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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조각 Apr 22. 2021

20대 초반 겪은 사이비 종교이야기

당신은 절대적으로 옳은 진리가 있다고 생각하나요?


    마음이 연약하면 그곳으로 파고드는 사람들이 몰리기 마련이다. 그것이 사랑을 가장한 사람일 수도 있고, 무속인이나 종교일 수도 있고, 정치 단체나, 영화 속 히어로일 수도 있다. 어쨌든 인간은 자신이 운명의 피해자라고 생각할 때, 외롭고, 고립되었다고 느낄 때 내 삶의 구원자를 바란다. 그리고 언제나 배신자는 구원자의 얼굴을 하고 찾아온다.


    첫 번째는 대학교 동아리 같은 형식이었다. 영어를 공부하는 곳인 줄 알았는데 좀 더 근본적으로는 영어로 성경을 공부하는 모임이었다. 아침마다 짧은 스터디를 하면서 서로 성공을 다짐하고 응원하는 동기부여 모임 같은 면이 있어서 신앙과 관계없이 진입장벽이 낮았다. 물론 나는 불교 집안에서 자랐지만 무신론자였고, 영어 공부에 더 초점을 맞추면서 열심히 공부해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자는 메시지에 큰 거부감이 없었다. 당시 나는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한 열등감으로 어떻게든 자기 발전을 해서 세상에 나의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했었다. 그런 나의 욕망이 그 집단이 가진 목표에 부합하였던 것 같다. 처음엔 아침모임에서 점차 주일예배로 또 수요일 저녁 예배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방학에 학원처럼 운영되는 성경공부모임에 60만 원의 돈을 지불하는 것으로 연결되었다. 나는 꽤 열성적으로 공부하며 금세 모임의 중심적인 위치가 되었다. 나를 포함해 열심히 공부하는 여학생들(지금 생각하면 왜 여학생뿐이었을까)은 목사님이란 분과 따로 스터디 모임을 가졌다. 스터디라 함은 영어로 된 성경의 한토막이나 유명인의 연설문을 공부하고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나는 그곳에서 하느님을 만났다고 생각했고 이 모든 일이 나를 이곳으로 이끌어준 계획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성공과 세상에 기여하는 삶이 나의 목표가 되었다.


    뭔가 이상하다고 눈치챈 건 그 모임에 7-8개월 정도 몸담았을 무렵이다. 당시 알게 된 미국 대학생 오빠와 이야기를 나누다 내가 다니는 모임에 한번 오지 않겠냐고 물었다. 그 오빠는 모태신앙에 미국에서 대학도 미션스쿨을 다니고 있어서 자기 또래의 친구들과 예배를 드릴수 있다는 게 좋았던 것 같다. 그런데 처음 주일 예배를 드린 날 오후에 그 오빠가 이 모임이 뭔가 이상하다는 말을 했다. 우선 목사라는 사람이 쓰는 영어는 너무 옛날 영어에 틀린 부분도 많고 성경의 내용을 자의적으로 해석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전체적인 분위기가 서로 소통하는 모임이라기보다 목사와 그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전해 듣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그러면서 교회가 장로교회인지 침례교회인지를 물었는데, 당시 나는 그런 종파 같은 게 존재하는지도 몰랐기 때문에 장로교회일 거라며 대충 얼버무렸다. 그리고 그날 저녁 집에서 곰곰이 그간의 일을 돌이켜 보는데 분명 찜찜한 느낌은 있었다. 어느 집단이든 그 집단이 공정한지는 돈의 흐름이 투명하게 보이는지로 알 수 있다. 돈의 쓰임으로 그 집단의 방향성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생들이 60만 원이란 돈을 내어가며 들은 수업이 웬만한 회화학원 수업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라면, 빌려 쓰던 사무실에서 3층짜리 으리으리한 새 건물로 옮긴 재력이라면, 간사라는 이름으로 온통 자질구레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그저 봉사라는 이름으로 착취당하는 중이라면, 이 집단에서 가장 이익을 보는 이는 목사 한 명뿐이었다.


