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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구 Jul 06. 2021

기본소득 논쟁의 허상과 진실

기본소득에 대한 반론에서 공정소득, 안심소득까지

 요즘 기본소득이 대선 후보들간 쟁점의 하나가 되고 있다. 하지만 기본소득에 관한 논쟁은 공정, 불공정 내지 부자를 위한 것이냐 아니냐는 이념적 논쟁으로 흐르며 정치 쟁점화 되기 보다는 매우 기술적인 행정비용의 문제라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물론 현재 한국 경제의 수준에서 무상으로 제공하는 복지 수준을 어느 정도로 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관하여는 각자의 이념이나 철학에 따라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수준 내에서 얼마를 기본소득으로 할지 혹은 기본복지, 기회복지, 안심소득, 공정소득으로(대부분 기본 소득을 반대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조어들이기는 하지만) 할 것인지 혹은 이미 알려진 부의 소득세(negative inconme tax)로 할지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하는 것이 받는 사람의 요구에 가장 적합하고 공급하는데 비용이 덜 드느냐 하는 기술적 문제인 것이다.     

 20세기 말까지는 기본소득 논쟁보다 선별 혹은 보편복지(selective or universal welfare)의 논쟁이 주였고 기본소득과 보편복지는 거의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적어도 보편 복지아래서 현금(기본소득)으로 주느냐 혹은 직접 서비스(기본복지)로 공급하느냐의 문제는 크지 않았다. 왜냐하면 국가가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이 최저 생활 수준의 의무 교육, 질병 치료, 기본적 주거 정도로 소비자 선택의 여지가 크지 않은 분야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21세기 기본소득 논쟁이 등장한 것은, 기계와 컴퓨터의 결합, 인공지능 로봇의 도입에 따른 생산 방법의 급격한 변화 - 소위 4차 산업혁명으로 대규모 실업 발생이 예상되고 사회적 안전망 확충의 필요성이 높아지기는 했지만, 생산능력 또한 확대되어 누구에게나 종래의 복지를 넘어 여유롭고 즐거운 삶까지도 보장할 수 있을 만큼 되면서 이다.

 즉, 소비자에게 선택을 맡기는 것이 좋은 분야까지 국가가 부담할 수 있게 되면서 종래 기본복지를 넘어 기본소득을 이야기하게 된 것이다. 이재명 지사의 말처럼 대학에서 청년들에게 공부하든 해외여행을 체험하든 나아가 게임을 즐기는 것까지 지원할 수도 있다면 정부가 정한 복지, 예컨대 대학 장학금이 아니라 기본소득으로 지급하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다만 이 지사의 출마선언이나 이후 행보를 보면 그렇게까지 이해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세금을 내는 국민들이 해외여행을 가거나 게임을 즐기는 것보다는 대학가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면 우선 대학 장학금을 지급하고 남는 재원에 한해 기본 소득을 지급하여 여행을 가든 게임을 하든 자유에 맡기는 것이 좋을 것이다. 

 즉 기본소득 관련 논쟁의 쟁점 가운데 하나는 공정, 불공정 혹은 부자와 가난한 사람간의 논쟁이 아니라, 누가(정부 vs 수급자 개인) 선택하는 것이 더 잘할 수 있느냐를 기준으로 소비자(수급자)가 더 잘 선택할 수 있는 분야는 기본소득으로 지급하고 정부가 어떤 분야에 쓰도록 정해줄 필요가 있을 때는 해당 분야의 복지 급여로 하면 해결 된다.  그러니 기본소득 자체를 가지고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할 것이 아니라 어떤 부분을 기본소득으로 지급할지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 옳다. 아직 기본적 복지도 해결되지 않은 상태라면 기본소득을 이야기하기는 좀 이른 이야기일 수도 있다. 다만 교육, 의료, 주거와 같은 기본 복지에서도 소비자에게 선택을 맡기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면 기본소득으로 주고 본인 선택에 따라 교육, 의료, 주거 서비스 가운데 비중을 선택하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이 복지 내용의 선택에서 누가 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하는 부분이었다면 다음은 대상을 선별해서 지급하는 것과 모두에게 지급하는 것 가운데 무엇이 바람직한가 하는 문제인데 이 역시도 공정, 불공정 혹은 부자와 가난한 사람간의 논쟁으로 볼 것은 아니다.

