였을 것이다.


나는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이었는지, 무슨 고민을 한거냐며, 우리는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막연한 생각이 아니라 진지하게 이유까지 들어 설명했다. 누가 설득해 달라고 한것도 아닌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우리는 각자가 서로 다른 강점을 가지고 있고 그 강점은 상호보완적인 것이라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 우리는 각자의 일을 하면서 플리마켓을 덤으로 하는 것이니 리스크가 적은 편이다. 망한다 하더라도 약간의 투자 비용만 감당하면 되니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다.

3. 플리마켓이 성공하면 너는 카페 홍보가 되어 좋고, 나는 회사 밖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무언가를 도모해 볼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좋은 기회다.

4. 요즘 대세는 플랫폼 비즈니스다. 이번 시도로 평소 둘 다 관심있었던 오프라인 플랫폼 비즈니스 사업을 작게나마 실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5. 얼마 전 같이 타로점을 보러 갔을 때 슬라임 카페를 오픈하는 너에게 동업자가 없느냐고, 좋은 파트너가 있을거라고 하지 않았나! 그 땐 둘 다 누구지? 하며 고개를 갸우뚱했었는데, 세상에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그게 나였어!!



그게 나였다는 확신과 함께 박수를 치며 우리는 피맥집을 나왔다. 가을에서 겨울로 가는 늦가을 바람이 너무도 청량하고 시원했다.


두 번째 미팅 날짜를 정하며 헤어진 후 카톡으로도 우리는 플리마켓 개최의 꿈에 부풀어 있었다. 행복 회로가 무한대로 확장 중이었다. 실패의 여신은 우리를 피해 갈 것이 분명했다. 그 순간, 우리는 하고 싶은 일을 벌이는 그 자체만으로 행복했다. 그것은 내가 지금 행복하다는 것을 계속 느끼게 해주는, 너무도 선명한 행복이었다.



 

이전 03화 각종 원데이 클래스 도장깨기 후 깨달은 것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