    눈에 씐 콩깍지가 벗겨진 후부터는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들이 하나씩 보였다. 목사 앞에서 너무 우물쭈물하며 눈치를 보는 간사들은 쉬는 날에도 목사 전화 한 통에 젖은 머리로 헐레벌떡 뛰어나오곤 했다. 간사들이 만들어준 영어 수업 교재는 중학생 수준만도 못한 문장 만들기와 짧은 글을 짜깁기 한 수준이었다. 학생들끼리 영어로 대화할 기회를 준다지만 누구도 피드백을 해주진 않았고 피드백을 해줄 만한 실력이 있는 사람들도 없었다. 주일 예배에 종종 선물을 보내는 모임의 선배들은 목사를 스승님처럼 깍듯하게 모셨고, 목사는 새로 지은 교회건물의 디자인을 그 사람에게 맡겼다. 1층은 카페, 2층은 수업 공간과 사무실, 3층은 예배 공간으로 이뤄진 건물은 제법 눈에 띄는 건물이었고 목사는 자신의 자랑스러운 제자가 무료로 디자인해줬다고 공공연히 자랑하고 다녔다. 난 평소에 모임 안에서 친하게 지내던 언니에게 이곳이 장로교회 소속인지 물었는데, 그 사람은 그런 게 왜 중요하냐고 되물었다. 그러게. 그런 게 왜 중요했을까. 어차피 나는 장로교회가 무슨 뜻인지도,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모른다. 난 그저 이곳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만 느끼고 있었을 뿐이다.


    그 무렵, 나는 또 다른 종교 모임을 하나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모두가 이름을 알 만한 신천지 모임이었으나 당시에 나는 그 모임의 정체를 정확히 모르는 상태였다. 첫 번째 모임에서 느끼는 위화감, 그리고 종교적 갈증에 화답하듯 신천지 사람들이 나에게 접근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들의 수법은 교묘하고 정교한 체계가 있어 한번 발을 들이면 금세 빠져들었다. 처음은 학교 앞에서 스트레스 지수 검사를 해준다는 심리검사에 참여한 것이 시작이다. 당시 나는 오전에 7시부터 첫 번째 영어성경 모임에 참여하고 학교 수업을 듣고 난 후 과외와 공모전까지 나가며 매우 피로한 상태였다. 그러니 스트레스 지수가 비정상적으로 높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검사를 해준 여성 A는 자연스럽게 나의 스트레스 지수가 너무 높다는 걸 걱정해주며 대화를 이어나갔고, 나도 지친 마음을 털어놓으며 금세 가까워졌다. 그러면서 좀 더 깊이 상담을 하기 위해 자신이 아는 전문가를 소개해 주겠다며 남자 B를 데려왔다. B는 멀끔한 양복을 차려입고 왔고, A는 그가 미국의 유명한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했으나 봉사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이렇게 무료로 심리 상담을 해주고 있다고 말을 했다. 그 사람이 꺼낸 에니어그램 검사지에는 내가 4번 유형으로 나왔다. 지금 생각해보니 성격유형을 파악하면서 공략법을 짜려고 했던 모양인데, 내 유형을 잘 못 파악해서 내가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에니어그램 검사 후에 최면 요법을 해준다고 했는데 질문은 주로 어린 시절 상처나 부모님에 대한 원망 같은 거였다. 아마 그 질문들도 4번의 '결핍'을 자극하는 질문일 터였다. 어쨌든 그들은 자연스럽게 나를 성경 공부하는 모임에 초대했는데 선생님이 B이고 나를 처음 만난 A와 또 다른 여성 C를 불러 총 4명의 모임을 만들었다. 신천지 모임을 위한 특별한 스터디 카페가 있었는데 거기는 장부에 B의 이름만 기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함께 공부하는 동안 지켜야 할 약속이 있었는데, 이 모임의 존재와 내용을 가족이나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부모님이 걱정하거나 다른 사람과의 대화로 배운 내용이 오염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나는 그렇게 총 3개월을 주 1회 모임을 하며 성경 내용을 공부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런 울림도 깨달음도 없는 시간이었다. 어쨌든 첫 번째 모임에서 느낀 위화감을 이 새로운 모임에서 풀 수 있을까 하는 기대로 두 모임에 다 발을 담근 채 3개월 정도 지난 시점이다.


