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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무리 Aug 02. 2020

꿈은 목표가 아니라 '상태'니까

내가 사랑하는 에세이 2 - 김하나, '말하기를 말하기'



요즘 누군가 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조심스럽게 '읽고 쓰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렇게 쓰고 보니 최근에 이런 류의 질문을 받은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꿈이라니, 이제는 꿈이 무엇일지 궁금증을 불러일으킬 나이를 지난 것일까. 아니면 꿈이 무엇인지를 정하는 나이가 아니라 이미 그 꿈을 실현해 나가고 있거나 어느 정도 이루고 있어야 하는 나이이기 때문일까.


아무도 나이 이야기를 안 했건만 꿈으로 시작된 글에 나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보니 누구보다 이런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은 꿈을 묻지 않는 내 주위의 사람들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이 이야기는 접어두고 다시 꿈 이야기로 돌아가서, 예전엔 막연했던 꿈이 요즘은 조금씩 구체적으로 그려지고 있음을 느낀다. 이제 나에게 꿈은 되어야 할 존재나 대상이 아니라 어떤 충만한 '상태'에 더 가까운 느낌인데, 그런 관점에서 나는 '읽고 쓰는 사람'인 상태로 살아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상태'로 살 수 있을 것 같다.




최근에 새 책 '말하기를 말하기'를 출간한 김하나 작가는 살다 보니 어느새 '읽고 쓰고 듣고 말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살다 보니 어느새'라는 말이 좋았다. 나도 살다 보니 어느새 읽고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엄청난 계기나 강렬한 동기가 없어도, 읽고 쓰는 일이 부업을 넘어 본업까지는 아니더라도 '주업'일 수 있는 삶. 그러니까 읽고 쓰는 일이 내 일상의 중심이 되고 소득을 창출하는 주요 경제 활동일 수 있는 삶 말이다. (물론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차마 '본업'이라고는 표현하지 못하는 걸까.)


읽고 쓰고 듣고 말하는 사람 김하나 작가의 에세이



작가를 초대해 인터뷰하며 책을 소개하는 팟캐스트를 진행하는 김하나 작가는 책과 작가의 남다른 장점을 찾아내 칭찬을 많이 하다 보니 어느새 '칭찬폭격기'라는 별명이 붙게 되었고 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작가님들은 곧잘 말씀하기를, 자신이 책을 쓸 때 알아봐 주길 바라며 공들였던 부분을 내가 정확하게 끄집어내 칭찬해줘서 놀랐고 고맙다고 한다. 나는 그럴 때가 참 즐겁다. 좋은 것을 좋다고 말하는데 에너지를 쓸 때가."


이 문장을 읽으며 김하나 작가가 읽고 쓰고 듣고 말하는 일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좋은 것을 좋다고 말하는데서 오는 행복과 그 '좋음'이 활자로, SNS로, 미디어로 공유되는 순간의 전율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실제로 팟캐스트를 진행하며 무언가를 전한 것이 아니라 '함께 느낀 것'임을, 공유의 의미를 다시 새기는 인상적인 에피소드는 '말하기를 말하기' 속 '대화의 희열'이라는 챕터에 나온다.


나 역시도 브런치에 '에세이를 읽고 쓰는 에세이'라는 새로운 매거진을 만들고 글을 쓰는 이유가 '좋은 것을 좋다고 말하고 싶기 때문'인 것 같다. 그것에만 온전히 에너지를 집중하고 싶어서.




또 한 가지 귀엽고 따뜻한 에피소드는 '최고의 안주는 대화'라는 에피소드에 나온다.


술 마시면서 두런두런 대화 나는 걸 좋아하다 보니 오랜 술친구와는 했던 얘기를 또 할 때도 많을 것이다. 언젠가 친한 친구와 술을 마시며 늦도록 얘기를 하던 중에, 내가 예전에 했던 얘기를 다시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어? 이 얘기 내가 너한테 하지 않았던가?"라고 물으니 친구가 "응, 했어" 한다. "왜 말 안 해줬어? 지겹잖아, 들었던 얘기. 이러다 나 나이 들면서 했던 얘기만 하고 또 하게 되면 어떡하지? 무섭네." 나는 이때 친구가 취해서 어눌한 말투로 했던 대답을 잊지 못한다. "야...... 그러면 좀 어떠냐?" 그 말이 그렇게 따뜻하고 고마울 수 없었다.


그밖에도 여성에게 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라고 때로는 오지랖 같은 응원으로, 때로는 단호한 언니의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여러 에피소드들도 마음에 남아 있다. 책의 띠지에 메인 홍보 카피인 '읽고 쓰고 듣고 말하는 사람 김하나의 말하기에 관한 부드러운 간섭'이라는 말이 절묘한 표현이다!


읽고 쓰다 보면 언젠가 듣고 말하는 기회가 열릴 수도 있을 것이다. 듣고 말하는 일은 어쩌면 너무도 일상적인데, 일상적인 만큼 무의식 중에 남의 말을 흘려듣거나 그저 내뱉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이켜 보게 된다.


김하나 작가는 본인을 소개할 때 '읽고 쓰고 듣고 말하는' 이 순서를 바꾸지 않는다고 한다. 읽고 나서 쓰고, 듣고 나서 말한다. 읽고 쓰기가 듣고 말하기보다 먼저 오는 것은 읽고 쓰기의 호흡이 더 느리기 때문이다. 천천히 받아들이고, 느리게 사유하고, 꼼꼼히 정리하고 나서 듣고 말하기에 나선다고 한다.


읽고 쓰는 일이 어서 빨리 주업이 되어야 하는데, 조바심이 날 때마다,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일을 홀로 하고 있는 것 만 같은 외로운 마음이 들 때마다 '천천히 받아들이고, 느리게 사유하고, 꼼꼼히 정리하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겠다. 꿈은 목표가 아니라 '상태'니까. 황홀하게 행복한 상태에 오래 머무를 수 있는 길을 묵묵히 가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 아주 가끔은 이미 그 상태 속에 있기도 한다. 그 소중한 순간 또한 마음에 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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