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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구 Oct 14. 2021

90년대말 외환위기와 두 대통령
김영삼,김대중(1)

외환위기의 초래 요인과 극복 과정에 대한 또 다른 평가 -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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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 김영삼 대통령은 외환위기를 초래한 대통령으로 김대중 대통령은 외환위기를 극복한 대통령으로 기억된다. 그렇기에 경제에 관해서는 김대중 대통령은 전문적 지식과 경륜을 가진 분으로 김영삼 대통령은 무지하고 무능했던 분으로 평가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분명 김영삼 대통령이 외환위기를 초래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지만 김대중 대통령 역시 외환위기를 극복했다기 보다는 그 피해를 확대한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닌지 검증할 필요가 있다.     

 사실 김영삼 대통령 임기 초반의 경제성적은 나쁜 편이 아니었다. 노태우 정부 말기(1992년) 경제는 6%대 성장으로 전두환 시대에 비해 안 좋은 상황이었지만, 이어 출범한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는 9%대 고도성장을 회복하고 다음해인 1994년 국민소득이 1만불 시대를 열고 96년에는 1만3천불을 돌파하며 선진국 경제클럽이라는 OECD에 가입하게 된다.

 국민소득 1만불 돌파는 원화 고평가에 의한 거품도 한 몫한 것인데, 이러한 거품도 외국에서 한국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높이 평가해서 가능한 것이지만, 문제는 이 거품을 유지하려고 발버둥 치면서 경제위기를 불러 들인 것이다. 딱히 김영삼 대통령의 무지함이 외환위기를 가져 왔다기 보다 임기말 경제관료들의 거품을 유지하려는 안이한 판단과 외국 투기세력의 발빠른 대응이 가져온 재앙이었다. 경제 규모는 OECD 선진국 문턱에 갔어도 대통령과 그 주변의 생각은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 국민소득 1만불을 달성하고 선진국클럽에 가입한 폼나는 대통령, 정권으로 남고 싶었기 때문에, 거품을 없애 자칫 임기중 1만불 국민소득이 깨지는 일을 참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 사정을 눈치챈 경제관료들은 이제 정권 임기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위기에 대처해 거품을 없애고 대통령의 심기를 해치면서 국민들을 놀라게 하기보다는 위기를 적당히 포장해 다음 정권에 넘기려 했고 정부가 쓸 수 있는 달러의 마지만 한 장까지 써가며 환율을 철저히 방어하고자 했고, 그 결과 IMF 구제금융 신청 외에는 다른 방도를 찾기 어렵게 만들었다. 사실 박정희 정권 말기 1970년대 말에도 비슷한 상황이 전개되었지만 당시 우리 경제가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이기도 했고, 신현확 총리의 과도기를 거쳐 전두환 정권의 획기적인 정책 전환을 통해 위기를 극복했었다.(필자의 글 "5공(전두환)정권 시장소비자 지향 경제성과의 재평가" https://brunch.co.kr/@consumer/30 )

 일부에서는 재벌들의 고 차입 경영과 과잉투자가 외환위기의 원인이라고 하지만 책임 회피에 불과한 주장이다. 1996년 부터 한보철강, 기아그룹, 진로그룹, 해태제과, 한신공영, 나산, 거평 등등 재계 30위 이내의 기업집단들이 도산하지만 실제 경제에 영향을 줄 만한 기업들은 기아그룹(8위), 한보철강(14위), 진로그룹(19위) 정도였고 과도한 부채로 도산했다고 하지만 청산하는 것보다는 사업을 계속하는 것이 유리한 상태여서 인수할 기업을 찾기가 어려웠던 것은 아니다(나머지는 재계 순위도 낮지만 식품, 부동산 회사여서 투자를 잘못한 것이 국가 경제 위기를 가져 올만한 것들이 아니다). 이들 때문에 외환위기가 왔다고 주장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실제로 이들 회사들이 남긴 자산들은 대부분 현재도 시장에서 살아 남아 있다는 점에서 보더라도 이들의 무분별 차입 경영이 국가 경제위기를 초래했다는 주장은 책임 회피 내지 재벌 공격을 위한 핑계에 불과하다. 만일 정말로 이들 기업의 부채경영 내지 과잉 투자가 경제위기의 주범이었다면 차입한 돈을 대부분 외국으로 빼돌렸다거나 엉뚱한 곳에 투자해 산업 시설은 흉물단지로 남아 쓰레기로 되어 있어야 겠지만 그런 증거는 찾기 어렵다.     