    한 가지 더 짚고 가자면, 평소 나는 커피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 당시 살던 동네에 작은 커피집에서 자주 시간을 보냈다. 교회를 다니는 신실한 청년이 하는 커피집은 작은 규모에 비해 제법 수준이 높은 곳이었다. 초라한 외관 때문인지 손님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내가 한번 앉으면 사장님은 친근하게 이것저것 말을 걸어왔다. 그러다 사장님이 교회를 다니며 함께 결혼을 약속한 여자 친구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가난해도 함께 미래를 꿈꾸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고 혼전순결을 지키며, 술 담배를 일절 하지 않고, 적은 수입에도 철저히 십일조를 내는 모습도 신선했다. 보통 내가 아는 기독교인들은 믿음을 죄의식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거나, 인맥을 만들기 위해서나, 성경을 자기 유리한 대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사장님과의 인연으로 나는 종종 카페에 꽂힌 기독교 서적을 빌려 읽고 대화를 나누었다. 그렇게 제법 친밀감이 생긴 시점이 신천지 모임이 시작된 후 3개월이 지난 시점과 일치한다.


    3개월 간의 공부가 끝난 후 책거리를 한답시고 모임원들이 같이 식사를 하러 갔는데, 그동안 모임을 이끌었던 B가 말을 꺼냈다. 자신이 가르친 내용은 아주 일부분이고 좀 더 깊이 공부하려면 학원 같이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곳에 가야 한다고, 사실 자신이 배운 것도 전부 거기서 배운 것이라는 말이었다. 그러면서 나와 다른 사람에게도 함께 가지 않겠냐고 물었는데, 그 순간에 A와 C 두 명이 동시에 나를 보며 갈 거냐고 물었다. 그 날카로운 눈빛을 본 순간부터 머릿속에서 경보가 울리는 것 같았다. 따져보면 A와 C 모두 나처럼 성경 공부는 처음이었을 것이고, 그런 제안을 받은 것도 처음이었을 터인데 자기들끼리는 간다 어쩐다 말 한마디도 없이 나에게만 집중적으로 물어보는 것이다. 내 양쪽 팔에 하나씩 팔짱을 끼고, 네가 가면 우리도 갈 거라는 식으로 물어보는 게 마치 나를 타깃으로 둘이 동시에 양몰이를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생각을 해보겠다며 대충 얼버무리고 거기서 빠져나와 지체 없이 자주 가던 커피집으로 갔다. 셔터를 내리고 있던 사장님은 딱딱하게 굳은 내 얼굴을 보더니 다시 문을 열어 주었고, 나는 숨도 안 쉬고 그동안 공부하며 적었던 노트를 펼쳐 놓았다. 뭔가 이상해서 물어보려고 왔다는 내 질문에 사장님은 노트를 유심히 읽다가 그저 조용히 노트북을 보여줬다. 교회 사이트에서 정리한 신천지 포교 수법이었는데 내가 그동안 겪은 일과 한치 오차도 없이 동일한 수법이었다. 스트레스 지수 검사, 에니어그램, 비밀스러운 성경공부, 남자 1명과 여자 2명이 한 팀이고 씨앗이 될 한 사람과 친분을 쌓아가는 것, 모임이 끝난 후 자신들의 본부로 데려가 소개하는 것까지. 그리고 나는 거기서 대학교에서 시작한 성경공부 모임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모두 털어놓았는데, 말을 하면서 스스로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동안 속아 왔다는 것을.


