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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구 Aug 23. 2021

잊혀진 노태우 정권의 功過(공과)

 1988년 집권한 노태우 정권은 출범 초기의 경제적 상황은 두 자릿수 경제성장과 무역수지 흑자의 지속 등 매우 좋은 편으로 대대적 개혁의 요구도 없었고 여소야대의 환경에서 혁신적 정책을 추진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3당 합당으로 여당이 다수당이 된 후에도 각 정파와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으며 5공 정권에서 추진하던 경제의 자율화와 개방화를 적절한 속도로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경제는 집권 5년간 세계 경제 성장률보다 5% 포인트 이상 높은 평균 8.5%의 높은 성장을 지속했다. 물론 이러한 높은 경제성장은 노태우 정권의 경제정책의 결과라기보다는 1950년대 중반 이후 베이비붐 세대가 경제활동에 대거 참여하고 전두환 정권이 행한 경제운용 시스템 개혁의 성과이기도 한다. (전두환 대통령에 관하여는 https://brunch.co.kr/@consumer/30 )

 그리고 80년대 이후 진행된 경제 개방화에 따라 외국인투자에 대한 제한도 대폭 완화되었고 수입 자유화율은 1981년 74.7%에서 89년 94.7%로 높아지고, 관세율은 24.9%에서 12.7%로 낮아져, 금융시장에 대한 개방을 제외하곤 선진국 수준에 근접했다. 획기적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할 수도 있지만 한국은 홍콩, 대만, 싱가포르와 함께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불리며 신흥개발도상국(NICS)으로 주목받았다.

 어쩌면 대다수 사람들이 모르고 지나치는 것은 아직도 우리 경제에 명암을 드리우며 영향을 미치고 있는 토지공개념 3법이나 재벌에 대한 법적 규제장치가 이 시기에 도입되었고, 과거 억눌려 있던 노동운동이 거세지며 최저임금제가 실시되어 최저임금 대폭 상향을 공약한 문재인 정부보다도 상승률이 높았으며 실질 임금상승률도 연 평균 18.7%로 물가상승률 7%보다 훨씬 높아 노동소득 분배율도 개선되었다. 제대로 평가받지는 못하고 있지만 진보 좌파의 관점에서 보면 대단한 업적을 이룬 것이다. 

 외교 부분에서는 1988년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른 뒤, 7.7 선언을 통해 새로운 외교정책비전을 제시하고 동유럽국가 - 헝가리(89.2), 유고, 폴란드(89.11), 체코, 불가리아, 루마니아(90.3) 및 소련(현 러시아를 포함한 15개국, 90.10)과 수교하였으며, 중국을 위시하여 몽골, 베트남 등과 외교 관계를 수립하는 등 소위 북방정책을 추진했다. 군인 출신 대통령이 주적인 북한과 관계를 개선하고 1991년 남북한의 동시 유엔(국제연합) 가입을 실행하면서 대 공산권 외교를 펼친 것은 대단한 일이다.

 

아쉬운 것은 중국과의 외교 수립과정에서 대만을 일방적으로 외면한 것인데 중국이 북한과 외교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중국의 외교원칙에 불구하고 다른 방법은 없었는지 살필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다만, 이러한 동유럽, 동북아 외교정책이 한국 경제의 개방화, 국제화에 크게 기여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또한 노태우 정부의 선거공약이기도 했던 주택 200만호 공급은 분당, 일산 등 5개 신도시 건설을 통해 추진되었고 당초 계획보다도 조기에 초과 달성되면서 경제 호황에 의한 집값 폭등을 어느정도 막을 수 있었다. 이와 함께 1990년 10월 대통령 특별선언으로 폭력조직 활동을 대대적으로 소탕해 21세기 한국의 치안 안정을 이루는 데 기반을 다진 “범죄와의 전쟁”도 평가받을 만한 일이다. 투기와 전쟁하겠다며 국민만 괴롭힌 문재인 정권과는 큰 대조를 이룬다.


 다만 그러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다음번 정권에서 밝혀진 비자금 사건은 노태우 정권에 대한 평가를 매우 인색하게 만들었다. 집권 기간 중 4천억 원이 넘는 비자금을 모았는데 아마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비리에 해당할 것이다.

 노태우 대통령은 평범한 대통령이라고 보기에는 북방외교나 남북관계 개선 등과 같이 시대를 앞선 안목을 보여주기도 했고, 주택 200만 호 공급과 같이 쉽게 엄두 내기 힘든 일을 밀어붙이기도 했으며, 조직폭력을 상대로 대대적인 범죄와의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나아가 비록 완성은 차기 정부에게 넘겨졌지만 고속철도, 인천국제공항 건설 등은 모두 이시기에 출발했고, 한 때 경제의 화두가 된 "경제민주화"의 기초가 되는 법제도들(최저임금제, 토지공개념, 재벌규제 등)도 이 시기에 도입되었고, 전 국민 건강보험이 실시된 것도 노태우 정부에서다. 하지만 이렇듯 노태우(6공) 정부의 브랜드로 내세울수도 있었던 업적들이 국민들의 마음 속에 남아 있지 않다.

 

흔히 말하는 노태우 대통령의 별명인 ‘물 대통령’은 소신 없는, 무능한 대통령으로 들릴 수도 있고, 실제로도 외교 분야 외에 개혁을 목표로 내걸고 추진한 것이 별로 없고 사회적 반발을 무릅쓰며 어떤 일들을 추진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숫자로 나타난 경제적 성과나 실제 이루어낸 일들은 개혁과 성장을 외친 지도자들에게 뒤진다고 볼 수 없다. 어쨌든 박정희 정권(https://brunch.co.kr/@consumer/29) 이후의 고도성장 경제는 노태우 정부까지 계속되었고, 통상외교 분야의 개방정책은 문민 정부의 세계화정책과 OECD가입으로 까지 이어졌다. 

 다만 엄청난 규모의 비자금을 챙긴 것은 우리 경제의 운용을 한 단계 상향시키지 못한 채 과거를 답습하면서 발생한 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면에서 투명한 사회에 대한 시대와 소비자들의 요구를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이 노태우 정부의 공을 가리게 된 원인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다. 

 노 전 대통령은 1997년 대법원에서 뇌물로 불법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 등으로 약 2,629억원의 추징금을 선고받았고, 당시 계좌에 남아 있던 것도 2천억원이 넘기는 하지만 미납 추징금도 판결 16년 뒤인 2013년 모두 납부했다. 그나마 법을 지키려 노력한 것으로 평가해야 할까? 


참고: 외환위기와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의 경제정책에 대하여는 https://brunch.co.kr/@consumer/57 , 보수 정권의 이명박, 박근혜에 대하여는 https://brunch.co.kr/@consumer/63 노무현 대통령에 대하여는 https://brunch.co.kr/@consumer/60 으로 정리 구독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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