 그리고 또 하나의 외환위기 촉발 원인은 당시 우후죽순처럼 설립된 종합금융회사들이 국내 수신기반이 부족하다 보니 단기로 외화를 차입해 원화로 바꿔 기업들에게 대출하거나 일부는 동남아시아의 고수익 채권에 투자했는데 국내 기업들의 연쇄 도산과 동남아의 외환위기로 인해 부실채권이 발생하면서 재무상태가 악화되어 해외 차입이 어려워 진 점을 들고 있다. 하지만 종금사는 국내 수신이 별로 없어 파산되는 경우 오히려 외국의 채권 금융기관들이 크게 손해를 볼 일이지 국내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인 상황이었다.     

 즉, 국내 기업의 차입경영에 의한 도산이나 종금사의 부실화가 외환위기를 촉발한 원인 가운데 하나인 것은 사실이지만. 도산하는 국내 기업들은 건실한 기업이 인수하도록 워크아웃이나 회생절차를 신속히 진행하고, 종금사는 부도는 채권단들에게 맡기면 오히려 외국의 채권자들이 손실을 안을 수 밖에 없으니 외채를 줄이는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미국은 2007~2009년 서브프라임 금융위기에서 일부 자국민들의 저축 관련 부분은 재정을 투입 구제했지만 외국에 판매한 채권은 부도처리해 엄청난 손실을 외국에 부담시킴) 

 오히려 한국 경제에 대한 외국의 평가가 변화하는데도 불구하고 시장의 흐름을 거슬러 원화 고평가를 유지하면서 해외 차입에 의존해 1만불 소득과 금융권 부실화를 막으려한 정부가 외환위기의 주범이라고 볼 수 있다. 만일 당시 정부가 환율을 시장에 맡겨 우리 경제에 대한 평가의 거품을 걷어 내고 환율을 1달러 800원 수준에서 1000원대로 조정되는 것을 수용했다면 명목상 1만불 소득은 깨지겠지만(당시 800:1에서 100:1 조정시 국민소득은 9600불 수준으로 하락), 무역수지는 흑자기조로 전환되고 외채 상환에 관한 신뢰는 회복되었을 것이다. 외화를 차입해 원화로 대출한 금융기관들의 부실화가 문제 되겠지만 한편으로는 무분별 대출로 인한 손실을 외국 채권자들에게도 분담시키는 결과가 된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금융시장이나 기업 구조조정 문제들은 외국 도움없이 국내 재정, 금융정책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다. 외국 채권 금융기관들이 돈을 받기 위해 앞으로 한국에는 돈을 꿔주지 말자고 나설 수 있지만, 국제수지가 흑자라면 수출해서 번돈으로 필요한 외화를 충당하니 단기적으로는 위협이 될 수 없고, 그러한 협박을 하는 채권자들에게는 불리한 채무조정을 할 카드도 있으니 함부로 한국에 보복한다고 나설 수도 없었을 것이다. 즉 무분별한 해외차입이나 과도한 차입경영의 손실은 외국의 채권자와 분담하면서 큰 피해없이 구조조정이 이뤄어졌을 것이다.

 당시 김영삼 정부 관료들은 원화 고평가로 인한 수출기업 어렴움이나 이로 인한 국제수지 문제에도 불구하고 펀더멘탈은 견조하다는 이야기를 입에 달고, 이자율이나 환율 등의 거시경제 변수는 무시한 채, 노동시장, 금융시장, 재벌 지배구조와 같은 경제 구조개혁에 관심을 가졌다. 말하자면 맹장이 터지기 직전 환자에게 (그동안 오진을 들키는 것이 두려워) 수술을 하기보다 체력 단련을 통한 면역력 향상을 요구한 셈이었다. 아마 맹장이 터져 수술하는 일은 차기 정부에 맡기고 그 책임도 넘기고 싶어했는지 모른다.