    사장님의 도움을 받아 나는 그동안 모임을 하던 사람들을 커피집으로 불렀다. 그냥 연락을 끊어버리기에는 내 분이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을 앉혀 두고 "당신들이 그동안 나에게 뭘 했는지 안다. 앞으로 나에게 절대 연락하지 말고, 길 가다 우연히 보더라도 아는 척하지 마라."라고 이야기하는 동안 목소리는 한치의 떨림도 없고, 발음도 분명했다. 그 사람들이 당황하며 떠난 후에도 지켜보던 사장님이 잘 말했노라 칭찬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내 마음속은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대학교 모임에서 벗어나려고 무작정 휴학을 했다. 더 이상 모임에 나가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연락이 오는 모든 사람들을 차단했다. 난 그냥 홀연히 떠나기를 바랐다. 세상에 모든 걸 믿을 수 없고 그저 혼자가 되고 싶었다. 커피집 사장님의 제안으로 사장님이 다니는 교회에도 갔었지만, 그곳에서도 불편한 기분만 들었다. 얼마 후 그 교회의 청년부 회장이 신천지였고 포교를 위해 잠입해 있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21세기 대한민국은 종교 첩보 전쟁 중인가 보다.

    세상 모든 것에 환멸이 나고 인간이 싫어졌다. 나는 이 모든 일들을 21살이 되던 1년 동안 겪었다. 그 후로 10년간 31살이 되기까지, 얼마나 날을 세우고 살았는지 모른다. 모든 사람을 의심하고, 진실을 밝히려고 하고, 항상 모든 걸 꼬아서 봤다. 세상은 잘 못된 것으로 가득한 곳이다. 사람들의 속은 모두 검다. 아무도 믿을 수 없다. 그렇게 날카롭게 칼을 갈며 살았는데도 나는 잘 속았다. 좋은 사람인가 하면 뒤통수를 맞고, 어디서든 숨어 있는 문제 투성이다. 속지 않으려 애를 쓰면 쓸수록 속아버리는 아이러니. 속인 사람보다 속은 자신에게 더욱 분개하기 마련이다. 그 후로 나는 거짓말에 매우 예민해졌다. 가끔 초자연적인 느낌처럼 저 사람이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강한 느낌이 올 때가 있는데 거의 백발백중으로 맞다. 모든 좋아 보이는 것들에 흠집이 있다. 선해 보이는 사람일수록 속에 더 검은 것이 숨어 있다. 그러니 완벽한 인간이란 없고 완전한 집단이란 더더욱 없다.


    그렇게 아등바등하며 살다 깨달은 점은 세상에 흔들리지 않는 진리라는 건 없다는 것이다. 세상은 원래 혼란스러운 곳이다. 이 혼란 속에서 질서를 찾으려 교육을 받고, 의무와 책임을 부여받고, 하나의 진리를 믿으려 종교나 정치 같은 신념체계에 기댄다. 그러나 모든 노력은 반드시 무너진다. 하나의 신념체계는 불안정한 나의 마음을 기댈 모래 위에 쌓은 성 같은 것이다. 아무리 견고한 논리와 화려한 이미지로 치장해도 반드시 무너지게 되어있다. 이 세상의 속성이 하나의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반드시 변화하는 흐름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무언가를 믿으면 반드시 배신당한다. 그게 내가 배운 유일한 교훈이다. 


    믿음 그 자체가 불안한 정신을 기대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혼란스러운 세상을 설명하기 위해 다른 이의 신념 체계를 빌리는 것에 불과하다. 세상은 그 자체가 변화와 혼란으로 이뤄져 있다.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는 것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을 구성하는 많은 것들 중 대부분은 우리가 설명할 수 없는 것이고, 모든 일들에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다. 애써 그것들을 이해하려 하기보다, 답을 구하려 애쓰기보다 그냥 그대로 두는 게 더 나을 때가 많다. 그냥 그런 것이려니 하고 마는 것이지. 설명할 수 없는 것들에 집착하다 보면 그럴듯한 설명을 가지고 오는 사기꾼들의 먹잇감이 된다. 내가 20대에 배운 지혜중 하나이다.



        

본 글은 개인적으로 활동 중인 카페에 연재하고 있는 글을 옮겨왔습니다

https://cafe.naver.com/kukoldman/2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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