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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상담

먼지가 수북이 쌓인 케케묵은 일기장

심리상담을 받기 위해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고 괜찮아 보이는 곳으로 골라보았다. 비용은 50분에 7만 원이었고 효과만 있다면 받아볼 만한 금액이었다. 사실 어떤 효과를 기대한 건지는 모르겠다. 처음엔 호기심 반 전문 상담사의 도움이 필요해서 반. 이렇게 반반의 마음이었다. 시간 내서 이왕 하는 거 진지하게 임하고 싶었고 내가 상담을 통해서 알고 싶고 원하는 게 뭔지 일주일 동안 정리했다. 시시콜콜한 얘기만 하다가 50분 까먹기 싫었다. 정리를 해놓으면 상담사에게 나를 알리는데 시간이 단축될 것 같아서이다.


그래서 일주일 동안 기록과 수정을 반복한 후 상담 하루 전에 상담사님께 이 글을 보냈다.


무엇을 상담받고 싶은지...?

나는 굉장히 이성적인 사람이다. 생각하는 게 약간 냉정하다고나 할까. 감정적으로 교류를 하긴 하나 머릿속으로는 현실적인 해결방안이나 앞 뒤 문맥적인 상황을 파악하기에 급급하다. 생각이 많고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불안도가 매우 높다.

성격은 매우 급한 편이고 충동적일 때가 있으며 사람들과의 대화에 있어서도 여유 있게 생각하거나 여유 있게 대답하는 것에 답답함을 느낀다. 감정을 교류하고 오랫동안 인연을 이어가는 것이 어렵다.

비현실적이거나 맥락에 맞지 않는 뜬금없는 말을 극도로 혐오하는 편이고 숨이 막힐 정도로 싫다. 현실파악을 못하는 엄마와 언니의 영향이 큰 것 같다. 가정불화로 인해 부모에게 아주 많은 불만을 가지고 있으며 원망하는 마음이 항상 깔려 있으나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직장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도 일은 잘하지만 뚝심 있게 끈기 있게 한 곳에서 오래 일하는 것이 어렵다. 들은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것이 어렵다. 싫은 소리를 듣는 것에 아주 강한 좌절감과 절망감을 느끼는 것 같으며, 싫은 소리를 듣게 되면 내게 안 좋은 선입견이 생겼을 것이라는 생각에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고 결국 끈기 있게 한 곳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것이 어렵다.

훌훌 털어버리고 다시 잘 지내는 것이 어렵고 항상 출구를 찾고 있는 듯한 갈증, 갈망을 느끼며 진득하게 하나의 일을 묵묵하게 오랫동안 하고 싶지만 그게 잘 안된다.

사람들의 감정에 공감하고 싶고 감정 교류를 하고 싶지만 그게 부족한 것 같다. 남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도 어렵지만 나의 감정을 공유하는 것도 어려운 것 같아 답답하다. 그래서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내 상황을 줄줄 늘어놓고 있다.

감정을 공유하는 게 어려워서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나를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 내 감정을 속속들이 알기를 원하는 건 아니겠지만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있으면 기분이 안 좋은가, 안 좋은 일이 있나.. 오해를 하고 다가오기 어려워져서 그것이 나의 이미지가 되고 선입견을 갖게 하겠지만 어떻게 회복해야 될지도 모르고 굳이 그 오해를 풀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결국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 되는 것일 뿐이다.

그게 오래되다 보니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윤활제가 없는 느낌? 감정적으로 점점 메말라가는 느낌이라 상대와 나의 감정을 서로 적절하게 공유하는 방법을 배우고 알고 싶다.

또한 언니의 망상 장애와 스토킹 범죄로 인한 구치소 수감소식에 모든 게 무너져버렸다. 나와 언니는 가난과 폭력의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 꿋꿋이 성장하였는데 언니가 그렇게 됐다는 사실이 나를 후벼 파는 것 같은 큰 슬픔의 고통을 느낀다. 말도 안 되는 현실에 이성적이던 내 태도는 무기력해졌고 심리적으로 내 소신이나 지켜왔던 생각들이 모두 무너진 것 같고 매우 혼란스럽고 감당이 안된다.

망상 장애는 경청하는 태도가 중요하고 동의하진 않지만 망상의 감정을 끌어내고 계속 공유를 하는 과정을 통해서 스스로 잘못됐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인고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내 그릇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고 나는 비현실적이거나 맥락에 맞지 않는 말들은 너무 역하게 들리는데 이성적으로 들어줄 사람이 나밖에 없는 현실과 언니가 망상이 더 심해지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과 피해자를 끊어낼 수 있을까 하는 초조함이 나를 옭아맨다.

내가 어떻게 해야 되는 것일까..?
어떻게 해야 내려놓고 좀 더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최대한 나에 대해서 궁금한 점과 어떻게 해야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해질 수 있는지 어두운 부분 위주로 한 자 한 자 반복 수정해 가며 상담사님께서 짧은 시간에 나를 이해하실 수 있도록 적어서 보냈다.


그리고 다음날이 되어 상담을 받으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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