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는 직장인의 위엄과 위험
오늘처럼 폭설이 내리면 아직도 입사 교육 첫 날이 떠오른다. 내 기억에 그날 서울은 100년만의 폭설을 기록한 날이었는데, 입사 교육의 첫 프로그램은 컴퍼니 투어였다. 말 그대로 서울 전역과 경기도까지 회사 곳곳의 사업장을 돌아다니는 것.
기상 관측 이래 최대급 폭설 + 새벽에 발이 푹 빠지게 쌓인 눈 + 펑펑 내리는 눈 ing 상태에, 뉴스에서 서울 교통 마비 속보가 나오는 중이었기에 당연히 투어 취소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는 출근을 했고 투어는 예정대로 진행됐다. 기적에 가까운 일정으로 진행되는 상황 속에서 그날 나는 깨달았다.
와 회사는 이런 곳이구나, 학교였음 자체 휴강인데.
100년 만의 폭설 속에서도 할 일을 해야 하는 곳, 5분에 한번씩 이슈 사항을 체크하며 일정을 조정하며 끝끝내는 컴퍼니 투어를 끝마친 담당 차장님 과장님을 바라보며 나는 처음으로 엄청나게 막히는 투어 버스 안에서 밥벌이의 위대함과 서글픔을 느꼈던 것 같다.
물론 직장 생활 10년을 넘고 그때 그 과장님 연차가 되어 돌이켜보니, 그 많은 신입사원들을 불러 모아 일정을 하나 하나 어레인지하며 투어 프로그램을 짜는게 보통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였어도
‘다시는 못해, 두번은 없어! 무조건 오늘 끝내야 돼!’
하는 마음이 기적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천재지변 같은 날씨에 누굴 탓할 수도 없는 깊은 빡침이 만든 기적.
아직 회사에 계시려나. 이름도 가물가물 10년도 더 된 그 날의 그 과장님이 떠오르는 2021년 폭설 후 퇴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