 물론 부자에게도 지급하니 불공정하다는 주장도 있겠지만 기본소득도 소득으로 보고 과세하면 결국 부자들은 50% 가까이 세금으로 내야 하고 지급대상 확대로 늘어난 재정소요 만큼 부자들의 세부담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또한 면세점 이하인 사람들은 기본소득을 받아도 세금 거의 안 낼테니 그렇게 크게 우려할 일은 아니다. 기본소득의 대안으로 말하는 부의 소득세는 버전이 다를 뿐 기본소득과 결과적으로는 동일하다.(작은 차이라면 기본소득은 연중에 지급할 것이고, 부의 소득세는 소득 확정 다음 해인 6월에 지급되는 점 그리고 누진세 적용시 기본소득을 받는 경우와 부의 소득세를 적용하는 경우 실제 세후 소득이 약간 달라지겠지만 공정-불공정을 다툴 문제가 아니다)

 그러므로 이 논쟁도 가난한 사람을 골라 가난한 정도에 따라 지급하는 행정 비용과 그냥 모두에게 나눠주고 세금을 좀 더 걷는 비용 가운데 어느 것이 효율적이고 왜곡이 적은지를 비교하면 된다. 이러한 문제는 선별 vs 보편 복지 논쟁에서도 이미 나타난 것으로 새로울 것도 없다. 수년 전의 무상급식 논쟁도 이런 기술적인 문제를 어처구니없이 이념의 장으로 끌어와 오세훈 서울시장이 시장직을 걸고 싸웠던 것이다.     

 기본소득 지급이나 보편복지를 하려면 세원을 늘리거나 세율을 올려야 하니 징세비용도 증가하고 부유계층의 투자나 근로의욕을 감소시킬 수도 있지만, 보편복지 확대 또는 기본소득의 지급을 통해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면서 빈곤 취약계층을 위한 억지 일자리 창출이나 해고제한, 최저임금제와 같은 규제를 없애 그로 인한 경제 손실을 막는다면 기본소득이나 보편복지 확대가 훨씬 경제적이다.     

 선별복지 혹은 공정소득, 안심소득이란 개념으로 대상을 선별하여 지급하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빈곤을 가장하는 행태가 우려된다. 특히 복지, 소득 지급이 일정 기준(예컨대 소득 상위 몇 %와 같은 기준)으로 큰 차이가 날 경우 지급 대상으로 되기 위해 빈곤을 향한 경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     

 노동의욕과 관련해서 오해되는 것은 기본소득을 주면 놀아도 먹고 살 수 있어 일할 의욕이 저해될 것이라고 짐작하는데, 오히려 가난하면 복지 급여를 하는 선별복지나 대상을 선별하여 소득을 주는 경우가 훨씬 더 근로의욕을 감퇴시킬 수 있다. 기본소득의 경우 어쨌든 일하면 소득이 더 늘어나지만, 가난해야 혜택을 주는 선별복지 혹은 선별 소득 지급의 경우, 일해서 소득이 늘면 복지 혜택이 감소하게 되므로 일할 의욕이 줄고 빈곤을 향한 경쟁이라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선별 소득지급에서 대상을 따로 선별하지 않고 소득에 따라 지급액을 달리하는 방식을 취하면 그런 현상을 막을 수 있지만 그런 경우 기본소득과 동일한 결과를 갖게된다)     

 필자가 기본소득 찬성론자처럼 되었는데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기본적 복지들 – 교육, 의료, 주거와 같은 것들은 꼭 자기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이웃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만일 어떤 사람이 기본소득을 받고 빈둥거리며 노숙자로 건강에도 신경을 안쓰고 기본적 교양이나 지식, 기술을 배우지도 않는다면 사회적으로 큰 비용을 발생시킬 수 있으므로 일정한 기본적 복지는 분야를 정해 반드시 해당 분야에서 지출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즉 정부가 선택하는 것이 수급자가 직접 선택하는 것보다 나은 경우에는 기본소득이 아니라 분야가 정해진 기본복지의 형태가 바람직하다. (실은 이 지사의 기본소득도 지역화폐로 지급하겠다는 것이어서 완전한 의미의 기본소득은 아니다) 

