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무리 Jan 20. 2020

진짜 버티느라 고생들 했다

Feat. 놀면 뭐하니, 유재석의 진심



지난 연말 MBC 연예대상에서 유재석이 유산슬로 신인상을 받았을 때도 무한도전을 만든 김태호 PD의 복귀작인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를 제대로 본 적이 없어 별 감흥이 없었다.


데뷔 30년차에 신인상이라니 대단하다. 유재석이니까 뭐. 정도의 감흥.


이번 주말 오랜만에 잉여로운 시간을 보내며 TV를 켰는데 유재석이 유산슬 라멘집을 차리고 새로운 도전을 하는 장면이 나왔다. 심야식당 같은 컨셉인가 하며 보기 시작했는데, 장성규, 장도연, 양세찬 등 지난 연말 연예대상에서 상을 받은 예능인들이 조촐한 뒷풀이처럼 유재석이 차린 식당을 방문했다.


개인적으로 박나래가 연예대상을 받았던 2019 MBC 연예대상이 여러 연말 시상식 중 가장 감동적이었는데, 가요대상이나 연기대상도 있지만 유독 연예대상에서 시상자나 수상자나 지켜보는 동료들이나 많은 눈물을 흘리는 데는 이유가 있는 것 같다.


나 역시도 연예대상 시상식을 보며 폭풍 눈물을 흘렸는데, 뭐랄까. 남에게 웃음을 주는 일의 어려움. 그 어려움만큼의 숭고함과 위대함. 그런게 느껴져서인 것 같다.




남에게 웃음을 주는 그 어려운 일을 함께 하고 있는 동료 후배들과, 지난 연예대상 수상 이야기를 즐겁게 나누던 중 문득 유재석이 이런 말을 했다.


진짜 버티느라 고생들 했다!


이 말에 장도연이 지었던 표정이 아직도 바로 떠오를 만큼 인상 깊었다. 유재석 같은 선배가 나에게도 저런 말을 해주었다면 분명 그런 표정을 지었을 것 같다.


진짜 그런 생각이 든다고. 우리가 버틴 거라고.




브런치북에 ‘버티는 직장인의 위엄과 위험’을 연재할 때, ‘버틴다’는 단어에 대해 수없이 생각했다. 버티는 일의 기쁨과 슬픔에 대해. 하고 싶음과 어쩔 수 없음에 대해.


버티는 일을 긍정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여전히 그건 어려운 일인데, 선배가 무심한 듯 툭, 진짜 그런 생각이 든다며, 진짜 버티느라 고생 많았다고 말해 준다면 어땠을까. 분명 조금은 쉬웠을 것 같다. 그 선배가 나보다 먼저 더 오랜 시간 버티고 있고, 데뷔 30년차에 신인상을 또 받을 만큼 기가 막히게 잘 버티어주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우리가 버틴 거잖아! 하며, 그 '우리'가 자랑스러웠을 것이다.





얼마 전 읽은 책 <출근길의 주문>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누구 한 사람만 앞에 있어도, 한 명만 눈에 보여도, 그 길을 선택하는 일에 도움이 된다.


때로는 어떤 위로나 조언보다, 그냥 먼저 그 길을 가고 있는 선배의 뒷모습이 도움이 될 때가 있다. 그 한 명이 있다고 당장 무언가가 이루어지지는 않지만, 그 한 명이 없어서 앞이 안보이고 두려울 때는 마치 그 뒷모습이 전부인 것처럼 용기와 힘이 된다.


방송을 보며 유재석 같이 말해주는 선배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과, 나도 유재석처럼 말해주는 선배가 되어야지 하는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직장 생활 10년을 넘어서니 나는 그 중간 쯤 어딘가에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좀 더 버티어 보자. 담고 싶은 뒷모습이 모여 길이 된다면 그 길을 따라가면 되고, 또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누군가에겐 한 사람이어도 충분한 단 하나의 뒷모습이 될 수도 있을 테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일의 기쁨과 슬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