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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무리 Apr 30. 2019

평범한 직장인의 플리마켓 개최기 中

내 일을 하는 기쁨



Y와 플리마켓을 해보기로 결심하고 정한 D-Day까지 두 달 정도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우리는 매주 두 번씩 각자의 퇴근 위치 사이 중간 지점인 여의도에서 만나 기획 회의를 했다.


나는 퇴근 후 여의도로 갔으니 하루에 두 번 출근하는 셈이었다. Y 역시 카페 문을 닫자마자 여의도로 달려왔다. 회의를 시작하는 시간이 밤 9시, 막차 시간이 다 되어서야 늘 아쉽고 황급히 회의를 마무리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극한 체력을 요구하는 스케줄이었다.


여의도 카페로 두 번째 출근, 마켓 때 쓸 슬라임 샘플과 함께



그런데, 그 시절 Y와 나눈 카톡방의 대화 속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말이 "너무 재밌어" 였다. 우리는 너무 재밌다는 말을 쉴 새 없이 할 만큼 정말 너무 재미있었다. 아직은 본질이나 근원을 알 수 없는 재미였다. 그 재미에 빠져 야근 불사, 주말도 없이 아이디어 회의를 했다.


마켓의 주 타깃과 판매 정책을 어떻게 가져갈지, 마켓 진행 시 카페의 테이블 배치는 어떻게 할지, 셀러 모집은 어떻게 할지, 이 모든 것이 확정되면 홍보 마케팅은 어떤 방식으로 할지 등 끝도 없는 회의와 고민과 의사결정과 다시 회의로 돌아오는 과정. 분명 회사에서 수없이 반복했던 일인데 이상한 일이었다.


대체 왜 재미있을까?
단지 회사 밖에서 일어나는 일이라서?
딴짓을 하는 재미에 불과한 걸까?



본격적인 플리마켓 참가 셀러 모집을 시작한 다음 날이었다. 나는 오후 회사 본부장님 방에서 업무 보고를 하는 중이었다. 이런 저런 피드백을 받고 있던 중 회의 테이블 위에 올려 둔 내 스마트폰 화면이 카톡, 하고 반짝였다.


안녕하세요? 플리마켓 참가하고 싶어서
연락 드립니다.


본부장님 방에서 소리를 지를 뻔 한 걸 가까스로 참았다. 드디어 왔다. 슬라임 셀러의 첫 번째 참가 신청!!



내심 불안했었다. 우리가 플리마켓을 열면 참가를 희망하는 셀러가 알아서 몰려 올 것이라는, 지금 생각해보면 엄청난 행복 회로를 돌렸었다. 200명이 넘는 슬라임 셀러들에게 오픈카톡, 인스타그램 DM 등 다양한 방법으로 플리마켓 참가 제의를 보냈고 단 한 명도 확정하지 못한 채 24시간 정도가 지난 다음 날이었다.


고작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너무 초조했다. 우리가 온전히 기획하고 준비한 일이니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다. 벌써부터 플랜 B를 준비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은 불안함이 폭발하기 일초 직전, 첫 번째 참가 신청이 왔고, 그 후로는 꽤 빠른 속도로 우리가 목표로 한 셀러 모집 인원이 마감되었다.


한 명 한 명 참가자를 확정할 때마다, 플리마켓과 관련된 아무런 경험도 경력도 없는 우리를 믿고 참여 의사를 밝혀준 셀러분들께 정말 눈물 나게 고마웠다. 시작도 하기 전에 좋은 파트너를 만난 기분이었다.



셀러 모집을 완료하고 본격적인 플리마켓을 홍보를 시작했다. 블로그나 SNS와 같은 온라인 홍보는 물론, 현수막을 직접 붙이고, 마켓 쿠폰을 일일이 손으로 만들고 자르는 가내수공업은 기본, 태어나서 처음으로 번화가에서 직접 전단지를 돌렸다. (전단지 홍보가 아직도 유효할 줄이야!)


그 시절 가내수공업의 흔적들



만약 이게 회사의 업무였다면, 유동 인구가 많은 번화가에서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 전단지를 돌리는 일까지 ‘내 일’이라는 마음으로 자진해서 할 수 있었을까. 한 사람에게라도 더 전단지를 건네려고 이리 저리 뛰어다녔을까.


회사의 임원들이 왜 그토록 직원들에게 와 닿지 않는 ‘주인의식’이나 ‘로열티’를 강조하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허상이 아니었다.

이토록 뭘 하든 재미있는 이유는,



‘내 일을 하는 기쁨’이었다.



실패도 성공도 온전한 내 것이라는 마음.

온전히 내가 주인이라면 ‘주인의식’을 갖자고 강조할 필요도, 슬로건을 만들고 캠페인을 할 필요도 없다.


대신 내가 멈추면 말 그대로 올스탑, 아무것도 굴러가지 않는다. ‘나 없이도 잘 굴러가는 조직’ 같은 건 없다. 하지만 내가 하는 만큼의 보상과 보람도 온전히 내 것이 된다.


이제야 왜 내 사업을 하는 것을 '행복한 감옥살이'에 비유하는지 알 것 같았다. 직장인이 회사의 노예라면, 내 사업을 하는 것은 내가 지은, 내 마음에 드는 감옥에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일인 셈이다. 그런데 비교할 수 없는 행복이 있다.


물론 플리마켓 한 번 개최한 경험으로 내 사업을 했다고 보기도 어렵고, 정말 전업을 할 결심이 서려면 얼마나 많은 리스크와 고려사항이 발생할지 상상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내 사업의 맛만 어렴풋이 본 것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래도 시도해 보지 않았다면 영원히 알 수 없었을 맛이었다. 해봐야 아는 그 맛을 본 것만으로 엄청난 경험이자 성공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비즈니스 측면에서 플리마켓이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역시나 세상에 쉬운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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