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에세이 3 - 장기하, ‘상관없는 거 아닌가?’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장기하와 얼굴들’을 작년에 마무리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잘 한 일이다. 그때였기 때문에 그 활동에 관여한 모든 사람들이 서로를 축복하며 인사 나눌 수 있었다. 올해였다면, 내년이었다면, 혹은 삼사 년 후였다면, 그런 일은 장담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 창작도 앞으로는 지금까지와 달라야 한다. 많은 것을 바꾸어야 한다. 그래야 새로워질 수 있고, 오래 즐겁게 할 수 있다. 이러한 생각들은 집에 도착해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전혀 바뀌지 않았다. 다만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나는 그 십 년을 그리워하고 있으며, 아마도 평생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특별한 십 년이었다. 나는 밴드를 했던 것이 아니다. 밴드를 ‘믿었다’. 밴드라는 것이 가진 특별한 가치를 진심으로 믿었던 것이다. 고등학교 때에는 신을 믿었다. 대학 초년생 때에는 이런저런 철학 사상을 믿었다. 그후에는 음악을 믿었다. 그중에서도 밴드, 밴드 음악을 믿었다. 아마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는 늘 뭔가를 믿고 싶었던 것 같다. 솔직히 말해 지금은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 무언가를 좋아하기도 하고 그것에 연연하기도 하지만, 종교처럼 믿지는 않는다. 밴드는 내가 가장 최근까지 믿었던 무언가다. 어쩌면 내가 오늘 자유로 위에서 느낀 것은 내 인생에서 믿음의 시절이 지나갔다는 데서 오는 서글픔이었는지도 모른다.
- 장기하 <상관없는 거 아닌가?> 중에서
요즘 부쩍 나이 듦에 관하여 생각한다. 나도 나이가 들었나? 나이가 든다는 것은 뭘까?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를 물던 중 다행인 것은 꼭 돌아가고 싶은 어느 한 시절보다는 그래도 지금이 좋다는 것, 아쉬운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 드는 것은 여전히 두렵고 막연하다는 것이다.
코로나19의 영향인지도 모르겠지만 요즘 왜 이렇게 재밌는 게 없지? 하다가 또 나이 들었나? 다시 생각이 꼬리를 물었는데 어찌 보면 나이가 든다는 것은 그렇구나, 하며 ‘심드렁’ 해지는 것들이 늘어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이 들었을 즈음 서점에서 이 책을 만났다. ‘상관없는 거 아닌가?’ 제목부터 심드렁하기 그지없다.
심드렁한 제목을 붙인 책을 쓴 작가는 십 년 동안 밴드를 해 온 사람이다. 인기의 내리막도 아니고 정상의 위치에서 ‘믿었던 밴드’를 마무리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작가가 밴드를 그만두던 당시만 해도 대중음악계에서 흔하지 않은 마무리였기에 언론에서는 ‘박수칠 때 떠난다’, ‘아름다운 마무리’ 같은 틀린 말은 아니지만 어딘가 허전해 보이는 표현과 분석뿐이어서 아쉬웠던 기억이 있다.
작가는 십 년의 시간을 ‘믿음의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밴드를 믿었기에 십 년을 할 수 있었고, 내려놓을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믿음의 시절이 지나갔기에 서글프다고 했지만, 나는 이 문장들을 읽으며 작가가 왠지 다시 음악을 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꼭 음악이 아니더라도 글을 쓰던 그림을 그리던 계속 창작을 하고, 스스로 이야기한 것처럼 꾸준히 오래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 돌아올 것만 같다. 그러길 바라는 나의 바람도 조금 더해서.
믿음은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다. 믿는다는 것은 사랑이고, 내 모든 걸 걸어 볼 열망이고, 의지이고, 하루 하루의 성실을 만들어내는 열정이기도 하다.
나 역시 직장 생활을 십 년 했고, 작가처럼 그만두지는 못했다. 직장 생활 십 년만 해야지 결심하고 이곳에서 글쓰기를 시작한 것은 사실 두려워서였다. 직장 생활 십 년만 하자면서 사실은 십일 년 차가 될 것만 같아 두려웠다. 일단 뭐라도 해야 한다는 다급한 마음에 쓴 글들이 방향 전환기가 되었다. 역시나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여전히 방황하고 정해진 것은 없지만, 여전히 희망과 좌절을 오고 가지만, 회사 생활을 버티는 과정에서 배우고 성장하며 답을 찾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작가처럼 그 시간이 ‘믿음의 시간’이었는지는 모르겠다. 회사를 믿었다거나, 조직을 믿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하는 나를 믿었다. 믿게 되었다. 그러면서 직장 생활 조금 더 해봐도 되겠는데? 하는 믿음도 생겼다. 지난 십 년이 버티는 십 년이었다면, 언젠가 정말로 직장 생활을 마무리할 때쯤 나도 ‘믿음의 시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