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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무리 Apr 25. 2019

각종 원데이 클래스 도장깨기 후 깨달은 것

Feat. 갈수도, 안갈수도 없는 막막한 길 위에서



길 위에 서면 나는 서러웠다.

갈수도, 안갈수도 없는 길이었으므로

돌아가자니 너무 많이 걸어왔고

계속 가자니 끝이 보이지 않아

너무 막막했다.



이정하, <길 위에서> 중에서






’일단 해보기’로 하고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이 각종

'취미'와 '배움' 클래스 섭렵하기 였다.

어딘가에 다른 길이, 나도 몰랐던 나의 숨겨진 재능이 있지 않을까, 해서 였다.


나와 같은 직장인이 많은걸까?

아니면 근로시간 주 52시간 시행으로 저녁이 있는 삶, 워라밸이 난리인 영향일까?


무엇이든 배우려고 들면 모든게 다 가능한 세상이었다. 클래스 정보를 얻는 일도 어렵지 않았고, 대부분 기본이나 심화 과정 개설 전 한 번 해볼 수 있는 원데이 클래스 운영이 보편화되어 있어,

그야말로 '일단 해보기'에 최적화된 세상이었다.



1. 제일 먼저 시작한 건 '플라워 클래스'였다.


일단 취미 생활 겸 '나에게 재능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시도해 본 것이었는데, 결론은 재능 없음으로 일단락. 우선 나는 일종의 공간 감각이 높지 않은 사람이란 걸 알게 되었다. (아직 운전면허가 없는데, 이런 식이라면 운전도 분명 못할것 같다는 것 또한 함께 깨달음)


플라워 어레인지먼트의 핵심은 다양한 모양과 높이와 색상과 볼륨의 꽃들을 적절한 공간감 안으로 배치하는 일이었다. 나는 감도 없을 뿐더러 다루는 것도 어설펐다. 나름 4주 과정을 수강했는데 2주차에(꽤 빠름) 이 사실을 깨달았다. 사실 처음 배우는 건데 좀 시간이 걸릴 수도 있지 하고 더 꾸준히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만 둔 가장 큰 이유는 꽃이 시드는 모습을 보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본질은 그 점이었다.


'만개'의 시간이 너무 짧았다. 절정의 아름다움을 보더라도 이내 시드는 것이 상상됐다. 그렇게 꽃은 시들어도 아쉽지 않은 만큼만, 가끔 선물하고 받는 것에 만족하는 것으로 했다. 그런데 한 가지 깨달은 것은 4주 간, 만든 꽃을 매번 누군가에게 선물하는 것은 꽤 행복한 일이라는 것이었다.

  

내가 만들어 동생에게 선물했던 꽃



2. 그리고 '글쓰기'와 '책쓰기' 수업을 들었다


'글쓰기'와 '책쓰기'는 내가 유일하게 꾸준히, 오랜 시간 온전한 기쁨과 의미를 발견하며 해 온 일이라는 점에서 망설임 없이 시작했다. '글쓰기'의 범주는 넓고도 다양하기에 클래스도 매우 다양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수업은 전직 에디터님이 진행한 '에세이 쓰기' 수업이었다. 매주 동일한 주제로 에세이를 쓰고 에디터님의 첨삭 후 참여한 수강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었는데, 작가의 관점이 아닌 에디터의 관점에서 내 글을 첨삭해 주시는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문우'를 만난 느낌이랄까? 에세이를 쓰고 싶어 모인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가 즐거웠고, 내 글에 대해 기탄없이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았다. 언제나 칭찬만 듣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은근(?) 자신감이 생겼던 것은 글을 통해 나의 생각이 온전히, 어쩌면 더 풍부하게 전달된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런 가능성을 느낄 때 오는 쾌감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었다. 에디터님의 소소한 칭찬에 벌써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것 같은 성취감을 느끼기도 했다.


'책쓰기' 수업은 각기 다른 클래스로 두 번 정도 수강했는데, 확실히 '글쓰기'와는 전혀 다른 관점이었다. 글을 쓰는 것과 그 글을 책으로 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출간이라는 것은 좀 더 비즈니스 관점의 기획이 중요했다. 출판사도 비영리 회사가 아니니 당연한 일이지만. 그런데 좋은 기획과 마케팅이 뒷받침 된다고 꼭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은 아니었고, 처음부터 노리고 출간하지 않았는데 베스트셀러가 된 경우도 많았다.


성공의 사례 분석은 대부분 결과론이라 작가 조차 왜 잘 팔렸는지, 왜 안팔리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어려운 세계였다.



3. 가장 기억에 남는 '캘리그래피' 수업

  

의외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캘리그래피' 수업이었다. 부모님이 서예를 쓰다 만나서 결혼하셨는데, 캘리그래피를 배우며 내 안에 엄마 아빠의 붓글씨 유전자가 흐르나? 싶을 정도였다. 정적인 취미에는 흥미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조용히 글씨를 쓰는 시간이 좋았다. 글쓰기와 그리기의 중간 쯤. 연필도 볼펜도 아닌 붓펜이 종이에 닿아 둥글리는 느낌이 좋았다.


그리고 캘리그래피는 은근히 쓸모가 많은 일이었다. 지인이 오픈한 가게에 갔다가 메뉴판으로 사용하는 칠판에 글씨를 써주기도 했고, 친구가 만드는 동영상 과제에 손글씨 쓰는 모습으로 출연해 주기도 했다. 캘리그래피 수업을 들을 무렵 막 블로그를 시작했었는데, 포스팅에 어울리는 사진을 찾는 대신 직접 쓴 손글씨 사진이나, 글씨를 써 넣은 사진을 함께 업로드 하기도 했다. 여러모로 쓸모 있는 배움이었다.


카페에서 캘리그래피 연습하던 한 때. 왜 하필 살인자의 기억법을 연습했을까?





직장인에게 '원데이 클래스'란 "이 길이 아닌가벼" 또는 "닥치고 회사나 다니자"를 깨닫는 과정이라 했던가. 취미나 재미를 업으로 삼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깨달은 것은 맞다. 그런데 내가 각종 클래스를 '일단 해보는' 과정에서 깨달은 가장 중요한 것은,


'세상엔 월급쟁이가 아니어도 돈벌 방법이 있다'는 것이었다.



월급쟁이에게 월급이 나오지 않는 삶은 미지의 두려움이지만, 막상 한 걸음만 나와서 보면 월급쟁이가 아닌 상태로도 '노동'과 '생산'을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꽃이 좋아 가게를 하다 플라워 공방을 차린 사람, 9년 간 출판사 편집자로 남의 책을 만들다 퇴사 후 나의 책을 쓰고 강의를 하는 사람,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일하다 퇴사 후 캘리그래피 강사이자 빈티지 소품 셀러로 일하는 사람.


한 곳에 적을 두고, 한 번에 한 가지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법도 없다. 무조건 '프리'해서 프리랜서가 아니다. 모두가 각자의 리듬 안에서 각자의 균형감을 유지하며 일하고, 살아 간다. 



일단 해보자는 막막한 마음으로 도장깨기처럼 시작했던 각종 '원데이 클래스' 섭렵을 통해,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당장 회사를 그만둘 순 없다는 것', 그럼에도 '회사라는 연못 밖 세상에서도 일을 하고 돈을 벌며 살아갈 길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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