 그 무렵 필자는 당장이라도 환율을 시장에 맡겨(원화를 20% 정도 평가절하해서 1달러 1000원 수준으로) 수출을 잘되도록 하는게 좋겠다고 윗사람들께 제언한 적이 있는데, 대체로 반응은 그것은 너무 쉬운 길이고 경제 체질을 개선해 당시(1달러 800원 수준) 환율로도 경쟁력을 가질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라경제가 그렇게 정책 담당자 멋대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면 무슨 고민이 필요하랴? 그냥 모든 분야에서 선진국 수준 능력을 갖게 하면 다 해결 될 일이지. 어쩄든 1997년 후반기부터 외환위기의 징후는 뚜렸했다. 필자는 본인 담당 업무 분야는 아니지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외국에 근무 중에도 원화 고평가 문제를 지적했지만, 한국에서는 진보, 보수 가릴 것 없이 원화 평가 절하 주장을 거의 매국적인 것으로 폄훼했다.      

  그 후 외환위기 책임을 검찰 수사를 통해 사법적으로 판단하겠다는 생각도 우스꽝스럽지만 어쨌든 김영삼 대통령이 검찰에 낸 답변서를 보면 당시 관료들의 안이한 판단이 드러난다.     

 당시 보도한 기사 내용을 보면 “김 전 대통령은 재임중 나름대로 노력했음을 강조했다. 금융기관 부실화를 방지하려고 △금리자율화 △은행장의 인사 및 내부 경영 자율화 △금융감독체제 개편 등을 꾀했으며, △대기업의 구조적 결함을 개선하고자 계열기업간 지급보증 제한, 결합재무제표 도입 등을 추진했다”고 주장했다.

 “김 전 대통령은 구조적 원인과 환경적 요인 및 심리적 원인이 국내외적으로 복합됐기 때문이라며. 대내적으로 △대기업 차입경영과 연쇄도산 △금융기관 부실화와 감독장치 미흡 △노동시장 경직성 △기업과 금융기관 투명성 미확보 등을 꼽았다. 대외적으로는 △만성적 경상수지 적자 누적 △타이·인도네시아 통화위기 △홍콩 증권시세의 폭락 △해외언론의 왜곡 과장 등이 급작스럽게 한국으로 불어닥쳤기 때문”이라고 기술했다.

 그러면서 “전문가들조차 제대로 예측이 어려워 ‘날벼락론’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고 덧붙이고 한발 더 나아가 사태 책임을 남의 탓으로 돌렸다. “2차례에 걸쳐 추진한 금융개혁법은 관련 집단의 이해상충으로,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를 위한 노동법 개정안은 야당의 원천 봉쇄로 유보됐으며, 기아사태는 채무자인 경영자의 상식을 벗어난 고집과 반발 때문에 장기간 계속됐다”고 주장했다. 아마도 이 답변서에는 강경식 전 부총리와 김인호 전 경제수석의 생각이 반영되었을 것인데 당시 관료들의 안일한 판단이 드러나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외환위기 와중에 정권을 잡은 김대중 대통령은 일부의 평가대로 단기간 내에 외환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것일까? 외환 위기를 초래하고 IMF에 구제금융 신청한 것은 김영삼 대통령이지만, 위기에 따른 피해를 관리한 것은 김대중 대통령이란 점에서 실제 피해의 상당 부분은 김영삼 대통령 집권기가 아니라 김대중 대통령 집권기에 발생한 것이다. 따라서 90년대 말 외환위기에 의한 경제적 피해에 대한 책임의 상당 부분은 김영삼 대통령뿐만이 아니라 이를 수습한 김대중 대통령에게도 주어진다.


- 김대중 대통령의 외환위기 극복에 대한 평가 다음번 글(https://brunch.co.kr/@consumer/58)도 구독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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