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툰 순간을 위한 변명

by 고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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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게임을 참 좋아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모니터 속 가상 세계일지 모르지만, 제게 게임은 일상의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제 삶에서 아주 소중했던 풍경 하나가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퇴근 후나 주말에 습관처럼 켜던 롤이나 오버워치 같은 팀 게임들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게임을 지워버린 것은 아닙니다. 실력이 예전만 못해서도 아닙니다. 실행 버튼 위에서 망설이는 시간이 길어지다가 자연스럽게 멀어졌을 뿐입니다. 그저 게임 안을 가득 채운 '실수를 대하는 각박한 방식'에 제 마음이 지쳤던 것 같습니다.

온라인 게임은 언제부턴가 함께 성장하는 즐거움을 나누는 놀이터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대신 아주 작은 판단 실수나 미숙함이 보이자마자 날 선 비난이 쏟아지는 시험대가 되었습니다. 기술이 좋아지고 누구나 다른 사람의 실력을 수치로 낱낱이 들여다볼 수 있게 되면서, 상대의 실력을 '숫자'나 '기록'으로 너무나 쉽게 판단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플레이가 감시받는 환경에서 누군가의 서툼은 승리를 방해하는 '민폐'가 됩니다. '이겨야 한다'는 목표가 앞서가면서 그 과정에서 상처받는 마음보다 효율적인 결과가 더 중요해진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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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이런 모습이 게임 안에서만 끝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임에서 익힌 '실수를 참지 못하는 태도'는 이미 현실 곳곳에 스며들어 있었습니다. 효율과 성과를 따지는 직장 생활이나 일상의 관계에서도 타인의 서툰 모습을 느긋하게 기다려주는 여유를 찾기가 점점 어려워집니다.

신입 사원에게는 들어오자마자 능숙하게 일하는 '중고 신입'의 모습을 기대하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는 사람에게는 '제대로 준비 안 됐으면 시작도 하지 마라'는 무언의 압박을 건네는 풍경이 이제는 낯설지 않습니다.

돌이켜보니 이제 세상은 유독 '결과'에만 열광하고 있었습니다. 링크드인만 보더라도 무수한 성공 사례와 화려한 성취들로 가득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결과물의 이면에는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수많은 '서툰 순간'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잊고 지내곤 합니다.

가끔은 아무것도 모른 채 낯선 지도를 헤매던 예전의 제가 그립습니다. 그때는 실수하는 것이 당연했고, 그 서툰 발걸음 자체가 즐거움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무언가를 새로 시작할 때 설렘보다 '검증된 정답'을 먼저 검색하는 저를 발견합니다.

남들보다 뒤처지거나 틀릴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이 커질수록 제 안의 호기심과 생동감 역시 조금씩 말라가고 있습니다. '완벽함'이라는 감옥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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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요즘 분위기는 마치 처음부터 완성형이어야만 박수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과정은 생략된 채 완벽한 결과로만 스스로를 증명해야 하는 압박이 모두의 숨을 막히게 합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실수'는 단순한 시행착오가 아니라 사람의 가치를 깎아먹는 치명적인 오점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이런 공기가 저를,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위축되게 만듭니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고, 저 역시 주니어였던 시절이 있었다는 당연한 사실이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지워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실수가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면서 많은 사람이 아쉬운 선택을 하게 됩니다. 바로 '아무것도 도전하지 않는 것'입니다. 비난받지 않기 위해 이미 잘하는 일 뒤로 숨어버리고, 실패할 것 같은 길은 아예 발조차 들이지 않는 '안전한 포기'를 선택하게 되는 것이죠.

지금 마주한 이 풍경은 슬픈 악순환입니다. 실수를 허용하지 않는 문화는 새로운 도전을 두렵게 만들고, 도전이 사라진 자리는 생동감을 잃어갑니다. 실수를 통해 배우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할 소중한 에너지가 '욕먹지 않기 위해 방어하는 삶'에 모두 쓰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다 이렇게 서로에게 인색하고 무서운 세상이 된 것일까, 고민이 깊어지는 밤이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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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우리가 잃어버린 '서툴러도 괜찮은 권리'에 대해 다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동안 콘텐츠를 고민하며 제가 배운 가장 소중한 가치는 '정말 좋은 결과물은 완벽하게 짜인 설계도가 아니라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다듬어온 과정에서 나온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얼마나 빠르고 효율적으로 성공하느냐보다 누군가 실수했을 때 그 순간을 얼마나 따뜻하게 대하느냐가 한 사람의 품격을 결정한다고 믿습니다. 채팅창의 차가운 비난 대신 '그럴 수도 있어요', '다시 해봐요'라는 다정한 한마디가 더 큰 힘을 발휘하는 풍경을 꿈꿔봅니다.

그런 말들이 사람을 용감하게 만들고, 더 많은 시도를 하게 하며, 결국 저를 포함한 모두를 더 크게 성장시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잃어버린 여유를 되찾는 그 작은 시작이, 비난으로 무너지고 있는 사회를 다시 세우는 가장 강력한 힘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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