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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무리 Jan 12. 2020

일의 기쁨과 슬픔

잘 살겠습니다.


소설 '일의 기쁨과 슬픔'을 처음 만난 건 판교에서 일하는 동생이 판교 하이퍼 리얼리즘이라며, 구구절절 나의 삶이라며, 첫 문장부터 뇌가 움직였다며, 굉장한 소름이라며 읽어보라고 보내준 링크를 통해서였다. 소설을 종이책이나 계간지가 아닌 '링크'를 통해 스마트폰으로 읽는 것도 생소했는데, 무려 이 소설이 당선작으로 실린 창작과 비평 사이트는 접속자 폭주로 다운되기까지 했다.


디스패치도 아니고 창작과 비평인데. 무게감 있는 계간지 사이트의 당선작 링크가 SNS와 메신저를 통해, 소설이 구구절절 나의 일상, 모든 순간이 우리 회사에 있다, 내가 쓴 일기장이다 (feat. 판교인) 등등 무수한 탄성과 함께 수없이 공유되고, 조회수가 수십만을 넘어가고 있었다.


이 링크를 2호선 지하철 안에서 받았는데, 순식간에 다 읽고 나니 문득 사람이 가득한 지하철 불이 다 꺼져서 꿈인가? 했는데 성수행 열차를 탄 것이었다. 잠시 꿈을 꾼 사람처럼 허둥지둥 지하철에서 내렸던 기억이 이상하게 아직도 생생하다.

  



그 후 1년쯤 뒤에 같은 제목으로 소설집이 출간되었다. 1년 만에 '일의 기쁨과 슬픔'도 다시 읽었고, 소설집 속 다른 소설들도 단숨에 읽었다. 그 1년 사이 나에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한 살 더 나이를 먹었다는 것과, ‘버티는 직장인의 위험과 위엄'이라는 제목으로 한 권의 브런치북을 엮었고, 브런치에 글을 쓰며 날짜를 거꾸로 수십 번 세었던 '입사 10주년'을 넘어 여전히 회사를 다니고 있다는 것.


1년 만에 스마트폰이 아닌 소설집으로 다시 읽은 '일의 기쁨과 슬픔'은 조금 다르게 읽혔다. 그 다름이 1년 사이 나에게 달라진 점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소설집에 실린 다른 소설들을 함께 읽으며 여러 인물들이 같이 다가왔기 때문인 것 같기도 했다.


소설 속에는 프로불편러도 아니고 평범한 직장인, 평범한 1인 가구, 평범한 기혼 여성임에도 화자를 불편하게 만드는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뭐랄까, 자꾸 선을 넘는 사람들. 내가 애써 만든 안전한 (사실은 불안하지만) 겉으로는 안전하다고 여기며 간신히 지키고 있는 나, 나의 집, 나의 평판, 나의 생을 자꾸만 치고 들어오며 미묘하게 균열을 일으키는 사람들. 자동차의 유리처럼 깨질 만큼 약하진 않지만 거슬리게 금이 가는 것들이 눈에 보여서 받는 스트레스, 성가심, 때로는 분노.


그런 사람들의 모습에서 나를 발견하기도 하고, 너무도 꼭 닮은 내 주위의 누군가를 떠올리기도 했다.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장류진의 소설들을 관통하는 어떤 '균형감'이었다. 흔히 말하는 '워라밸'의 균형감 같기도 했고, 그다지 희망이 없어 보이는 한국 사회에서 버티기 위해, 조금이라도 행복감을 느끼기 위해 적극적으로 가지게 된 균형 같기도 했다.


소설의 마지막에 붙여진 평론에서는 이를 '타인이 건네는 따뜻한 온도를 잊지 않으면서도 4대 보험의 푹신한 촉감도 무시하지 않은 현실 인식'이라고 정의했다. 월급의 소중함을 모른 척하지 않고 여가의 행복을 지킬 줄 아는 산뜻하고 담백한 마음이라고. 일의 기쁨과 슬픔을 고루 품은 이 소설은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가장 보통의 삶에 대한 긍정이라고.





장류진 작가는 소설의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아끼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신나게 웃고 떠들다가도, 내게는 너무도 중요한 나의 일부를 이들은 까맣게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 내가 자초한 일이면서도 - 한없이 외로웠다, 고 했다. 이 부분에서 베스트셀러 작가도 아니고 남모르게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을 뿐인데, 너무 공감이 가서 살짝 눈물이 날 뻔했다.


지난해 정말 아무도 모르게 브런치에 글을 쓰다가, 브런치북 '버티는 직장인의 위험과 위엄'을 엮기 시작하며 주위 지인들에게 조금씩 글을 오픈하기 시작했는데, 그건 정말 외로워서였다. 아주 친한 친구나, 가족에게조차 말하지 못하고 있으니 너무 외로웠고, 글쓰기가 나에게 점점 더 중요한 일이 되면서 더욱 한없이 외로웠다.


친한 사람들부터 조금씩 글을 오픈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제일 가까운 사람들의 공감과 응원이 생각보다 더 큰 힘이 되었다. 글을 쓸 때 의식하게 되면 어쩌나 걱정을 하기도 했는데, 오히려 요즘 왜 새 글이 안 올라와? 하는 말이 침대에 누워 유튜브를 보다가도 벌떡 일어나 노트북 앞에 앉게 되는 자극과 긴장을 주었다.


부동산처럼 돈이 되지도, 오히려 받으면 받았지 스트레스가 막 풀리지도, 조사 하나 단어 하나 고민해서 퇴고하고 다시 쓸 때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쓸 데 없는 일을 나 홀로 미련하게 열심히 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의 기쁨과 슬픔'을 처음 읽었던 재작년 즈음과, 다시 읽게 된 지금 가장 달라진 점이 있다면, 글쓰기는 나에게 비밀리에 하는 어떤 사이드 프로젝트나 취미 생활 같은 탈출구가 아니라, 그 자체로 '가장 보통의 삶에 대한 긍정'이 되었다는 점이다.


저 글을 쓰고 있어요, 하며 브런치의 링크를 보내고 시간 되실 때 읽어주세요, 건내는 말이 이제 자연스럽고 좋다.


계속 열심히 쓸 거니까. 장류진의 소설 속 '잘 살겠습니다' 라는 인사 같아서 좋다.


2020년도 열심히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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