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기록하기 - 재택근무 적응기 2
재택근무 2주차 두 번째 날, 고작 두 번째인데 뭔가 첫날보다 훨씬 적응이 된 느낌이다. 일주일 사이 재택근무 시스템도 많이 안정화되어 첫날 접속까지 45분 걸리던 시간이 5분으로 단축됐다. 5분 만에 출근하여 내 방 책상에서 부장님께 메신저로 '저 출근했어요' 하고 나니 재택근무라는 게 실감이 났다. 집에 있으니 일하면서도 일하는 게 맞나 우왕좌왕하던 첫날과 달리, 오늘은 급한 보고서 작성 업무 때문에 정신없이 오전 시간이 지나갔다.
사무실에서도 다들 점심 먹으러 나갔을 시간, 오늘은 어영부영 집에서 혼밥으로 대충 때우지 않으리, 결심하고 동네 맛집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때마침 제주도에서 막 올라와 집에 가는 길 동네에 들르기로 한 친한 언니와 점심 약속을 잡았다. 평일 점심에 이런 약속이라니 뭔가 재택근무자만이 누릴 수 있는 꿀 같은 시간이다. 디지털 노마드나 프리랜서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집 밖을 나가니 날씨가 너무 좋았다. 한산할 줄만 알았는데 우리 동네에 이렇게 회사가 많았나? 평일 점심시간에 식사를 하러 나온 직장인들이 거리에 가득했다. 매일 출퇴근하던 길인데 평일 점심시간이라니 생경한 풍경이다. 동네에 베트남 음식 맛집으로 유명한 식당에서 운 좋게 마지막 테이블 자리를 잡았다. 제주도에서부터 캐리어를 끌고 도착한 언니와 밥을 먹고 핸드 드립으로 유명한 동네 카페의 테라스 자리에 앉았다.
사원증을 목에 걸고 삼삼오오 모여 커피를 마시고 있는 직장인들 사이에서 동네 마실 나온 사람처럼 앉아서 직장 동료가 아닌 언니와 수다를 떨고 있으니 위너가 된 기분이었다. 그러는 사이 점심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서둘러 사무실로 들어가는 직장인들을 보며 자리에서 일어나야지, 하는데 탄성처럼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아, 집에 가기 싫다!"
이 무슨 말? 회사에서 점심시간에 커피 한잔 마시고 사무실에 들어갈 때쯤 매일 하던 소리가 "아, 집에 가고 싶다"였다. 날씨도 좋은데 이대로 집에 갔으면 좋겠네, 하며 터덜 터덜 사무실로 걸어가던 내 입에서 튀어나온 집에 가기 싫다는 소리.
왜 집에 가기가 싫지? 아, 나 지금 재택근무 중이지! 집이 집이 아니구나, 집이 회사구나! 일하러 가는 거구나!
머릿속에서 돌아가야 할 집을 떠올리는 순간, 회사 업무망과 연결된 노트북이 놓여 있는 내 방 책상이 떠오르는 순간 본능적으로(?) 집에 가기 싫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잠시나마 달콤했던 재택근무의 환상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제대로 현타가 왔다.
일은 일이다.
사무실에서 하든 집에서 하든. 요즘은 또 재택근무 확산으로 호텔에서 일하기 같은 게 유행이고, 심지어 도심의 호텔에서는 오전/오후 시간 재택근무 패키지 같은 상품을 판매하기도 한다. 그런 패키지 상품 후기를 보면 호텔은 역시 여행이나 놀러 와야 한다며, 체크인하고 노트북을 켜는 순간 현타가 온다는 후기가 많다. 오늘 점심시간 내가 느낀 현타와 유사한 결이다.
워라밸이 잘 지켜지는 회사, 유연근무나 재택근무가 활성화된 회사가 좋은 회사는 맞다. 그런데 그게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하는 일을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로 만드는 것이다. 일이 좋으면 알아서 야근을 한다는 어르신(?)들의 말씀이 꼰대 소리인 줄만 알았는데, 본질은 다르지 않다. 좋은 회사의 본질은 '몰입'과 '자율성'이고, 결국 이 두 가지를 높이기 위해 기업은 여러 제도를 만들고 많은 시행착오를 겪는다.
재택근무 2주차, 재택근무 더 했다간 영영 집에 들어가기 싫어질 거 같은 현타를 맞긴 했지만, '일하는 마음'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