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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무리 Mar 03. 2020

리셋 버튼을 누르고 싶은 2020년

코로나19 기록하기 - 코로나 시국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4관왕을 차지했을 때만 해도, '다이내믹 코리아'라는 말은 이 엄청난 콘텐츠를 탄생시킨 원동력을 상징했다. 박찬욱 감독이 한 언론 인터뷰에서 '기생충'이 공개된 후 내가 아는 외국 영화인들이 자꾸 전화해서 '한국 영화계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냐', '한국 영화인들이 먹는 약 같은 게 있으면 같이 좀 먹자'는 농담에 '너도 다이내믹 코리아에 살아봐라'라고 대꾸했을 정도니 말이다.


'기생충'이 4관왕에 오른 이후였던 2월 중순부터 지금까지 약 2주 간 다이내믹 코리아에선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끝이 보이는 듯했던 코로나 19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한 시국에 이르렀고, 전 국민이 하루에 두 번 늘어나는 확진자수를 확인하며 2주를 버텼다.



일부 시민들은 중국인에 대한 강력한 입국 금지를 청원했으나, 불과 며칠 사이에 베트남이 한국인의 입국을 금지하자 분노했다. 어느 사이비 종교 집단의 비상식적 행동에 분노했으나, 궤변을 늘어놓으며 광화문에서 집회를 강행하겠다는 종교 단체장(물론 지금은 구속되었지만)의 행동에서도 상식을 찾아볼 수 없다.


이토록 매일 투명하게 공개하고 할 수 있는 최대한을 검사하는데도 가짜 뉴스는 어디에서 생산되는 걸까. 외신에서는 한국의 선진 의료와 언론의 자유, 투명성을 논하지만 일부 국내 언론의 자극적인 보도는 이제 기자가 이런 기사를 써야만 하는 구조적인 문제를 논해야 하는 시점에 왔다고 생각한다.


가족의 만류에도 자원하여 대구로 가는 의료진들의 숭고함과, 기부에 동참하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모이는가 하면, 연예인에게 100만 원밖에 기부하지 않는다며 악플을 다는 사람들, 이 와중에 마스크 되팔이를 하며 폭리를 취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오늘 주말을 지나고 3월의 첫 월요일, 사이비 교주는 기자회견을 열고 전 국민 앞에 두 번 절했다. 사죄하러 나온 듯했으나,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시계의 진품 여부를 떠나, 그는 왜 전직 대통령의 이름이 박힌 시계를 차고 나왔을까. 의문만 남긴 기자회견을 끝으로 그는 보건소장의 검사 요구를 거부했다. 이미 음성 판정을 받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기자회견 만으로도 3월 2일의 다이내믹 코리아는 충분한 줄 알았는데, 같은 날 북한은 미상의 발사체 2발을 동해상으로 쏘았다. 이 와중에? 라고 묻기도 전에 경기도지사는 사이비 교주의 궁전을 급습했고, 영생을 꿈꾸던 교주는 도망치듯 관내 보건소로 가서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이 모든 일이 불과 2주 사이에 벌어졌다니. 6시간 후면 나는, 아니 전 국민이 사이비 교주가 음성인지 양성인지 알게 된다. 문득 질끈 눈을 감고 싶어졌다. 바이러스 때문인지 다이내믹 코리아 때문인지 호흡 곤란이 올 것만 같다. 2020년 3월의 첫 월요일, 할 수만 있다면 리셋 버튼을 누르고 2020년이 오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




어릴 적 내가 꿈꾸던 2020년은 그 드라마틱한 숫자 '2020' 만으로도 공상 과학 영화 한 편이 재생될 정도의 '미래' 그 자체였다. 미래 세상에서는 자동차가 하늘을 나르고 대부분의 노동은 인공지능이나 기계가 대체하였으며, 덕분에 길어진 휴가 때는 화성이나 달나라 투어를 간다. 아, 그리고 무엇보다 통일은 무조건 되었을 줄 알았다. 그 어릴 적 부르던 노랫말처럼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었으니까. 화성은커녕 평양도 못 가봤을 줄이야.



2020년의 진짜 현실은 이러하다. 2020년 3월의 나는 오전 8시 30분 집 근처 약국 앞에 줄을 서있다. 코로나 19 사태로 마스크 품절 대란이 일어났고, 오늘부터 정부에서는 사태 해결을 위해 공적 판매를 시작한다. 1인 최대 구매 수량인 마스크 5장을 사기 위해 아직 오픈도 하지 않은 약국 앞에 줄을 서고 보니 줄을 선 사람들 너머로 약사의 얼굴이 보인다. 피로가 가득하다.


AI 로봇이 집집마다 방문하여 안면 인식 기술로 본인 확인을 하고 중복 지급이 없도록 공정하게 마스크를 배부하는 2020년은 오지 않았다. 부산의 어느 군에서는 통반장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마스크를 전달하고 있다. 내가 사는 서울에서는 마스크를 사기 위해 TV에 나온 유명 맛집처럼 약국 앞에 긴 줄을 선다. 마스크 파는 기계가 된 사람처럼 무념무상 마스크를 건네고 결제를 하던 약사가 갑자기 내 앞의 중년 남성과 나 사이에 팔을 뻗는다.  


"죄송합니다. 여기 앞에 선생님까지로 마감되었습니다."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이른 아침부터 기다렸는데 내 바로 앞에서 마감이라니. 누구의 앞에서라도 마감은 되겠지만 바로 내 앞에서, 이토록 나에게만 드라마틱한 순간이라니.


마스크를 끼고 있어 눈밖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약사의 표정이 세상에서 가장 큰 죄라도 지은 것처럼 미안한 사람의 표정이라 나는 얼핏 서릴 뻔 한 원망의 눈빛을 바로 거둘 수밖에 없었다. 허탈하게 돌아서 나오는데 약사가 A4 용지 두 장을 들고 내 뒤를 따라 나왔다. 약국 출입문에 붙인 A4 용지에는 이런 말이 쓰여 있었다.


"오늘 공적 마스크 판매 마감되었습니다."

"마스크 대기 줄을 서실 때는 바이러스 감염 예방을 위해 반드시 마스크 착용 부탁드리며, 가급적 서로 떨어져 줄을 서주시기 바랍니다."


그는 매일 아침 하던 일을 하는 사람의 얼굴로 A4 용지 2장을 약국 문에 붙이고 다시 들어갔다. 자리에 앉아 집중하며 모니터를 바라본다. 아마도 매일 점점 더 빨라지는 판매 마감 시간에 내일은 몇 장의 마스크를 받을 수 있을지,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어려운 마음일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런 것이다. 매일 아침 약국을 여는 것. 그날 들어온 마스크 수량을 확인하는 것. 줄을 선 사람들에게 마스크 착용과 떨어져 줄 서기를 당부하는 일. 마스크를 건네고 결제하고 마감을 알리는 것. 내일은 좀 더 많은 수량을 확보할 수 있도록 애쓰는 것. 이 와중에 안내문을 붙이며 혹시 모를 감염을 예방하고, 서로의 안녕을 돕는 일.


그러니까 내 자리에서 묵묵히 나의 일을 하는 것,

그것뿐이다.


안녕을 묻는 일도 많은 생각이 드는 요즘이지만, 우리가 서로의 안녕을 묻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면, 각자가 나의 일상을 무사히 살아낸다면, 다이내믹 코리아에는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따뜻한 봄날이 올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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