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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무리 Feb 21. 2021

고독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고독을 사랑하게 되기를

2021년,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는 나의 해



부디 이 짓을 계속할 체력을 나에게 허락해달라고 기도했다. 수백 킬로미터를 담대하게 날아가는 철새를 보며 빌었다.   


나는 주로 혼자 지낸다. 집에서 입을 다물고 홀로 일한다. 코로나 이전부터 그랬다. 내 안에 많은 사람을 살게 하기 위해서 꼭 사람을 많이 만나며 지내야 하는 건 아니다. 시끌벅적한 자리에서 마음이 텅 비기도 한다는 걸 안다. 고요한 일상에서 마음이 꽉 차기도 한다는 걸 안다. 20매 분량의 원고 한편을 완성하기 위해 최소한 얼마만큼 고독해야 하는지도 안다. 장편 소설을 완성하기 위한 고독의 양은 아직 모르지만 나중에는 알게 될 것이다. 지난겨울에 읽은 김선오 시인의 문장을 기억한다. “더 오래 고독 속에 머물 수 있는 체력을 가질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라고 김선오는 썼다. 그 체력으로 써나갈 글은 각자 몹시 다를 테지만 어쨌거나 우리는 비슷한 체력을 소망하고 있다.


- 일간 이슬아, '아무도 아닌, 동시에 이백 명인 어떤 사람' 중에서.

 





동생과 함께 살던 집에서 이사를 하고 완전히 독립한 지 만 3년이 지났다. 이사한 집에서, 또 이제는 익숙한 동네 곳곳의 카페에서 쓴 글들을 모아 책 한 권을 출간하고 4개월이 지났다. 혼자 살기 시작한 것과 글을 쓴 일 사이에 특별한 연결고리는 없지만 둘 다 고독한 일임에는 분명하다.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어디에도 없던 자유와 행복을 느꼈다. 고독했지만 그 시간이 필요했고,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지만 또 혼자만의 시간이 강렬히 필요했다. 이 아이러니함이 주는 묘한 긴장과 균형감이 좋았다. 그러다 최근에 조금씩 나는 이 고독을 견디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던 찰나에 구독 중인 '일간 이슬아' 속 이 글을 만났다.


고독을 견디고 있는 거라면 스스로가 조금 가엾어지려던 찰나였다. 그 가엾은 찰나에 집에서 입을 다물고 홀로 일한다는 작가의 말에, 20매 분량의 원고 한편을 완성하기 위해 최소한 얼마만큼 고독해야 하는지도 안다는 작가의 말에 나는 더 고독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고독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고독을 사랑하게 되기를. 더 나아가 오래 고독 속에 머물 수 있는 체력만을 소망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랐다.


체력이라는 단어를 보며 얼마 전 이유미 작가님이 인스타그램에서 추천해 주셨던 책 '지금, 인생의 체력을 길러야 할 때'를 떠올렸다. 서점에 가서 단숨에 읽었다. 이유미 작가님이 밑줄 그었던 '자기 자신에게 호기심을 가지라'는 문장은 더 건강하고 행복하며 자기 다운 삶을 사는 방법이었다.


방법은 어렵지 않았다. 많이 걷고, 잘 자고, 잘 먹는 일들. 그러나 실천은 어렵다. 매일 이 사소한 것도 해내지 못하는 나를 비난하는 자신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작가는 사소한 실험을 계속하라고 말한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나를 위한 실험을 계속하라고 말한다.

 





2021년의 2월이 한 주 남았다. 흘러가는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고 자유로운 고독 속에서, 새로운 실험을 하며 지내고 싶다. 고독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며, 외로움과 다정하게 마주하며, 흐트러진 자세를 바르게 하는 체력을 기르며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는 나의 해를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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