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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무리 Jun 07. 2020

후배에게 회사 욕을 할 수 없는 이유

이렇게 기성세대가 된다



요즘 회사에서 후배와 소통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소통의 어려움이라고 하기엔, 일방적으로 내가 겪고 있는 문제라 할 수 있는데 예를 들면 이런 것.


오늘 회사에서 겪은 '정말 한심하다'를 넘어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를 넘어, 저런 사람이 걸러지지 않고 조직의 높은 자리에 올라갔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고 회사에 대한 실망으로까지 이어지는 상황이 있었는데, 문제는 이 상황을 같이 일하는 후배와 어디까지 공유할 것인가 였다.


친구나 동료였으면 욕이라도 실컷 하며 오늘의 빡침을 털어버렸을 텐데, 막상 업무적인 공유가 필요한 후배에게는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후배 역시 언제라도 이런 일을 겪을 수 있으니 말해주는 편이 맞지만, 어떤 톤으로 어디까지 말해주어야 할지 판단이 어려웠다.




왜 말이 잘 나오지 않는지, 왜 판단이 어려운지 성찰 아닌 성찰의 시간을 갖다가 깨달은 것은 그 어려움의 밑바탕에 '부끄러움'이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오늘의 사건을 후배에게 말하는 것이 부끄러웠다. 나 역시 이 부끄러움에 '책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기성세대'가 된다는 것은 후배와 실컷 회사 욕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로 나뉘는 게 아닐까. 선배든 후배든 누구와도 마음껏 회사 욕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그 비판에 나의 책임이 없거나 아주 가볍다는 뜻이다. 그런데 입사 10년 차를 넘고 보니 회사가 이런데에는 나의 책임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구체적으로 내가 무엇을 잘못해서 이렇게 되었다, 라기보다는 나 역시도 이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조직 내에서 벌어지는 문제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실컷 욕을 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그렇게 불만인데 10년 동안 넌 뭐했어?


물론 내가 오너가 아닌 다음에야 내 마음대로 조직을 변화시키거나 개선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기도 전에 대체 내가 왜? 하는 현타가 오기도 한다.


최근에 후배와 함께 회사에 오래 다니신 팀장님과 술 한 잔을 할 일이 있었는데, 술자리가 끝나갈 무렵 술기운에 이런저런 회사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팀장님의 말씀이 불편했던 기억이 있다. 여느 때 같았으면 받아치고 웃으며 술안주 정도로 마무리했을 일인데, 계속 옆자리의 후배가 신경이 쓰였다. 후배는 별로 신경도 안 쓰는 눈치였는데 왜 나만 이렇게 마음이 불편한가 했는데,


그 모든 불편함과 신경 쓰임의 근원에는 '부끄러움'이 있었던 것이다.


팀장님의 좌절감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나 조차도 마음 한켠에서는 그렇게 불만이 많으시면서 팀장님은 뭘 하셨나요? 하는 생각이 드는데. 후배 역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그럼 선배님은 뭘 하셨나요?




이제 회사 욕도 실컷 할 수 없는 연차가 되었다니 좋은 시절 다 갔다(?)는 생각이 든다. 회사에서 기성세대가 된다는 것은 '책임'을 지는 세대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의 조직이 좋든 나쁘든 나도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


그러니까 회사 욕도 대나무숲이라면 모를까 후배들에게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 그전에 나는 이 상황에 책임이 없는지 돌이켜보아야 한다. 어느새 그런 연차가 되었다. 여전히 그래서 너는 무얼 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명확한 대답은 모르겠지만, 마냥 대안 없는 회사 욕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도 일말의 애사심이 남아있을 때, 후배들은 좀 더 나은 회사를 다녔으면 좋겠다. 당장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가랑비에 옷 젖듯이 조금씩 나은 회사가 되기를. 그래도 후배들에게 더 나은 회사를 물려주고 싶다. 내 회사도 아닌데 이쯤 되면 오버가 분명하지만, 어쩌면 이건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과 일맥상통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기성세대가 된다는 것이 불가피한 것이라면 '꼰대'가 아니라 '훌륭한 어른'이 되자고. 개인의 삶에서도, 조직에서도. 이렇게 오늘 회사에서 겪은 차마 후배에게도 말하기 부끄러운 작금의 상황을 아름답게 승화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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