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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구 Aug 22. 2021

소비자 선택권 빼앗아 대학줄세우는 기본역량진단의 코미디

기본역량 평가로 대학을 줄세우는 것은 차라리 범죄행위

 우리나라의 전문대 이상 재학생 수는 약 300만명으로 인구의 약 6%, 대학진학률은 약 70%로 세계 최고 수준이며, 고등교육에 지출되는 비용은 GDP의 2% 수준으로 역시 선진국 중에서도 높은 수준이다. 이는 대학의 교육의 질이 높아서라기보다 높은 교육열 덕에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이 많기 때문이다.

 이런 각 가정의 교육열을 반영하여 1990년대 후반 대학설립을 자유화한 결과 대학정원이 약 50만에 이르게 되었는데, 이제 출산 아동의 감소로 인해 2020년 부터는 대학에 입학 가능한 학생의 수가 정원을 밑돌게 되었고 이러한 현상은 2024년에 최고에 달해 대학 정원의 25%가 남게 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정부는 이러한 문제에 대비, 2015년부터 대학 구조조정에 착수했고 2018년부터 3년 단위로 대학 기본역량을 진단 재정지원 대상을 선정하고 구조조정을 추진하게 되었다.

 교육부는 지난 8.17 일반대학 136개교와 전문대 97개교 등 233개교(전체 대상 319개 학교 가운데 73%)를 2022~24년 재정지원 대학으로 선정하고 나머지는 지원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중간 결과를 발표했다.

 그런데 의문은 보통 상품들은 소비자들이 선택하는데. 왜 학교, 대학은 정부가 선택하고 마치 대단한 일이나 하는 것처럼 자랑스럽게 장관이 나서 발표하는 것일까? 대학 선택은 너무 어려운 일이라 정부가 대신해 주겠다는 것인가?

 우리처럼 대학 등록금, 정원까지 통제하는 경우 대학들이 교육을 잘해도 보상받기 어려우니 국가에 의한 평가가 필요한지 모르겠지만, 이번 역량 진단은 그런 보조적인 역할이 아니라 정부가 소비자를 대신 대학을 줄세우고 선택하겠다는 것이다.    

 백보양보해 대학의 교육능력을 진단하는 기준이 타당하고 객관적이며 공정한 평가가 이루어져 교육을 잘 할 수 있는 대학이 선정됐다 하더라도 왜 70%까지는 지원을 받고 30%는 한 푼도 지원받을 수 없는지도 의문이다. 더구나 탈락한 대학은 일반재정지원뿐 아니라 산학협력사업에도 참여하지 못하며 국가장학금, 학자금 대출도 제한받는다니 재학생 교육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기본역량진단으로 선정된 대학에 대한 지원 예산은 약 1조원으로 대학별로 연간 50억원 정도로 대학 재정의 5% 수준이지만 재정이 어려운 대학 입장에서는 대학 존속 여부를 정부가 결정하는 셈이다.

 왜 부자에게 돈을 주느냐고 비판하는 대권 후보들 주장에 의하면 좋은 학교들을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옳고, 재정 부족으로 기본역량 키우기 힘든 대학을 돕는 것이 문재인 정부 이념에도 가깝겠지만 이 정부 특징은 자기 편의대로 원칙을 적용하는 것이니 뭐 그리 이상할 것도 없다.

 그런데도 대부분 지적들은 그저 기준의 타당성, 평가의 공정성을 문제 삼고 있는 정도이고 교육부라는 기관이 공공연히 소비자를 대신해 대학을 줄세우고 제멋대로 퇴출하겠다는 코미디 행정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은 찾기 어렵다.

 물론 대학 기본역량진단은 과거 정부에서 대학구조개혁 평가로 출발한 것을 문재인 정부가 간판을 바꾼데 불과하지만 교사가 꿈이었던 소녀여서 문대통령이 임명했다는 유은혜 장관의 철학은 어디쯤 있는지 궁금하다.

 기본역량이 부족한데도 대학이 엉터리 졸업장, 학위를 팔아 운영할 수도 있어 소비자 선택에 맡길 수 없다면 학교 폐쇄가 답이겠고... 하긴 대선 후보 관련된 분들이 학위 매수(?)하는 상황이니 그걸 나무랄 수도 없겠지만, 그런 대학을 공개하는 것만으로도 졸업장, 학위 장사는 어렵게 될 것이다.

 지원금을 대학 아닌 학생에게 생애 1회 주는 것으로 한다면 정부가 걱정할 것 없이 엉터리 대학을 학생학부모들이 더 잘 골라 퇴출시킬 것이다. 등록금을 내야하는 학생이나 학부모들은 등록금의 1/10도 안되는 지원금을 받기 위해 엉터리 대학에 가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학 구조조정이 늦어진 것도 잘 나가는 대학의 정원을 통제해 뒤쳐진 대학의 존속을 도왔기 때문이니 교육부가 역량진단 어쩌고 하면서 요란 떠는 것은 병주고 엉터리 약을 파는 격이다. 

 정부는 대학 폐교 시 재학생 편입절차나 학교법인 잔여 재산 처리 방안(합병, 타용도 활용 - 산업시설이나 리조트로까지 ...) 등 효율적 퇴출 절차나 걱정하면 되고, 교육부가 할 일은 대학들이 자유롭게 경쟁할수 있도록 정원 조정이니 뭐니 하며 완장차고 대학 귀찮게 하는 규제를 폐지하고, 대학에 대한 직접 지원은 전 대학이 공유할 수 있는 전자도서관 등의 교육 자료나 플랫폼 등에 한정하고, 지원할 예산이 있다면 학생들을 지원하고 대학은 학생이 선택하게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교육부의 관리들이나 장관이 선택하는 것보다 몇배 더 신중하게 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소비자들이 제대로 선택할 수 있도록 각종 정보들 – 취업률이나 교수 급여학생 1인당 지원액 등 기본역량진단으로 얻어진 자료를 공개하면(현재 정부는 평가 기초자료들도 비밀로 하고 있다) 이를 이용하는 평가 업체들도 생길 것이고 소비자들(학생과 학부모들)은 그러한 자료들을 기초로 교육부보다 몇배 더 현명하게 대학을 선택할 것이다.      

 입시에서 대학 줄 세우기가 나쁘고 일류, 이류 구분이 문제라며 근엄하게 꾸짖던 정부가 권력과 세금을 이용해 대학 줄세우고 소비자 선택권을 빼앗은 것은 차라리 범죄행위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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