다만 분야를 정해 지급하는 경우에도 LH나 정부가 공급하는 공공주택에 살도록 줄 세우지 말고, 바우처를 지급해 소비자가 살고 싶은 곳을 선택할 수 있게 하되, 선택능력이 없는 아동, 치매 노인 같은 경우에는 서비스가 제대로 공급되고 있는지 감시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필자가 이 지사의 기본소득에 대한 이해를 의심하는 것은 소비자와 시장의 선택을 활용하려는 기본소득을 주장하면서 한편으로 공공주택 공급과 같이 정부 개입을 확대하자는 주장을 동시에 한다는 점 때문이다.     

 그리고 기본소득은 모든 국민에게 일정액을 주는 것인데, 병약자 장애인, 다자녀 가정 혹은 특별히 영재교육을 받아야 할 사람도 있을 것이므로 추가 복지 혜택을 주어야 할 사람에겐 필요한 만큼 주는 것이 바람직할 것인데 공짜란 이유로 필요를 과장할 수 없는 분야에는 기본소득이 아닌 필요에 따른 급여를 지급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예컨대 장애인 혜택을 받기 위해 몸을 일부러 망가뜨릴 사람은 거의 없고 교육비를 받기 위해 학교를 여러 번 다닐 사람도 없을 것이며, 혹시 특별한 교육을 받기 위해 재능을 키운다거나 더 넓은 집을 제공받기 위해 다자녀를 선택한다면 국가적으로 기쁜 일일 것이다.     

즉 복지 대상 선별이 어렵지 않고 복지 대상이 되려고 속일 수 없거나 복지 혜택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오히려 국가에 도움이 되는 분야에서는 기본소득이 아니라 필요에 따른 복지 혜택을 주는 것이 좋다. 

    

이렇게 보면 논쟁은 간단해진다. 


우선 현물(복지 서비스)이냐 현금이냐에 관해서는 소비자 선택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한 경우는 현금으로 지급하고, 정부가 일정 분야에 지출하도록 권장할 필요가 있는 것들은 현물을 대신하는 바우처나 쿠폰 형태로 지급해 소비자가 복지 서비스 공급자를 선택하게 하되, 정부나 공공이 공급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면 정부도 경쟁에 참여하면 된다.     

다음으로 보편적으로 지급할 것인가 대상을 선별하여 지급할 것인가와 관련해서는 선별 비용이 보편복지에 드는 세수 확대 비용보다 큰 경우는 보편복지로, 반대인 경우에는 선별복지를 공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평균소득과 차액의 일정부분(예컨대 30%, 한국의 현재 국민소득을 기준으로 최저 연소득 약 1200만원을 보장)을 기본소득으로 하자는 생각은 전국민 기본소득으로 부자들에게까지 주는 것보다 합리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평균 소득이하 계층을 선별해 일정 비율로 지급하는 경우와 모두에게 일정금액을 지급하는 경우, 그리고 해당 금액만큼 세수를 늘리는 경우의 비용이 문제이고, 공정-불공정 혹은 부자와 가난한 계층 사이의 소득 재분배와 관련한 문제는 세수를 어디(소득세, 재산세 혹은 부가세)에서 충당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매우 기술적인 문제가 된다.      


기본소득 논쟁을 보면 다수가 이재명 지사의 덫에 걸려 불필요한 다툼을 한다는 생각이 든다. 포퓰리즘으로 공격하거나 거창한 공정-불공정 논쟁을 벌이기보다 현행 복지체제, 노동관련 지원이나 규제를 유지하며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것은 행정비용 낭비라는 점을 지적하고, 기본소득 주장에 앞서 현행 복지 서비스 공급에서 소비자 선택을 확대하는 일부터 하는 것이 일의 순서라는 점, 공공주택이니 정부가 직접 운영하는 복지 서비스들도 늘려야 한다면서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점을 지적하는 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기술적 문제에 관한 토론과 검증을 통해 유권자들도 기본소득을 좀더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각자의 입장의 차이나 찬반의 견해도 분명해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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