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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구 Jul 20. 2021

기만적 소득주도 성장이 키운것

 소득주도성장, 소위 소주성은 공정경제, 혁신성장과 함께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 대표 브랜드였다. 그런데 브랜드 의미 자체가 기만적이다. 왜냐하면 경제학적으로 소득이 늘어나는 것이 성장인데 소득주도 성장이라니 동어반복 아닌가? 이렇게 비판하면 말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 꼬투리를 잡는다고 할지 모르지만 정권을 대표하는 경제정책의 브랜드 자체에 국민을 기만하려는 의도가 있음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혹자는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ILO(국제노동기구)의 임금주도 성장 이론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하지만 소득에는 임금은 물론, 임대료, 이자나 이윤도 있고, 임금조차도 저소득층의 임금만이 아니라 임금인지 이윤이지 조차도 애매한 경영자보수도 포함될 수 있다.

 정확하게는 부자들의 소득을 최저임금제, 조세, 복지 등을 통해 저소득층으로 이전해(따라서 전체 소득 자체를 키우는 것은 아니므로 "소득"주도라는 말은 맞지 않다) 국민경제 전체의 소비증가로 경제성장을 주도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저소득층의 소비성향이 부자들보다 높고 국내 생산 유발 효과가 높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즉, 저소득층은 소득 증가의 대부분을 소비할 것이고 주로 국내 공급 재화나 서비스를 소비하므로 국민경제 성장에 기여하는 효과가 외국 여행이나 외제 사치품을 많이 쓰는 부유한 계층보다 클 것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엄밀하게는 “(내수) 소비주도 성장”이 정확한 용어겠지만 소비와 같은 속물적 단어에 거부감을 갖는 정의로운(?) 진보 좌파들이 만든 억지 용어가 소득주도 성장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여기까지는 소득주도 성장이란 용어가 좀 기만적이라는 점 외에는 크게 무리한 주장은 아닌데 소득주도 성장을 위해 내건 각종 정책 – 최저임금제, 공공일자리 창출, 공공주도 복지 확대가 소득주도 성장은커녕 정부주도 경제 활력 죽이기를 가져온 것이다.     

 예컨대 최저임금제는 사업자에게 인건비 부담을 증가시켜 저소득층 일자리를 줄이고, 최저임금제로 부담이 늘어나는 계층은 부자보다 영세 자영업자로 저소득층일 확률이 높아 소득주도성장이 의도한 저소득층 소비증가는 대부분 상쇄되고 만다. 공공일자리 창출도 비생산적 일자리를 양산해 생산성을 저해하고 적자예산을 통해 소비지출을 늘릴 수 있는지는 몰라도 국민경제의 부담을 증가시킨다. 그냥 돈을 퍼주는 포퓰리즘만도 못한 것이다.

 정부 연구기관인 산업연구원은 2018년 외국의 저명 경제학자(죠지프 스티클리츠)의 기고문까지 동원하여 제이노믹스에 찬사를 보냈지만 그 분이 이 정부의 정책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나아가 한국 경제 발전 과정을 필자만큼은 이해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생계비 경감을 위해 시행하는 각종 복지 확대는 제도가 복잡해 실제 혜택을 받는 대상조차도 혜택의 내용을 파악하기도 어렵고(1) 선별을 위한 행정비용이 복지 혜택보다 큰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이재명 지사의 기본소득과 같은 보편 복지가 차라리 나은 이유이기도 하지만  이지사가 보편복지나 기본소득이 갖는 장점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왜냐하면 기본소득과 같이 선별하지 않고 지원하는 제도를 주장하면서 기존의 선별적이고 정부에 힘을 주는 완장찬 복지 지원 체계도 더 강화하겠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는 때로는 야권의 복지 구상도 부자에게 세금을 써서는 안된다며 현 정권의 좌파들만큼이나 정부에게 완장을 채워주는데 앞장서는 역설적인 현상이 발생하는 점은 안타깝다.

 더욱이 최저임금제, 근로시간 규제 등으로 인한 영세 사업자의 부담을 덜어준다면서 일정 요건에 해당할 경우 고용보험료 환급, 저리 금융지원 등을 선별적으로 하는데 차라리 규제도 지원도 하지 않는 것이 훨씬 효율적일 것이다. 왜냐하면 규제를 하는데도 비용이 들고 다시 그러한 규제로 인해 의도치 않게 피해를 보는 저소득층을 지원하는데도 만만치 않은 비용의 낭비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가난한 사람 돕겠다며 나서느라 새는 돈만 막아도 사회 전체가 훨씬 행복해 질 수 있는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그 동안 소주성(소득주도성장)을 위한 각종 정책이 가져 온 것은 경제의 성장이 아니라 정부 주도의 규제를 위한 완장들만 키우고 가난한 사람을 위한 복지조차 정치적 셈법의 늪에 빠뜨리고 있는 셈이다.


(1) 필자도 작은 사업체를 하나 갖고 있지만 복잡한 보험료 환급이나 지원을 받기 위해 서류를 갖추고 신청할 엄두를 못내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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